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특정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도, 정답을 말하는 것도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면 좋겠다. (문의 : AI 클론 채팅, 자문/컨설팅 문의 )
생각보다 이 질문을 많이 받는다. 처음 만났을 때, 링크드인 DM으로, 심지어 글 댓글로도. "이드가 뭔가요?" "혹시 그 이드 맞아요?" 한 번은 누군가 아이디(ID)를 줄인 거냐고 물은 적도 있고, 또 한 번은 판타지소설 주인공 이름 따온 거 아니냐는 질문도 받았다. 둘 다 아니다. 하나는 너무 평범하고, 하나는 너무 거창하다.
이 닉네임은 클래스101에 입사하면서 만들었다. 요즘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닉네임 문화를 쓰니까, 뭘로 할지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다. 조건은 간단했다. 남들이 잘 안 쓰는 것, 짧을 것, 부르기 쉬울 것, 그리고 한 번 들으면 기억에 남을 것. 두 글자 닉네임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짧으면 짧을수록 이미 누군가가 쓰고 있기 마련이고, 안 쓰는 건 대체로 이유가 있다. 그 와중에 떠오른 게 이드였다. 두 글자, 발음 깔끔, 그리고 아는 사람은 아는 그 이름. 물론 짧고 외우기 쉬운 게 첫 번째 이유였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게 뭔지는 조금 뒤에 얘기하겠다.
참고로 왜 id가 아니고 iid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별거 없다. id로 하려고 했더니 두글자이기도 하며 ID/PW와 같은 시스템 기본 단어들은 도메인 영역에서 가입이 안 된다. 그래서 글자 하나를 더 붙여야 했는데, idd보다는 iid가 낫지 않나. d를 하나 더 붙이면 어딘가 오타 같고, i를 하나 더 붙이면 그래도 이드라는 발음이 살아있으니까. 이름의 탄생이란 게 다 그렇다. 철학 반, 현실 반.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알아챘겠지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그 이드가 맞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세 영역으로 나눴다. 이드(Id), 에고(Ego), 초자아(Super-ego). 우리가 보통 자아라고 부르는 건 에고 쪽이고, 초자아는 도덕이나 양심 같은 것들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이드는, 쉽게 말하면 본능이다. 충동의 에너지.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는, 가장 원초적이고 솔직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업 중에 졸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완벽하게 알면서도 눈이 감기는 이유, 다이어트 중인데 치킨을 시키는 이유, 새벽 두 시에 유튜브 한 편만 더 보겠다는 다짐이 세 시까지 이어지는 이유.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가는 그 모든 것들이 이드의 영역이다.
이드만 있으면 인간은 동물과 다를 게 없고, 초자아만 있으면 아마 죄책감에 눌려서 하루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에고가 그 사이에서 중재를 하는데, 솔직히 그 중재가 항상 성공적인 건 아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여기서 학술적으로 깊이 파고들 생각은 없지만, 핵심은 이거다. 이드는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포장 없고 변명 없는 있는 그대로의 에너지다. 그리고 이건 조직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회사에 출근한다고 해서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다. 조직 안에서도 사람은 결국 자기를 지키려 한다.
여기서 한 번쯤 의아할 수 있다. HR을 하는 사람이라면 초자아 쪽이 더 어울리지 않냐고. 솔직히 그 생각도 일리가 있다. HR이 수행하는 기능만 놓고 보면, 규정을 만들고, 기준을 세우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그건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 역할이니까. 겉으로 보면 초자아의 대리인 같다. 조직의 양심, 도덕적 파수꾼. 그럴듯하다.
그런데 실제로 HR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이 일의 본질이 초자아에 있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오히려 정반대다.
HR이 다루는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인간의 본능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인정받고 싶어 하고, 불안하면 방어하고, 위협을 느끼면 공격하거나 도망친다. 승진에서 밀리면 억울해하고, 평가가 낮으면 분노하고, 동료가 먼저 올라가면 나는 왜 안 되는지 복잡한 감정이 올라온다. 조직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대부분은, 잘 들여다보면 논리의 충돌이 아니라 감정의 충돌이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이 안 되는 상황, 옳은 줄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싫은 결정, 회사가 맞다는 건 아는데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 사람들은 대부분 감정으로 먼저 반응하고, 논리는 그 뒤에 끼워 맞춘다. 회의실에서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실은 먼저 기분이 나빠진 거고 그다음에 근거를 찾은 경우가 훨씬 많다. HR을 오래 하면 그게 보인다.
