커리어를 점이 아닌 선으로 완성하기 (FOMO 탈출기)

이드의 멘탈 가이드 – 현타가 올때 꺼내보는 실전 매뉴얼

by iid 이드

‘이드의 멘탈 가이드’는 현타가 찾아오는 순간마다 꺼내보며,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다시 움직일지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실전 가이드입니다. (상담/미팅 문의 )



요즘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놓칠까 봐 조바심을 낸다. 주식이 오른다는데 나만 안 사면 어떡하나, 코인이 뜬다는데 나만 모르면 어떡하나. 그런데 이런 FOMO는 비단 투자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커리어에도 똑같은 조급함이 번져있다. 주변을 보면 누구는 벌써 C레벨이 됐고, 누구는 멋진 자문이나 코치로 활동하고, 누구는 자기 회사를 차려서 대표가 됐다. 그러면 나도 빨리 뭔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빨리 어디론가 점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문제는 이런 조급함이 우리를 계속 점프만 시도하게 만든다는 거다.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하기보다는 다음 기회만 찾게 되고, 현재를 채우기보다는 미래의 어떤 지점만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커리어라는 게 정말 그렇게 작동할까? 나는 커리어를 하나의 선이라고 생각한다. 점 하나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점들이 차곡차곡 이어져서 선이 되고, 그 선들이 모여서 면이 되는 것 말이다.




점을 찍는다고 선이 되는 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connecting the dots"라고 했던 말을 많이 인용한다. 뒤돌아보면 점들이 연결되어 있더라는 그 유명한 연설 말이다. 그런데 나는 사실 그 표현이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마치 점 몇 개만 찍어놓으면 나중에 알아서 연결될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점과 점 사이를 우리가 직접 메워가야 한다. 그것도 또 다른 수많은 점들로 말이다. 선이라는 것도 결국 들여다보면 빽빽하게 찍힌 점들의 집합이지 않나.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저 멀리 가고 싶은 지점을 바라본다고 치자. 실무자인데 임원이 되고 싶다든가, 직장인인데 독립 컨설턴트가 되고 싶다든가. 그 목표 자체는 분명한 점이다. 문제는 현재의 나와 그 점 사이에 텅 빈 공간이 있다는 거다. 이걸 커리어 점프라고 부르든 갭이라고 부르든, 어쨌든 그 사이는 비어있다.


비어있는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 모르겠으면 그냥 점프를 시도하게 된다. 이직을 하든, 창업을 하든, 뭔가 극적인 변화를 꾀한다. 그런데 그렇게 점프한 점이 이전 점과 연결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둥둥 떠있는 섬처럼 동떨어진 경험이 되어버린다. 이전 경험은 활용할 수 없고, 새로운 자리에서는 기반이 없으니 계속 허우적대게 된다.


커리어는 마라톤이다,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결국 커리어란 수많은 과정의 연속이다. 1~2년 만에 성공을 거머쥐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적어도 2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하는 장거리 여정이다. 물론 단기 완성형도 있다. 한 번의 대박으로 평생 먹고살 수 있다면 점 하나로 끝내도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그렇지 않다.


내가 어떤 여정을 만들어가고 싶다면, 그 점들이 선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점과 점 사이를 계속 메워가야 한다. 하루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된다는 얘기다. 이동진 평론가가 했던 말이 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언뜻 모순처럼 들리지만 정말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산다는 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작은 점들을 계속 찍어나간다는 뜻이다. 그렇게 점들을 빽빽하게 찍다 보면 어느새 선이 되어 있고,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그게 어디로 향할지는 사실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되는 대로"인 거다.


반대로 하루하루를 성실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저 멀리 떨어진 꿈의 점만 바라보면서 현실의 업무는 대충대충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시간만 때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점과 점 사이가 전혀 메워지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꿈을 바라만 보고 있게 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을 때 찍는 점들

내 경우를 돌아보면, 정말 하나하나가 던져진 공을 받아내는 과정이었다. 스타트업에 입사하자마자 HR팀이 단체로 퇴사했다. 채용 경험도 제대로 없는데 무작정 채용 공고를 내야 했고, 처우협의라는 걸 해본 적도 없는데 후보자들과 연봉을 논의해야 했다.


HRBP라는 역할도 처음인데 바로 리드를 맡았다. PMI가 뭔지도 몸으로 부딪히며 배웠고, R&D 조직 담당하다가 마케팅 조직 담당하다가 세일즈 조직도 맡았다. 각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리더들은 어떤 스타일인지 일일이 파악하면서 내 역할을 찾아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HR 헤드가 됐다. 채용, 평가, 보상, 조직문화, 인력계획 모든 게 내 책임이 됐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회사에 경영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HR 헤드였던 나한테 경영 관리 지표와 코스트 구조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경영 관리는 내 전문 영역도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책을 뒤져가며 만들었다. CFO가 갑자기 퇴사하니 비용 계정 구조와 규정도 내가 만들었다. 재무 전문가도 아닌데 말이다.


회사에 큰 이슈가 터져서 내외부 부정 여론과 줄퇴사가 이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들은 회피하거나 외면했지만 결국 내가 경영진과 리더들에게 가이드를 주고 따라오게 시켰다. 경영 악화 상황에선 인력 효율화라는, 누구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도 내가 결정하고 내가 진행해야 했다.


매 순간이 그랬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레퍼런스도 없었고, 물어볼 선배도 없었다. 그냥 책임만 덩그러니 주어졌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돌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밤새 자료를 찾아보고, 실무자들한테 물어보고, 안 되면 내 방식대로 해보고. 실패하면 다시 하고, 또 실패하면 또 다시 하고.


