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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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커피챗을 했거나, 함께 일했던 HR 동료라면 이 말을 기억할 것이다.
“HR은 조폐공사 직원 같아야 한다.”
조폐공사 직원은 매일 현금 뭉치를 본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것은 돈이 아니다. 그냥 국가가 찍어내는 제품이다. 만약 그것을 매번 돈으로 생각한다면, 견물생심이 생기고,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 직업도 무너진다. HR도 똑같다. 매일 만들어지는 인사 데이터, 보상 테이블, 평가 결과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숨에 욕망과 가십거리가 될 만한 정보다. 하지만 HR은 그것을 단순히 데이터, 즉 흘러가는 상품처럼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HR 자신도 흔들리고, 결국 자신과 조직 모두가 불행해진다.
이 비유가 단순히 재미있는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HR의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조폐공사와 닮아 있다. 조폐공사 직원이 “돈을 다루되 돈이라 여기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유지해야 하듯, HR 또한 “사람을 다루되 감정으로만 보지 않고, 숫자를 다루되 욕망으로만 해석하지 않는” 균형 잡힌 시선을 가져야 한다. 이 직무의 본질은 바로 그 거리감에 있다.
게다가 HR이 다루는 것은 단순히 숫자와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계이고, 커리어이며, 자존심이고, 때로는 가족 전체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그렇기에 HR은 누구보다 쉽게 인간적인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 자리이지만, 동시에 그 흔들림을 가장 강하게 억눌러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조폐공사 직원처럼 스스로의 욕망을 차단하지 못한다면, HR은 매일 자신을 배신하며 살아야 한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보상정보를 접할 때다. 누군가의 연봉, 인상률, 성과급 금액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더 이상 ‘동료’로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는 ‘얼마 받는 사람’으로만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 시선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나와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고, 이유 없는 불편과 분노가 차오른다. “저 정도 성과에 어떻게 저 금액을 받지?”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공정성이라는 잣대가 어느 순간 비교심리로 변질된다. 조직장도 예외가 아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조차 숫자 하나 때문에 갑자기 불공정의 상징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 감정이 개인에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저 사람은 저만큼 받고, 나는 이 정도인가?”라는 불만은 곧 대표의 결정에 대한 불신으로 옮겨간다. 단순히 개인 간의 비교로 끝나는 게 아니라, 결국 최고 의사결정자에 대한 불만으로 연결되며 조직 내 긴장과 갈등을 키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HR이 다룬 정보가 불만의 뇌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갈등은 구성원들만 겪는 게 아니다. HR 스스로도 동일한 감정에 휘말린다. 나 또한 일을 내려놓으면 똑같은 월급쟁이다. 다른 사람의 보상 테이블을 볼 때, 순간적으로 나도 비교한다. “내 연차와 내 기여도는 저 사람보다 낮은 걸까?”, “혹시 내가 더 적게 받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번쩍 떠오른다. HR이라고 해서 인간적인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 수많은 데이터를 접하기 때문에 더 자주, 더 깊이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HR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는 보안 감각이다. 작은 누설 하나가 신뢰 전체를 무너뜨린다. 한 번 흘러나간 인사정보는 다시 회수할 수 없고, 그 여파는 개인과 조직의 관계를 송두리째 흔든다. 법적 규정보다 더 무서운 것은, 구성원들이 “저 사람은 절대 흘리지 않는다”라고 믿는 그 신뢰다. HR은 바로 그 믿음을 유지하는 존재여야 한다. 결국 HR은 매 순간 스스로와 싸운다. 인간적 감정을 억누르며, “나는 HR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태도를 스스로 주입하는 것이다.
그래서 HR은 반드시 조폐공사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정보는 그냥 데이터일 뿐이다. 감정과 연결하는 순간 HR 자신도 정보의 덫에 갇히고 만다. HR이 감정적이 되면 공정성은 무너지고, 판단은 왜곡된다. HR은 누구보다 거리두기를 잘해야 하는 직무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HR도 결국 사람이다. “저 사람은 늘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라는 감정, 혹은 “저 사람은 언제나 성실했던 사람”이라는 호감이 마음을 흔든다. 이런 감정이 인사 의사결정에 스며들면, 공정성은 순식간에 깨진다. HR의 훈련은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감정을 인식하면서도 판단을 흔들리지 않게 지켜내는 것이다. 마치 조폐공사 직원이 눈앞의 현금을 제품으로만 인식하는 것과 같다. 이 훈련은 반복적이고도 고통스럽다. 회의실 문 앞에서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나는 오늘 인간적인 호불호를 잠시 내려놓고 들어간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의사결정의 도구로 쓰지 않는 연습을 한다. HR의 전문성은 바로 이 자기 검열과 반복 훈련에서 자라난다.
조직문화 논의에서 내가 종교적 언어를 경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의 가치”, “우리의 신념”이라는 언어는 듣기엔 멋지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교리로 변한다. 그 순간 HR 스스로도 사람을 그 교리의 잣대로 재단하기 쉽다. HR의 언어는 사람을 움직이는 도구이지, 특정 집단의 신앙이 되어선 안 된다. HR은 언제나 감정보다 구조와 맥락을 먼저 보고,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 감정 거리두기의 태도는 때로 HR을 외롭게 만든다. 잡담 자리에서 쉽게 섞이지 못하고, 어느 순간 HR 주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고독은 HR의 불행이 아니라 공정성을 지켜주는 방패다. 벽이 있어야만 공정성이 유지된다. 이 거리를 감내하는 것 역시 HR의 숙명이다. 동시에 HR 스스로는 늘 갈등한다. “나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까지 차갑게 굴어야 하지?” 하지만 결국 감정을 문 앞에 두는 태도 없이는 HR이라는 역할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고독과 갈등을 받아들이는 순간, HR은 비로소 자신의 역할에 다가간다.
