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도 비관도 아닌, 데이터로 본 26년 봄의 AI시대

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

by iid 이드

‘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지인들이 익명으로 참여해, 술자리에서나 나눌 법한 솔직한 생각과 이야기를 가볍지만 진지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프로젝트입니다.


image.png


요즘 AI 얘기가 나오면 항상 두 부류가 있다. 한쪽은 이게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기회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일자리가 다 사라질 거라고 한다. 매일 뉴스를 보면 같은 날 낙관론과 비관론이 나란히 올라온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둘 다 맞는 것 같지도 않고. 어느 한쪽이 맞다고 확신하기엔 현실이 너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낙관론도 비관론도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그래서 도대체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좀 궁금해졌다. 누군가의 주장이 아니라, 실제 데이터로 확인하고 싶었다. 마침 실제로 AI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Anthropic이 낸 보고서를 보게 됐다. 수백만 건의 실제 사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실제로 어떤 업무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직접 들여다본 자료다. 이론이나 예측이 아니라 지금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자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AI 서비스를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회사가 자기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내놓은 결과라는 점에서, 여타 전망 보고서와는 결이 좀 다르다. 오늘은 이걸 들고, 미국 고용 지표 데이터까지 얹어서 한번 풀어보려고 한다.




이론과 현실 사이, 그 묘한 간극

100만 건의 실제 대화 데이터를 통해 분석된 보고서가 보여주는 첫 번째 메시지는 꽤 충격적이다. AI가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 이미 전방위적이라는 거다. 특정 직군 몇 개의 얘기가 아니다. 화이트칼라 지식 노동 전반에 걸쳐 이론적으로는 이미 대부분의 업무가 AI 커버리지 안에 들어와 있다.


아래 차트가 그걸 한눈에 보여준다. 파란 게 이론적으로 가능한 범위, 빨간 게 실제 쓰이는 범위다.

image.png

※ 출처: Anthropic, Labor Market Impacts of AI: A New Measure and Early Evidence (2026)


컴퓨터·수학 직군: 이론 94%

사무·행정: 이론 90%

비즈니스·금융: 이론 85%

법률: 이론 80%

교육·도서관: 이론 70%대

사실상 육체노동이나 대인 서비스 직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이 이론적으로는 AI 대체 가능 범위 안에 들어와 있다. 성역이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수준이다. 그리고 이게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 이미 측정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게 포인트다.


두 번째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 실제 전환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거다. 2025년 1월 기준 전체 직종의 36%에서 업무의 25% 이상을 AI로 처리하고 있었는데, 여러 보고서를 합산하면 이 비율이 49%까지 올라간다. 1년 사이에 절반 가까운 직종이 이미 업무의 4분의 1을 AI로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체감이 안 될 수 있지만, 숫자는 이미 많이 와 있다.


여기서 반전이 하나 있다. AI 때문에 가장 먼저 타격받는 게 단순 노무직일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데이터는 정반대를 가리키고 있다. 가장 AI 노출이 높은 그룹은 여성일 가능성이 16%포인트 더 높고, 평균 연봉은 47% 더 높으며, 대학원 학위 보유 비율이 가장 낮은 그룹 대비 4배 가까이 높다. 요약하면, 지금 가장 먼저 AI와 마주하고 있는 건 고학력·고임금 화이트칼라 지식 노동자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AI 피해자의 모습과는 꽤 다르다.

가장 노출도 높은 직종: 컴퓨터 프로그래머, 고객 서비스 담당자, 데이터 입력 전문가, 의료 기록 전문가, 시장 조사 분석가

가장 노출도 낮은 직종: 요리사, 정비사, 바텐더, 구조대원


보고서는 단순히 어떤 직종이 AI에 노출돼 있는지를 넘어서, AI가 실제로 업무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처리하는지 성공률까지 반영한 새로운 측정 방식을 도입했다. 그랬더니 기존 노출도 측정과 꽤 다른 그림이 나왔다. 데이터 입력 전문가나 방사선 전문의 같은 직종은 단순 커버리지보다 실제 영향이 훨씬 크게 나타났고, 반대로 교사나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노출도 대비 실제 영향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숫자가 크다고 무조건 위험한 게 아니고, 숫자가 작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보고서가 가장 조심스럽게 꺼내는 대목이 있다. 이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화이트칼라 지식 노동자들 사이에서 2007~2009년 금융위기에 준하는 대불황급 충격이 올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명시적으로 언급한다. AI를 직접 만들어 파는 회사가 스스로 이 가능성을 보고서에 올렸다는 게, 어쩌면 가장 무거운 대목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가능한 시나리오로 공식 분류됐다는 것 자체를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따로 있다. AI가 커버하는 업무가 주로 고학력이 요구되는 업무라는 점에서, 각 직무에서 가장 핵심적인 고숙련 업무를 AI가 먼저 흡수하는 탈숙련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거다. 여행사 직원을 예로 들면, AI가 복잡한 여행 일정 설계를 맡아버리면 남은 사람 몫은 단순 티켓 발권 정도가 된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일자리의 속이 비워지는 거다. 본인이 언제부터 잉여가 됐는지 잘 모른 채로 흘러가는 게, 어쩌면 더 무서운 부분이다.


