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나로 존재하기: '치킨마스크'와 '테라권도형'

이드의 멘탈 가이드 – 현타가 올때 꺼내보는 실전 매뉴얼

by iid 이드

‘이드의 멘탈 가이드’는 현타가 찾아오는 순간마다 꺼내보며,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다시 움직일지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실전 가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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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일본 작가 우쓰기 미호의 '치킨 마스크'라는 동화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목이 왜 이런걸까 정도의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분명 어린이용인데, 읽는 내내 뭔가 뭉클했다. 2025년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같은 감동을 줄 것 같아 글을 쓰게 되었다.



'치킨 마스크' 본문 中

"사람들은 저마다 재능이 담긴 그릇을 가졌다. 하지만 내 그릇은 텅 비었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왜 나로 태어났을까?"

"그래, 나는 뒤처진 아이다. 교실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다. 늘 방해만 되는 나 같은 애는 없는 게 나아."

"나는 머리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만들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나는 도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치킨 마스크야, 다른 마스크가 되지 마. 네가 없어지면 누가 우리한테 물을 주겠어? 치킨 마스크, 넌 마음이 참 예뻐. 이렇게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우리한테 늘 물을 챙겨주잖아. 부탁이니까 다른 마스크가 되지 마. 어디선가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중한 나무 동산 식구들이 모두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나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나는... 나였다. 파랗게 갠 하늘이 멋진 날이었다. 내 그릇에 무언가 들어찬 기분이 들었다."


이 "내 그릇은 텅 비었다"는 감각,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엄마 친구 아들의 대기업/고시 합격 소식 들었을 때, 강남 집 투자/코인/주식으로 몇 억 벌었다는 동창 얘기 들었을 때, 인스타 피드의 수많은 자랑질 사진 볼 때, 나보다 어린 나이에 대표 되어 성공한 사람들 기사 볼 때 문득 몰려오는 그 기분. PT 발표 때 아무도 내 의견에 반응 안 하고, 회식 자리에서 혼자 조용히 술만 마시고, 단톡방에 들어가면 대화가 뚝 끊기는 그 순간들. 우리는 다들 한 번쯤 '치킨 마스크'였을 거다.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온다. "나는 도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걸까?"라는 물음. 스펙 쌓으라고, 자격증 따라고, 영어 공부하라고, 인맥 관리하라고 하는데, 정작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지?'라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물어본 게 언제였더라. 남들이 원하는 나, 남들 눈에 괜찮아 보이는 나를 만들기 위해 뭔가를 계속 채워 넣느라, 정작 '나다운 나'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온다. 식물들이 치킨 마스크에게 말한다. "다른 마스크가 되지 마."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작은 물 주기가 누군가에겐 전부였던 거다. 치킨 마스크는 그제야 깨닫는다. '나로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1등이 아니어도, 특출나지 않아도, 그냥 내가 나로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존재라는 걸. 파랗게 갠 하늘처럼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여기서 갑자기 테라/루나 사건의 권도형 반성문을 왜 꺼내냐고? 바로 이게 '치킨 마스크'의 정반대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권도형 반성문 中

"어머니는 제가 '위대한 사람이 될 운명'이라 믿으셨고,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것들을 집에서 모두 치워버리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무엇에 '위대해져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위대함은 그 자체로 목적이었고, 어머니조차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저는 분명히 '고기능'이 되도록 길러졌지만, '무엇을 위한 기능'인지는 불분명했습니다."

"하버드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방을 나가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저는 그저 컴퓨터 덕후였지만, 커뮤니티가 커지면서 사람들은 창업자인 제가 테라가 직면한 문제들에 항상 정답을 가지고 있길 기대했습니다. 저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음과 미숙함의 한계를 자주 느꼈습니다."

"저는 종종 옳은 일을 처참하게 놓치고 쉬운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초기 성공과 명성에 취했습니다. 테라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젊은 테크 창업자에게 특별한 '우대'와 '경외'를 보내기 마련이고, 저도 그 중심에 섰습니다. 비판자들도 있었지만, 저를 맹신하는 지지자들의 에코 체임버(메아리 공명)가 그 비판을 상쇄했습니다."

"과거의 저라면 귀 기울였겠지만, 그때의 저는 지적 겸손을 잃은 지 오래였습니다."


'위대함'이 목적. 그런데 '무엇을 위한' 위대함인지는 모름. 현재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SKY 가야 하는데 왜 가야 하는지는 모르고, 연봉 1억 받아야 하는데 받고 나면 뭐 할지 모르고, 승진해야 하는데 승진하면 행복할지 모르는. 학원 6개 다니면서도 정작 '왜?'라는 질문은 한 번도 안 해본 우리 모습 말이다. 고스펙 인재가 되도록 길러졌지만, 그 스펙으로 뭘 할지는 아무도 안 알려줬다.


하버드 불합격에 엄마가 눈물 흘리며 방을 나갔다는 대목에서 등골이 서늘해진다. 남 눈에 '보이는' 성공만이 전부였던 거다. 내가 행복한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정도는 돼야지'라는 사회의 시선만이 중요했다.


