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
‘취중잡담(醉中雜談) - 술김에 적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지인들이 익명으로 참여해, 술자리에서나 나눌 법한 솔직한 생각과 이야기를 가볍지만 진지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프로젝트입니다.
요즘 누구를 만나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주식 얘기, 부동산 얘기, 애들 취업 얘기. 근데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에는 뭔가 오르면 다 같이 좋아했는데, 이제는 누군가 오르면 다른 누군가는 내려가는 느낌이랄까.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더라. 이걸 경제학자들은 K자형 경제라고 부른다고 한다.
K자형 경제가 뭐냐면, 말 그대로 알파벳 K처럼 생긴 거다. 코로나 같은 충격이 오면 한동안 다 같이 떨어졌다가, 회복기에 어떤 쪽은 쭉 올라가고 어떤 쪽은 계속 내려간다. V자 회복처럼 다 같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누구는 올라가고 누구는 떨어지는 양갈래 길. 그게 K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냥 경기회복 패턴 중 하나인 줄 알았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이게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뭔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어 가는 것 같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이게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일자리, 교육, 관계, 가치관. 사회 전체가 K자로 갈라지고 있다.
일자리 쪽 얘기부터 해보자. 요즘 취업 시장이 어떻냐고? 청년들은 취업이 안 되고, 중년들은 구조조정 칼바람 맞고, 장년들은 희망퇴직 압박받는다. 그 사이에 잠깐 숨 좀 고르려고 쉬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숨고르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구조조정이나 희망퇴직이 예전처럼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거기에 AI 기술은 미친 듯이 발전하고 있고. 솔직히 지금 당장은 AI가 사람 일자리를 다 뺏어가는 건 아닌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다들 찜찜해한다. 이직 시장도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에는 이직이 연봉 올리는 수단이었는데, 지금은 나갔다가 자리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다들 움직이기가 무섭다. 있는 자리라도 붙잡고 있자는 분위기. 그게 또 기업 입장에서는 구조조정하기 편한 환경이 되는 거다.
경제 지표를 보면 더 묘하다. 주식은 오른다. 근데 자세히 보면 소수의 빅테크나 특정 산업만 올라가는 거다. 나머지는 제자리거나 오히려 떨어진다. 주가가 올라서 시가총액은 커지는데,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효율화를 명목으로 인력을 줄이는 곳이 많다.
서울 강남의 대기업만 보면 경기가 괜찮아 보이는데, 시야를 넓혀서 전국 단위로 보면 폐업하는 회사가 급증하고 있다. 자영업 하시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진짜 힘들다고 한다. 임대료는 오르고 손님은 줄고. 자산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니까 FOMO,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두려움이 만연해졌다. 코인이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뭐라도 빨리 태워야 할 것 같은 조바심. 차근차근 모아서 뭔가 이루는 건 바보 같아 보이는 시대가 됐다.
근데 월급은? 소득 증가율은 물가 상승률보다 낮다. 열심히 일해서 월급 오른 것보다 장 본 가격이 더 오른 느낌. 실제로 그렇다.
그럼 왜 이렇게 됐을까. 여기서 유동성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돈을 계속 풀고 있다. 경기 부양이니 양적완화니 해서 시중에 돈은 엄청나게 풀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돈이 많이 풀리면 다 같이 좀 나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현실은 정반대다.
풀린 돈은 결국 자산 시장으로 흘러간다. 주식, 부동산, 코인. 근데 이걸 받아먹을 수 있는 건 이미 자산이 있는 사람들이다. 주식 1억 가진 사람이 20% 오르면 2천만 원이 생기지만, 100만 원 가진 사람한테 20%는 20만 원이다. 같은 상승률인데 절대적 격차는 더 벌어진다. 부동산은 더 심하다. 집 한 채 있는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수억이 오르는데, 전세 사는 사람은 그 올라간 만큼 보증금을 더 내야 한다.
유동성이 투입될수록 자산 가진 쪽은 더 올라가고, 없는 쪽은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구조. K자의 벌어짐을 가속시키는 부스터 같은 거다. 앞에서 말한 주가 상승, 자산 가격 폭등, FOMO. 그게 다 이 유동성 구조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돈을 풀면 풀수록 격차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벌어진다는 게, 좀 절망적이다.
물가 얘기를 좀 더 해보자. 만 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점심값이었는데 이제는 부족하다. 커피 두 잔 먹으면 끝이다. 만 원의 행복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구매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든다. 편의점 도시락이 4천 원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5천 원을 넘긴다. 외식은 만 원 아래가 거의 없어졌고, 장을 보면 장바구니에 몇 개 안 담았는데 5만 원이 훌쩍 넘는다. 체감 물가는 공식 물가 상승률보다 훨씬 높다.