HR이 조폐공사 같아야 한다는 말에는 또 다른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나는 여러 차례 이직을 했고,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내 보상을 직접 요구한 적이 없다. 이건 HR의 직업병이다. 누구보다 쉽게 협상할 수 있고, 성과나 퇴사 카드까지 꺼낼 수도 있는 위치였지만, 오히려 HR이기에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이 있었다. 타인의 보상은 누구보다 명확히 설계하면서, 정작 내 보상은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 아이러니하고 불편하지만, 이것이 HR이라는 직업이 가진 특수한 그림자다.
더 난감한 건, 주변에서는 오히려 HR이기에 “본인 보상은 더 잘 챙기겠지”라고 쉽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HR은 자기 보상을 이야기하는 순간, 전문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다. 협상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욕심을 드러내면, ‘남의 보상은 냉정하게 다루면서 자기 건 따로 챙기는 이중잣대 아닌가’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운 것이다.
다행히 과거에는 대표가 먼저 내 성과와 가치를 인정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대표가 알아서 챙겨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HR은 자기 보상 앞에서 늘 모순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자기 목소리를 내면 직업적 윤리와 충돌하고, 침묵하면 자기 권익을 놓친다. 결국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음속에 작은 균열이 남는다.
이 과정에서 HR은 늘 자문한다. “내가 내 보상을 요구하면, 그 순간부터 신뢰가 깨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침묵을 택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억울함이 남는다. 때로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이게 업보다’라고 받아들이지만, 그 순간에도 작은 회한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 모순 자체가 HR이라는 직업이 끝내 짊어져야 하는 업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한다. HR이 독단적으로 제도를 만들고 결정한다고.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정책은 대표의 의사결정에 따라 마무리된다. HR은 과정과 근거를 설계할 뿐, 최종 버튼은 대표가 누른다.문제는 여기에도 아이러니가 있다는 점이다. 대표는 보상결정의 대상 밖에 존재한다. 연봉을 동결한다고 해도 대표는 이미 월급이라는 기준선에 묶이지 않는다. 대표는 지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는 룰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그 룰의 적용에서는 빠져 있는 예외적 존재다.
그래서 HR은 회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불편하다. 나 역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대표는 룰 바깥에서 존재한다. “나는 이 제도의 영향을 그대로 받으면서 왜 이 결정을 설득하고 실행해야 하지?”라는 모순적 질문이 늘 따라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R은 그 결정을 실행한다.
이 괴리감이 HR의 업보다. 회사와 대표의 논리를 대변하면서도, 개인적 감정을 억누른 채 움직이는 역할. 이 간극을 감내하는 것이 HR의 숙명이다. HR은 언제나 경영진의 논리와 구성원의 감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신뢰를 잃고, 두 쪽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보면 스스로 소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줄타기를 계속해야 한다.
이 줄타기는 단순한 직무 기술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자기 설득의 과정이다. HR은 늘 혼잣말을 한다. “나는 이 결정을 싫어하지만, 내가 싫다는 이유로 멈출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HR이기 때문이다.” 회의실을 나와 홀로 자리에 앉아, 때로는 억울함을 삼키고, 때로는 허탈함을 느끼면서도 결국 다시 원칙으로 돌아간다. 이 자기 설득 속에서 HR은 하루하루 버틴다. 바로 이 자기 설득이 HR의 운명, 그리고 업보다.
조폐공사 마인드는 HR이 매일 버텨내야 하는 최소한의 마음가짐이다. 돈을 보아도 돈이라 부르지 않는 훈련, 감정을 느끼면서도 문 앞에 내려놓고 들어가는 태도, 자기 권익조차 요구하지 못하는 아이러니, 대표와 구성원 사이에서 스스로를 지워가며 줄타기하는 역할. 이것들은 모두 HR이 선택한 직업이자, 동시에 숙명이다.
여기에는 해답이 없다. HR이 겪는 갈등과 모순은 단순히 제도로 해소되거나, 개인의 결단으로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HR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공정성을 흉내 내야 하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HR은 매 순간 자기 안의 모순을 들여다보고, 그 모순을 견디는 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 업보는 무겁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게가 HR을 성숙하게 만든다. 누구도 욕망과 감정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매일 확인하는 사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눌러내는 사람. HR은 결국 그 모순 속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얻는다.
조폐공사 직원이 돈을 제품으로 보듯, HR은 사람과 숫자, 정보와 감정을 매일 다루면서도 그것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 태도가 HR을 고립시키고 때로는 불행하게 만들지만, 바로 그 태도 덕분에 조직은 균형을 유지한다. HR의 완성은 설득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흔들림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척 버티는 태도, 모순을 감내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태도, 끝내 업보를 짊어지고도 그 무게를 자기 길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HR의 철학이고,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