그런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점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눈앞의 불을 끄느라 정신없었는데, 그 점들이 모여서 지금의 선이 됐다. 채용 한 건 한 건이 점이었고, 조직개편 하나하나가 점이었고, 처우협의 한 번 한 번이 점이었다. 경영 관리 지표를 만들고, 비용 구조를 설계하고, 위기 상황에서 조직을 이끄는 것도 모두 점이었다. 그 점들이 빽빽하게 이어지면서 HR 전반을 이해하는 사람이 됐고, 위기 상황에서도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됐고, 심지어 HR을 넘어 경영 전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만약 그때 내가 "이건 내 일이 아닌데, 나는 전문가도 아닌데"라고 회피했다면? 혹은 "이렇게 힘들게 일할 거면 이직해야지"라고 생각했다면? 그 점들은 찍히지 않았을 거고, 지금의 선도 없었을 거다.


확장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점들을 빽빽하게 찍으려면, 내 역할을 확장하고 성장하려면, 필연적으로 현재 쓰고 있는 것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와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생각해보자. 내가 지금 전문가도 아닌데, 하루 8시간 업무 시간 중 일부를 개인적인 성장이나 공부에 쓸 수 있을까? 업무 자체가 8시간을 온전히 투입해야만 제대로 완성되는 일인데, 내가 아직 능숙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 시간을 임의로 줄이면 어떻게 될까? 결국 일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퀄리티가 낮아진다. 마감은 늦어지고, 디테일은 놓치고, 동료들한테 폐를 끼치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본업 외 시간을 써야 한다. 출근 전 아침 시간, 퇴근 후 저녁 시간, 주말. 이런 시간들을 활용해서 나를 확장시켜야 한다. 누군가는 이게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미 하루 8시간을 일하는데 거기에 더 시간을 쓰라고? 그런데 달리 방법이 있을까? 전문가가 되고 나면 다르다. 내가 하는 일 자체가 배움이고 성장이 될 수 있다. 업무 시간에 전문성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되기 전까지는, 아직 배우는 단계에서는,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선의 방향은 미리 정해지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점들을 찍다 보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거다. 우리는 보통 커리어의 목적지를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도달하려고 한다. 5년 후에는 팀장, 10년 후에는 임원, 이런 식으로. 그런데 실제로는 점들을 찍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길이 열리기도 한다. 지금 하는 일에서 발견한 흥미가 새로운 영역으로 이어지고, 우연히 맡게 된 프로젝트가 내 강점을 깨닫게 해주고, 누군가와의 대화가 완전히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채워가는 거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최종 목적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 같아도, 성실하게 점을 찍다 보면 그게 어떤 형태로든 쓰이게 된다. 어쩌면 완전히 다른 분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라는 말이 중요하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점을 찍되, 그 점들이 최종적으로 어떤 그림을 만들어낼지는 미리 정하지 않는 거다. 너무 빡빡하게 계획된 길만 따라가려고 하면 오히려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된다.


지금 하는 일에서 배운 게 다른 분야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빛을 발하기도 한다. 실무에서 쌓은 경험이 전략을 보는 눈을 키워주고, 한 산업에서의 깊은 이해가 완전히 다른 산업으로 갈 때 차별화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점들을 빽빽하게 찍어놓으면, 나중에 어떤 선을 그리든 그 점들은 자산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목적지를 너무 확고하게 정해놓으면 오히려 성장이 제한된다. 지금 하는 일이 최종 목표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면 대충하게 되고, 새로운 기회가 와도 내 계획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하게 된다. 그런데 목적지를 열어두고 과정에 집중하면, 모든 경험이 의미를 갖게 되고, 예상치 못한 기회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게 아무 방향성 없이 흘러가라는 얘기는 아니다. 큰 방향은 있되, 그 안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라는 거다. 점들을 찍다 보면 자연스럽게 특정 방향으로 선이 그어지고, 그 선이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에게 맞는 길일 수도 있다.


조급함을 견디는 법

그래도 조급한 건 어쩔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SNS를 보면 다들 멋진 타이틀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나도 빨리 거기 가고 싶다.


이럴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저 사람들의 선이 정말 튼튼하게 그어져 있을까? 겉으로 보이는 점 하나만 보고 부러워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저 사람도 나처럼 매일매일 점을 찍으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더 중요한 건, 나는 내 선을 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들보다 느릴 수도 있고,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점과 점 사이를 조금씩 메워가고 있다면, 언젠가는 의미 있는 선이 완성될 거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의도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한 달에 한 번쯤,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찍은 점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새로 배운 것, 해결한 문제, 만난 사람, 읽은 책. 별거 아닌 것 같았는데 나열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점들이 찍혀 있다. 그러면 조금 안심이 된다. 아, 나도 앞으로 가고 있구나. 천천히지만 선을 그어가고 있구나. 앞만 보고 달리면 내가 얼마나 왔는지 모른다. 가끔은 뒤를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찍은 점들이 보이고, 그 점들이 이미 선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선을 그리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선은, 급하게 점프해서 만든 점보다 훨씬 단단하다. 위기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선의 모든 부분을 내가 직접 겪었고, 배웠고, 견뎌냈기 때문이다. 누가 물어봐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고, 어떤 상황이 와도 대처할 수 있다.


커리어는 점프가 아니라 축적이다. 화려한 한 방이 아니라 지루하고 성실한 매일의 합이다. 그리고 그 매일이 모여 만든 선은, 어떤 극적인 점프보다 훨씬 단단하고 의미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다. 오늘 내가 어떤 점을 찍을 것인가.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내가 되어 있을 것인가. 거창한 목표나 화려한 타이틀이 아니라, 오늘 하루 성실하게 점 하나를 찍는 것.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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