의사들이 하는 처방전 갱신 승인 같은 업무는 AI가 충분히 처리 가능하지만, 실제로 이 업무를 AI가 수행하는 건 아직 관찰되지 않는다고 보고서는 짚는다. 이론과 현실 사이에 제도적 장벽, 조직의 관성, 신뢰의 문제 같은 벽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근데 그 벽이 지금 속도로 얇아지고 있다면,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같이 봐야 한다. 지금의 간극이 안전마진이 아니라 유예기간일 수 있다는 거다.




고용 지표는 정말 괜찮은 건가

미국 정부 발표를 보면 고용은 괜찮다고 한다. 근데 진짜 괜찮은 건지, 데이터를 좀 찬찬히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실업률보다 비농업 고용 증감을 봐야 한다. 실업률은 구직을 포기한 사람은 실업자로 안 잡힌다. 안 뽑아도 실업률엔 영향이 없다. 그러니 지표는 멀쩡해 보이는 거다. 비농업 고용 증감이 훨씬 날것의 신호다.


image.png


흐름을 보면 꽤 명확하다. 2023년 초엔 한 달에 30~50만 명씩 늘었다. 2024년부터 눈에 띄게 줄더니, 2025년 하반기엔 마이너스(-10만 5천 명)를 찍는다. 2025년 말~2026년 초는 겨우 5만~12만 명 수준으로 버티는 중이다. 실업률이 3%대에서 4.4%대로 올라온 것도 해고가 늘었다기보다, 새로 들어갈 자리 자체가 줄었다는 신호다. 채용의 수도꼭지가 조용히 잠기고 있는 거다.


여기에 빅테크 해고 뉴스를 얹으면 그림이 더 선명해진다. 2025년 한 해 동안 글로벌 테크 업계에서 약 24만 5천 명이 잘렸고, 그 중 70%가 미국 본사 기업발이었다. 그리고 이 중 AI 도입이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된 감원만 미국에서 5만 5천 명에 달했다. 경기 탓, 과잉 채용 조정 탓이라고 하지만, AI가 명분으로 올라오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게 포인트다.


회사별로 보면 더 노골적이다.

Meta는 2025년 1월 전체 인력의 5%인 약 3,600명을 감원했고, Amazon은 2025년 10월 기업직 1만 4천 명을 사상 최대 규모로 줄였다.

Microsoft는 2025년 7월에만 9천 명을 내보내며 2025년 누적 1만 5천 명을 감원했고, CEO는 AI가 코드의 30%를 작성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Salesforce는 AI가 업무량의 30~50%를 처리하면서 1천 명을 감원했다.

숫자를 가지고 당당하게 말하는 게, 오히려 더 서늘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2026년 들어서도 이 흐름은 꺾이지 않고 있다. Amazon은 2026년 1월에만 추가로 1만 6천 명 감원을 발표했다. 2025년 1만 4천 명에 이은 연속 대규모 감원이다. 2026년 들어 3월 현재까지 166개 테크 기업에서 5만 5천 명 이상이 잘렸고, 하루 평균 764명꼴이다. 2025년 연간 하루 평균 674명보다 오히려 속도가 빨라졌다.


한 분석가는 2025년을 자동화와 AI, 지속적인 비용 절감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이끈 해로 정의하면서, 이 흐름이 2026년에도 전속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게 일시적인 조정인지, 구조적인 전환인지는 아직 모른다. 근데 방향만큼은 꽤 명확해 보인다. 2025년 전체 감원 공고는 110만 건을 넘어서며 2024년 연간 수치보다 44% 높았고, 2020년 팬데믹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근데 실업률은 4%대를 유지하고 있다. 잘린 사람들이 다른 데서 취업하거나, 아예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2025년 하반기 글로벌 경제 환경까지 얹으면 더 복잡해진다. 트럼프 2기 관세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재점화됐고, 고물가와 고용 둔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시장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금리를 내리자니 물가가 걱정이고, 물가를 잡자니 경기가 더 가라앉는 그 딜레마. 연준이 2025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하를 재개하면서 어떻게든 경기를 떠받치려 했지만, 수년간 이어진 고금리의 여파로 기업들의 채용 의지는 이미 쪼그라든 상태였다.