더 무서운 건 그다음이다. 회사에서 한두 번 일 잘한다고 소문나면 그다음부턴 매번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주변의 기대가 점점 커지고, 인스타 좋아요, 링크드인 조회수, 회사 내 평판 같은 것들이 나를 정의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진짜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들이 만들어준 '나'만 남는다. 권도형처럼 '지적 겸손'을 잃고, 비판에 귀 기울이는 능력을 잃고, 결국 추락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치킨 마스크는 '빈 그릇'에서 시작해서 '나로 채워진 그릇'을 발견했다. 권도형은 '위대함으로 가득 찬 그릇'에서 시작해서 결국 모든 걸 잃었다. 이 두 이야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운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 구조 자체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걸까.


한국 사회를 살다 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하라는 압박 속에 산다. 학벌 중심의 입시 전쟁에서는 내신 0.1점이 인생을 가른다고 믿게 만든다. 실제로 그렇게 믿으며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리고 그 다음엔 돈=성공이라는 공식이 기다린다. 어떻게든 돈만 많으면 성공한 거고, 그것이 사회에서의 내 신분을 결정한다는 믿음. 연봉이 곧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는 수치가 되어버린 세상. 거기에 더해 타인의 인정으로만 채워지는 자존감. SNS에 올린 게시물의 좋아요 100개와 10개의 차이가 하루 기분을 좌우한다. 누가 내 스토리를 봤는지, 누가 반응했는지가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지표가 된다. 그리고 조기 성공 신화. 30세 전에 성공 못 하면 늦었다는 강박, 하루라도 빨리 파이어족이 되고 싶은 마음. '젊은 나이에 이룬 성공'이 더 프리미엄을 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쉴 틈 없이 달린다.


이 속에서 우리는 뭘 잃고 있을까? 바로 '나로 존재할 권리'를 잃고 있다. 나답게 사는 것, 나를 찾아가는 것, 나의 속도로 걷는 것. 이런 것들이 사치가 되어버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들 그렇게 산다는 이유로,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계속 유보한다. '나중에 여유 생기면', '돈 좀 모으고 나면', '승진하고 나면' 그때 생각해보자고.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보면 어떻게 될까.


결국 나이 들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와서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뭐였지? 나는 뭘 원했던 거지?' 그때는 늦다는 말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다. 그때는 불행하기 쉽다. 뒤돌아봤을 때 '내가 원한 삶'이 아니라 '남들이 원한 내 모습'만 보이는 건, 정말 불행한 일이니까.


더 무서운 건, 이게 이제 한두 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우리 모두가, 사회 전체가, 집단으로 방향을 잃고 표류 중이다. 옆 사람 보면 다들 똑같이 달리고 있으니까 나도 달린다. 앞 사람 따라 뛰고 있으니까 나도 뛴다. 그런데 정작 우리 모두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목적지 없는 마라톤. 그냥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아서, 낙오될 것 같아서, 달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솔루션은 없다

오늘은 가이드지만 솔루션이나 '이렇게 하면 됩니다' 같은 깔끔한 5단계 해결책 같은 것도 없다. 그런 걸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다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가끔 현타 올 때,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 도리어 동화책 한 권 펼쳐보는 게 답일 수 있다는 것.


왜 동화책이냐고? 왜냐면 우리는 지금 너무 쓸데없이 복잡한 것들 속에 살고 있다. 자기계발서는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고 말하고, 비즈니스 서적은 '이렇게 하면 돈 번다'고 말하고, SNS는 '이렇게 살면 멋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데?'라는 질문에는 아무도 답을 안 준다. 아니, 답을 줄 수가 없다. 그건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우리는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합리화들 속에서 매일매일을 버티고 있다. '다들 이렇게 사는데 뭐', '어차피 세상이 이런데 뭐', '지금 바쁜데 나중에 생각하지 뭐'. 이런 합리화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우리는 진짜 중요한 질문들을 외면하게 된다.


동화책이 주는 건 해답이 아니라 '리셋'이다. 복잡하게 꼬인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고, 심플한 진실 앞에 서는 경험. 잠깐이라도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지?'라고 물을 수 있는 여백.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정보나 더 좋은 전략이 아니라, 이런 여백일지도 모른다.




마무리하며

동화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은 이랬다. 우리는 언제부터 '되는 것'에만 집착하게 됐을까.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팀장이 되고, 누군가가 되는 것. 그런데 정작 '되고 나면' 뭐가 달라질까? 그때는 진짜 행복할까? 치킨 마스크가 결국 깨달은 건 '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의 가치였다. 히어로 마스크가 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치킨 마스크로 거기 있었고, 식물들에게 물을 줬고,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게 누군가에겐 전부였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평생 발버둥 치는 것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사람으로 '있는 것'. 회사에서 1등 하는 것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 오늘도 나답게 살았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SNS에 올릴 멋진 순간들을 만드는 것보다, 아무도 안 보는 순간에도 내가 떳떳한 것. 어쩌면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나만의 그릇을 채우는 법'이 아니라, '내 그릇이 이미 의미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인지도 모른다.


바쁘게 사는 건 핑계가 될 수 없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당신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원하는 '당신'을 연기하고 있는가? 이 질문만큼은, 나중으로 미루지 말자. 그게 이 동화책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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