퇴사 면담을 해보면 더 잘 느낀다.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는 진짜 이유는 보상 체계의 구조적 문제도 아니고, 평가 제도의 공정성 결여도 아니다. 물론 면담지에는 그렇게 적는다. 하지만 그 밑에는 거의 항상 더 원초적인 감정이 깔려 있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서운함, 내가 여기서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불안, 더 이상 여기에 있어봤자 나한테 좋을 게 없다는 생존 본능. 그 사람이 퇴사 사유란에 적은 건 커리어 성장의 한계였을 수 있지만, 면담을 하다 보면 결국 나오는 말은 비슷하다. 여기서 나는 그냥 숫자인 것 같았다는 것. 이건 이드의 영역이다.
HR이 만드는 제도와 규정은 분명 초자아적이다. 근태 관리, 평가 기준, 보상 체계, 징계 절차. 이런 것들은 조직이라는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도덕과 규범의 영역이다. 그건 맞다.
그런데 그 제도들이 왜 필요한지를 한 꺼풀만 벗겨보면, 결국 이드 때문이다. 사람들이 항상 합리적으로만 행동한다면 평가 제도가 이렇게 복잡할 이유가 없다. 모두가 감정 없이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면담 가이드라인 같은 것도 필요 없다. 누구나 늘 공정하게 행동한다면 규정집이 이렇게 두꺼울 리가 없다. 어떤 리더가 한 팀원에게만 유독 좋은 평가를 주는 것도, 어떤 팀원이 특정 업무만 피하려 하는 것도, 누군가가 회의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전부 본능이 작동하고 있는 거다. HR 제도의 상당 부분은, 솔직히 말하면 인간의 본능이 조직 안에서 너무 가감 없이 드러나지 않도록 포장지를 씌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포장지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잘 만든 평가 제도가 현장에서 안 돌아가는 이유, 공들여 갖춘 보상 체계에 사람들이 불만을 품는 이유, 대부분은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제도가 사람의 본능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다. 초자아의 언어로 일하되, 이드의 논리를 이해해야 하는 것. 그게 HR이라는 일의 실제 모습이다.
멋있어서 이 이름을 고른 건 아니다. 판타지소설의 주인공도 아니고, 어떤 거창한 선언도 아니다. 다만 HR을 하면서 계속 돌아오게 되는 생각이 하나 있었고, 그걸 이 두 글자에 담고 싶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이름을 쓰면서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되는 건 남들의 본능이 아니라 나 자신의 본능이다. HR을 한다고 해서 내가 본능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나도 인정받고 싶고, 평가에 예민하고, 내가 한 일이 무시당하는 것 같으면 속이 뒤집힌다. 누군가의 퇴사 면담을 하면서 공감하는 척하다가, 사실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 있다는 걸 아는 순간들이 있다. 제도를 만드는 사람도 결국 그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본능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본능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히려 그래서 이드라는 이름이 리마인더가 된다. 누군가 나를 이드라고 부를 때마다, 아 맞다 이 일은 결국 사람의 본능을 다루는 일이지, 라는 생각이 새삼 환기된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는데, 실제로는 되게 소소하다. 슬랙에서 "이드님"이라고 호출이 올 때, 회의실에서 "이드"라고 불릴 때, 그 두 글자가 아주 잠깐이지만 나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도 본능이 있는 사람이고, 나도 본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원점.
이드를 이해한다는 건, 결국 사람 앞에서 섣불리 판단하지 않겠다는 뜻에 가깝다.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를 도덕적으로 먼저 재단하는 게 아니라, 저 밑에 어떤 불안이 있는 건지,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건지를 먼저 들여다보겠다는 것. 그게 매번 되느냐고 하면 당연히 안 된다. 나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그 방향은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 방향을 잊지 않기 위해 아예 이름에 박아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