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 이직할 때 후회하지 않는 법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특정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도, 정답을 말하는 것도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면 좋겠다. (문의 : AI 클론 채팅, 자문/컨설팅 문의 )


커피챗을 하다 보면 이직 고민이 생각보다 자주 나온다. 스타트업 경험이 길다 보니 어떤 회사인지를 묻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더 많은 건 이직 자체를 해야 하는 건지, 그 고민의 영역에서 의견을 구하는 경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거의 조언을 안 한다.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반대 이유에서다. 그 사람의 인생에서 꽤 중요한 결정 지점인데, 내가 알고 있는 건 대화 한 시간 분량뿐이다. 뭔가를 단정짓기엔 너무 모른다. 아주 가끔, 맥락이 어느 정도 모일 때만 구체적인 의견을 드리기도 하는데, 그때도 확신보다는 같이 생각해보는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 질문 하나는 거의 매번 꺼낸다. 결정을 대신 내려주는 질문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방향을 잡아주는 질문이다.




"나가야 할 이유"와 "가야 할 이유",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이직엔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있다. 먼저 퇴사하고 그다음을 찾는 경우, 다니면서 동시에 찾는 경우. 이번엔 후자, 지금 회사에 발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 다음을 고민하는 상황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사귀는 중에 다른 매력적인 사람이 나타났을 때 환승이별을 고민하게 된다. 그때 판단 기준은 결국 두 가지밖에 없다. 지금 상대와 헤어져야 할 이유가 충분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상대가 가진 매력이 정말 확실하거나. 어느 쪽이든 하나가 분명하면 결정은 내릴 수 있다. 문제는 그 두 개가 모두 흐릿할 때다.


이직도 똑같다. 지금 회사를 떠나야 할 이유가 명확하거나, 아니면 다음 회사로 가야 할 이유가 명확하거나. 이 둘은 OR이다. AND로 가면 조건이 너무 빡빡해진다. 두 가지가 동시에 완벽하게 갖춰지는 순간은 거의 오지 않는다. 하나가 충분히 여물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① 떠나야 할 이유를 명확히 한다는 것

지금 회사를 나와야 할 이유가 명확하다는 건, 하나의 챕터에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다. 그 계기는 뭐가 됐든 상관없다. 관계의 갈등이어도 되고, 성장의 한계라는 판단이어도 되고, 맡아보고 싶었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거나 이 팀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는 감각이어도 된다. 형태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납득이 되느냐다.


그 마침표가 생기면 과거가 더 이상 미화되거나 아쉬움으로 소환되지 않는다. 좋았던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남고, 힘들었던 것도 그냥 그랬던 시간으로 정리된다. 전 직장이 갑자기 그리워지거나, 지금 회사의 불편함이 과거의 낭만으로 희석되는 일이 줄어든다. 그 상태에서 새 출발을 하면 현재에 훨씬 집중할 수 있다.


반대로, 그냥 지쳐서 나왔거나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 빠져나왔다는 식의 불분명한 퇴사는 그 감정들을 다음 직장까지 고스란히 가져간다. 환경이 바뀌어도 패턴은 바뀌지 않는다. 나를 힘들게 한 게 회사였는지, 그 안의 관계였는지, 아니면 내가 그냥 지쳐 있던 건지를 구분하지 못한 채 떠나면, 새로운 곳에서도 비슷한 지점에서 막히게 된다.


② 가야 할 이유가 나를 움직인다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다음 회사로 가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면, 현재 회사에 특별히 큰 불만이 없어도 이직은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직무적으로 지금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거나, 보상이 유의미하게 달라지거나,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거기 있거나, 그 회사가 만드는 것 자체가 나를 끌어당기거나. 이유의 종류는 다양해도 된다. 핵심은 그 이유가 나를 실제로 움직이게 할 만큼 실재하느냐다.


그 이유가 있으면 새로운 곳에서 힘든 일이 생겨도 버티는 자원이 된다. 왜 여기 왔는지를 알기 때문에, 초반의 어색함이나 예상 밖의 불편함이 있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그냥 지금보다 좋아 보여서, 연봉이 조금 높아서, 뭔가 새로워 보여서 온 경우는 그 기대감이 현실에 부딪히는 순간 버티는 이유가 사라진다. 결국 또 다른 곳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이직했는데 또 이직을 고민하는 상태, 그게 가야 할 이유 없이 움직였을 때 자주 만들어지는 패턴이다.


③ 어중간한 마음이 만드는 것

그런데 둘 다 애매한 채로 이직하면 어떻게 될까. 이건 그 사람의 의지력 문제가 아니다. 꽤 자연스러운 인간의 메커니즘이다.


새로운 곳에 가면 처음엔 기대로 시작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의 마찰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뇌는 자동으로 과거를 미화한다. 전 직장이 갑자기 꽤 괜찮았던 곳으로 기억된다. 그때 그 팀이 좋았지, 그 자유로움이 좋았지, 그 사람들이 좋았지. 물론 나올 때는 그게 전혀 안 보였다. 커피챗에서 이런 분들을 꽤 만났는데,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옮기고 나니 여기도 별로 안 좋은 것 같다, 처음엔 좋았는데 막상 와보니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곳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말이 있다. 도망친 곳엔 낙원이 없다고. 이직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말이 자꾸 떠오른다. 회사가 바뀌어도 비슷한 불만이 따라오고, 새로운 곳도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탈출하고 싶은 곳이 된다. 이직을 반복하는 패턴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회사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애초에 이직의 이유가 충분히 여물지 않았던 거다. 도망의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면, 어디를 가도 결국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어중간한 마음은 어디서든 어중간한 결과를 만든다. 그리고 그 사이클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다. 적응할 시간도 없이, 또 다른 탈출구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이직에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거창한 전략이 필요한 게 아니다. 단 하나,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느냐다. 나는 왜 나가고, 왜 거기로 가는가. 그 둘 중 하나라도 스스로에게 설명이 된다면, 움직여도 된다. 여기서 설명이 된다는 건 완벽한 확신을 말하는 게 아니다. 불안하고 두렵더라도, 그 결정의 이유가 자기 안에 있다는 감각 정도면 충분하다. 이직은 원래 불안한 거고, 그 불안은 이유가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유가 있는 불안과 이유가 없는 불안은 버티는 힘이 다르다.


설명이 잘 안 된다면, 지금 하고 있는 게 이직 준비가 아니라 그 설명을 찾는 과정일 수 있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 과정이 충분히 쌓여야 이직 이후의 시간이 달라진다. 조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 내가 진짜 무엇 때문에 움직이려 하는지를 먼저 아는 게 순서상 맞다.


다만 그 상태에서 내린 결정은, 나중에 자신이 책임지기 어렵다. 결과가 좋으면 운이 좋았던 거고, 결과가 나쁘면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또 다른 곳을 기웃거리게 된다. 이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유 없이 반복되는 이직이 문제다.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정답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질문만큼은 같이 들고 가면 좋겠다.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떠나려 하고, 무엇을 향해 가려 하는가. 그 답이 흐릿하다면, 아직 때가 아닐 수도 있다. 그 답이 어렴풋이라도 보인다면, 이미 준비는 시작된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iid] 평가제도 수립 케이스, 그 과정의 기록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