결국 지금은 이 모든 게 겹친 국면이다. 고물가, 성장 정체, 지정학 불안, 고금리 후유증, 거기에 AI까지. 기업 입장에서 비용을 줄일 이유는 차고 넘치는데, AI는 그 명분을 가장 깔끔하게 제공해주고 있다.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서 청년층의 취업 성공률이 ChatGPT 등장 이후 약 14% 하락했다는 것처럼, 해고 대란이 아니라 애초에 문이 안 열리는 방식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온갖 경기 부양책을 쏟아붓는 와중에도 고용의 체력이 조금씩, 조용히 빠지고 있다. 수치는 버티고 있는데 맥박이 약해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근데 우리 주변 분위기는 정반대다

글로벌 데이터로 이렇게 무거운 얘기를 늘어놨는데, 막상 한국 스타트업 씬을 보면 온도가 완전히 다르다. 위기감이 아니라 열기다. 글로벌에서는 AI 때문에 채용이 줄고 있는데, 우리 주변에서는 AI 못 쓰는 사람을 안 뽑겠다는 공고가 늘고 있다. 같은 현상을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체감하고 있는 셈이다.


빅테크발 AX 바람이 한국 스타트업까지 빠르게 번지고 있다. 조직 구조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안 건드리는 영역이 없다. 채용 공고엔 어느새 AI 툴 활용 능력이 기본 요구사항으로 들어가 있고, HR, 운영, 재무, 마케팅 할 것 없이 업무 자동화와 프로세스 혁신을 동시다발로 진행 중이다. 경영진 회의에서 AI 얘기가 안 나오면 오히려 이상한 분위기다.


근데 여기서 좀 걸리는 게 있다. 이런 시대 변화에 따른 프로세스 혁신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2000년대 ERP 도입이 그랬고, 클라우드 전환이 그랬다. 십수 년간 DT 열풍이 불었고, 빅데이터, 애자일, 마이크로서비스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메타버스, 블록체인, NFT가 기업 전략 문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의 AX가 그 계보의 최신 버전이다.


그 모든 전환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제대로 된 PI는 내부 프로세스가 먼저 명확히 정의되고 구조화된 상태에서 기술을 얹는 순서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야 뭘 자동화할지도 알 수 있으니까. 그 순서를 건너뛰고 기술부터 들어간 케이스들이 어떻게 됐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메타버스 사무실 만들어놓고 아무도 안 들어간 것처럼, 블록체인으로 공급망 혁신한다고 했다가 조용히 접은 것처럼.


지금 AI도 그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내부 프로세스가 정리도 안 된 상태에서 AI를 넣으면 혼란을 자동화하는 것밖에 안 된다. 비효율을 더 빠르게 돌리는 거다. 특히 HR 영역이 그렇다. 채용, 평가, 온보딩 프로세스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AI 툴을 붙이면 기존의 모호함이 알고리즘으로 포장될 뿐이다. AI 도입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방향은 맞다. 근데 트렌드라서 한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나는 이게 좀 걱정된다

낙관론자들은 AI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거라고 한다. 비관론자들은 대량 실업이 올 거라고 한다. 근데 지금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극적이지 않다. 조용하고, 느리고, 그래서 잘 안 보인다.

문이 닫히는 게 아니라, 문이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 해고 통보가 오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핵심 업무가 빠져나간 자리에 뭔가 채워지긴 하는데, 예전 같은 무게는 아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가장 능력 있다고 여겨지던 사람들, 고학력에 고연봉인 지식 노동자들 사이에서 먼저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HR 입장에서 진짜 고민이 되는 건 이거다. 지금 많은 조직들이 AI 도입 속도 경쟁을 하고 있는데, 정작 그 전에 물어야 할 질문을 건너뛰고 있는 것 같다는 거다. 우리 조직에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뭔지, 그 경계가 어디인지, AI가 들어온 이후 남은 사람의 역할이 어떻게 재정의되어야 하는지. 이 질문들이 선행되지 않으면, AI 도입은 효율화가 아니라 그냥 사람을 도구 옆에 세워두는 것에 가까워진다.


채용도 마찬가지다. AI 활용 능력을 요구사항에 넣는 건 좋은데, 그게 실제로 어떤 업무에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조직 내에서 정의가 돼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요건은 있는데 기준은 없는 상태. 그러면 면접관마다 판단이 달라지고, 들어온 사람도 어디에 AI를 써야 할지 몰라서 헤맨다. 결국 AI를 도입했는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익숙한 결말이 반복된다.


2025년 기준 전체 직종의 절반 가까이에서 업무의 25% 이상을 AI로 처리하고 있다는 수치는 체감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이미 많이 와 있는데 우리가 아직 실감을 못 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변화가 드라마틱하지 않아서다. 어느 날 갑자기 로봇이 내 자리에 앉아있는 게 아니라, 내가 하던 일 중 제일 중요한 부분이 조용히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게 효율인지 손실인지는,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때 가서야 알게 되는 게 제일 무서운 시나리오다. 조직도, 개인도, 지금 이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척은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 모르겠다. 그 간극이 좁혀지기 전에 뭔가 터질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서서히 잠식당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지금은 낙관도 비관도 아니라 그냥 제대로 보는 게 먼저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K자형 사회, 갈라진 세상에서 버티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