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 생산성이라는 말에 우리가 빠지는 착각(1편)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특정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도, 정답을 말하는 것도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면 좋겠다. (문의 : AI 클론 채팅, 자문/컨설팅 문의 )


[생산성 시리즈 ① 편]


그래서 그 생산성이 뭔데요

HR 일을 하다 보면, 생산성이라는 단어를 정말 자주 듣는다. 리더 회의에서도, 대표와의 1on1에서도, 심지어 팀원 면담에서도. 요즘 생산성이 안 나온다, 이 사람은 시간 대비 생산성이 낮다, 조직 전체적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다들 너무 자연스럽게 쓰는데, 막상 한 번만 되물어보면 금방 멈칫한다.


그 생산성이라는 게, 정확히 뭘 기준으로 하는 말이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십중팔구 비슷하다. 일의 양이요, 결과물 숫자요, 시간 대비 성과요, 뭐 그런 거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도 아니다. 생산성이라는 개념은 원래 경제학에서 왔다. 투입 대비 산출. 같은 자원을 넣고 더 많은 결과를 뽑아냈으면 생산성이 높은 거다. 단순하고 명쾌한 정의다. 그런데 이걸 조직에 그대로 가져오면 묘한 일이 생긴다.


하루에 문서 30개를 쏟아낸 사람과, 하루에 핵심 문서 3개를 완성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숫자로 보면 30개가 압도적이다. 그런데 조직이 진짜 필요했던 건 그 3개짜리 핵심 문서였다면? 30개는 생산성이 높은 게 아니라 그냥 많이 한 것이다. 생산성은 양이 아니라 가치 중심의 산출이다. 이 두 가지를 빼놓으면 그건 그냥 분주함을 측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여했는가
비즈니스 목표에 적중했는가

그리고 바로 여기서부터 착각이 시작된다.




우리가 빠지는 생산성의 세 가지 함정

조직에서 생산성이라는 말이 꺼내질 때, 그 안에는 늘 생략된 전제가 있다. 뭘 기준으로 삼는지, 어떤 결과를 바라보는지, 거기에 대한 공통 언어 없이 그냥 쓰인다. 그래서 이 단어는 조직 안에서 소통을 흐리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부당하게 몰아세우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특히 반복되는 함정이 세 가지 있다.


① 숫자가 전부인 것 같은 착각

생산성을 숫자로 정의하면 관리하기가 편해진다. 클릭 수, 리드 건수, 응대 시간, 작성 문서 수. 대시보드에 딱 띄워놓으면 뭔가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수치가 실제 성과와 반드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거다.


실제로 세일즈 조직에서 콜 수 기준으로 생산성을 관리한 적이 있다. 하루 30콜 이하면 비효율로 분류했다. 그런데 실적 상위자는 매번 15~20콜 사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사람은 거절당할 가능성이 높은 콜을 빼고, 전환 가능성 높은 리드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이 숫자를 채우느라 바쁠 때, 그 사람은 골라서 때리고 있었던 거다. 오히려 다다익선 전략이 생산성 착각을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


마케팅팀도 비슷한 케이스였다. 매주 A/B 테스트 10개를 돌린다며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숫자만 보면 대단하다. 그런데 3개월간 유의미한 전환율 개선은 딱 1건이었다. 진단해보니 테스트의 목표 설정 자체가 없었다. 그냥 해보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실험 목표를 캠페인 전환율 2배 향상이라는 성과형 단위로 묶고, 핵심 실험 수만 줄이고 실행 시간을 늘렸더니, 전환율 1.8배 개선. 실험 수는 줄었는데 생산성은 3배가 됐다.


숫자는 일부만 말해줄 뿐이다. 겉보기엔 누가 더 일한 것처럼 보여도, 진짜 가치는 그 숫자 뒤에 있는 의사결정의 맥락과 선택의 전략에서 생긴다. HR은 이걸 수치 너머로 읽어야 한다.



② 안 되면 사람 탓이라는 함정

조직에서 성과가 안 나올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은 누가 문제냐는 거다. 그리고 그 화살은 거의 항상 개인에게 돌아간다. 이 사람은 몰입이 약하다, 이 직원은 좀 수동적이다, 생산성이 안 나온다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조나 맥락의 문제를 사람이 떠안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결과물이 늦는 이유가 집중력 부족이 아니라, 업무 목표가 모호하거나, 리소스가 반복적으로 차단되거나, 결정권자가 수시로 바뀌는 환경 탓일 수 있다. 해봤자 소용없는 구조에서, 열심히 안 한다고 혼내는 건 좀 억울한 일이다.


고객 응대팀이 딱 이 케이스였다. 팀은 항상 바빴고, 고객 만족도는 낮았고, 번아웃은 심각했다. 관리자들은 매뉴얼을 더 만들고, 피드백 양식을 추가했다. 더 많은 걸 하라는 방향이었다. 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니 핵심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대기 시간, 권한 부족, 반복 이슈. 정책과 시스템의 한계가 응대 품질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매뉴얼 개편이 아니라, 권한 확대와 반복 이슈 자동화, 이슈 공유 리듬으로 구조 자체를 바꿨다. 응대 수는 그대로인데 재이슈 발생률이 50% 줄었고, 고객 만족도는 20% 올랐다. 사람이 더 열심히 한 게 아니라, 일하는 판이 달라진 것이다.


진짜 위험한 건, 사람 때문이라고 보는 순간 개선의 여지가 사라진다는 거다.

조직이 바꿔야 할 구조를 놓친다

리더가 점검해야 할 목표 설정 방식을 건너뛴다

팀이 정리해야 할 협업 흐름을 무시한다

이걸 전부 빼놓고, 책임을 태도나 역량으로만 돌리게 된다. HR이 생산성 이슈를 볼 때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는 건 사람의 결함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든 환경의 결함이다.



③ 바쁜 게 곧 일 잘하는 거라는 착각

일을 많이 하는 것과 성과를 내는 것은 다르다. 이건 누구나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막상 조직 안에서 보면, 바쁜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슬랙에 답변이 빠르고, 회의에 항상 참석하고, 야근도 불사하는 사람을 보면 참 열심히 한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사람은 생산성 높은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보면, 바쁨은 오히려 비효율을 가리는 위장막일 수 있다. 하루 종일 회의만 하면 본래 업무에 집중할 시간이 없고, 의사결정이 늦어지면 실행이 흐트러지고, 보고에만 시간을 쓰면 정작 결과물은 빈약해진다.


기획팀 리더가 하루 평균 6개의 회의에 참석하고, 슬랙 응답 속도는 팀 내 1위였고, 주간 보고서도 가장 빠르게 올렸다. 누가 봐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팀의 프로젝트 완료율은 전사 최하위였다. 리더가 모든 회의에 다 들어가면서 실제 기획 작업에 쓸 시간이 없었고, 팀원들은 리더 확인을 기다리느라 실행이 계속 밀리고 있었다. 리더의 바쁨이 팀 전체의 병목이 된 거다. 회의 참석을 주 3일로 제한하고, 팀원에게 실행 권한을 넘겼더니 프로젝트 완료율이 두 달 만에 2배로 올랐다.


결국 생산성은 투입의 총량이 아니라, 그 투입이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줬느냐에서 측정되어야 한다. 내가 한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가 빠져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그건 그냥 공허한 분주함이다.




착각을 알았으면, 눈부터 바꿔야 한다

세 가지 함정을 인식했다면, 다음은 보는 방식을 바꾸는 거다. HR이 생산성을 다룰 때, 숫자를 관리하겠다는 마인드에서 벗어나서, 먼저 이런 눈으로 봐야 한다. 성과는 마지막 숫자가 아니라 흐름이다. 기획 → 실행 → 점검 → 피드백 → 반복. 이 루프가 매끄럽게 돌아갈 때 비로소 성과가 생긴다. 누가 못했다를 찾기 전에, 어디서 흐름이 끊겼는가를 먼저 묻는 게 HR의 첫 번째 시선이다.


생산성은 개인 역량의 합이 아니라 연결의 품질이다. 기획자는 디자이너와, 디자이너는 개발자와, 마케터는 세일즈와 연결돼 있다. A가 아무리 뛰어나도 B에게 전달이 막히면 전체 생산성은 떨어진다. 평가서를 고치기 전에, 일이 흘러가는 구조부터 봐야 한다.


핵심은 뭘 더 하느냐가 아니라, 뭘 안 해도 되는지를 정해주는 것이다. 일이 많은 건 문제가 아니다. 그중에 뭐가 중요한지 모르고 하는 게 문제다. 뭘 해야 하는지와 함께 뭘 안 해도 되는지를 정해주는 것. 이게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든다.


시간이 아니라 몰입을 봐야 한다. 몇 시간 일했는가보다 중요한 건,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몰입했느냐다. 회의가 너무 많으면 몰입할 틈이 없고, 승인 절차가 복잡하면 흐름이 끊기고, 보고 체계가 과해도 마찬가지다. 이건 당장 뭘 바꾸라는 얘기가 아니다. 생산성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숫자부터 꺼내지 않고 이 네 가지를 먼저 점검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대화의 방향이 꽤 달라진다.


그런데 이 눈을 가져도, 모든 직무와 산업에 같은 기준을 들이대면 또 다른 착각에 빠진다. 개발자와 세일즈의 생산성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제조업과 IT 스타트업은 일의 본질 자체가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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