근데 이상한 건, 실제로 물건 만드는 제조업이나 농업 쪽은 오히려 어렵다는 거다. 농산물 가격은 오르는데 농가 소득은 안 오르고, 공장 납품 단가는 깎이는데 소비자 가격은 올라간다. 생산하는 사람들은 힘들고, 중간에서 유통하는 쪽만 돈 버는 구조. 물가도 K자다.
집값은 어떤가. 서울 핵심 지역, 강남 서초 용산 같은 데는 끝없이 오른다. 천장이 없는 것 같다. 근데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방은 더 심하다. 미분양 쏟아지고 가격 떨어지고. 같은 나라 안에서 부동산 시장이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움직이고 있다.
서울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남 아파트는 30억을 넘기는데, 같은 서울이라도 외곽 구축 아파트는 몇 억이 빠졌다. 신축과 구축, 역세권과 비역세권, 대단지와 소단지. 부동산 안에서도 K자가 선명하다. 젊은 사람들은 그래서 서울로 몰리는데, 서울 와봤자 집값이 너무 비싸서 정착이 어렵다. 지방에 있으면 미래가 없어 보이고, 서울에 오면 현실이 안 되고. 진퇴양난이다.
인구구조는 더 암울하다. 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압도적 1위. 자랑할 일이 아니다. 취업은 점점 늦어지고 있고, 막상 취업해도 퇴직은 점점 빨라진다. 30대 중반에 겨우 자리 잡았나 싶으면 50대에 밀려난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결혼하는 사람은 줄고 이혼하는 사람은 늘고 있다. 결혼이라는 게 선택지가 아니라 포기 대상이 되어버렸다. 아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기회 있을 때 안 낳는 게 아니라 기회 자체가 없는 거다. 결혼하려면 집이 있어야 하고, 아이를 낳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두 가지가 다 K자의 아래쪽에 있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인구구조가 무너지면 경제도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인데, 그걸 알면서도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답답하다.
여기까지 보면 K자형이 경제 숫자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다. 가치관도 갈라지고 있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분노에 반응하고, 자극적인 것에 끌리고, 당장 눈앞의 이익을 쫓는다. SNS에서 조회수 터지는 건 대부분 자극적인 콘텐츠다. 짧고 강렬한 것. 그게 알고리즘이 원하는 거고, 우리가 실제로 소비하는 거다.
근데 다들 속으로는 안다. 이러면 안 되는 거. 그래서 유튜브 자기계발 채널을 구독하고, 서점에서 명상 책을 사고, 관계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강연에 돈을 낸다. 좀 더 성숙하게 살고 싶다는 갈망이 분명히 있다. 자극과 성숙함 사이에서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있는 거다.
문제는 성숙한 가치를 추구하려는 마음이 현실 앞에서 계속 꺾인다는 거다.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면서 이렇게 살아야지 다짐하지만,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 다시 자극과 생존의 세계로 돌아간다. 다짐하고, 좌절하고, 다시 다짐하고, 또 좌절하고. 이걸 반복하다 보면 결국 다짐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가치관마저 K자로 갈라지는 건 이런 구조 때문인 것 같다.
교육을 보자. 사교육비 지출은 역대 최고를 찍고 있다. 강남 학원가는 여전히 호황이고, 유학 보내는 집은 계속 보낸다. 근데 그 옆에서 교육비 부담 때문에 아이를 포기하는 집도 늘고 있다. 같은 학교 안에서도 격차가 눈에 보인다고 한다. 공교육은 힘을 잃어가고, 그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건 돈 있는 집뿐이다.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라고 했는데, 그 사다리 자체가 유료가 되어버렸다.
인간관계도 갈라지고 있다. SNS 팔로워 수백만인 사람이 있고, 일주일 동안 대화 나눈 사람이 배달기사뿐인 사람이 있다.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관계의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연결된 사람은 점점 더 연결되고, 단절된 사람은 점점 더 고립된다. 관계가 있어야 정보도 들어오고 기회도 생기는데, 고립되면 그마저도 끊긴다. 외로움이 질병이 되는 시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 갈라짐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조바심이 온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 그래서 무리하게 투자하기도 하고, 이직을 시도하기도 하고, 뭐든 빨리빨리 결과를 내려고 한다.
근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구조가 안 바뀌면 어떻게 될까. 조바심은 어느 순간 무력감으로 바뀐다. 해봤자 안 되는구나. 열심히 해도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구나. 그 무력감이 쌓이면 결국 포기로 간다. 연애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 내 집 마련 포기. N포 세대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현실 자체를 포기하는 현포 세대가 되어가는 것 같다.
가끔 일본을 보면서 생각한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 그러니까 깨달음의 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들. 욕심 안 부리고, 소비도 최소화하고, 연애도 귀찮아하고, 그냥 조용히 자기 세계 안에서 산다. 우리가 그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는 안 되겠다고 했었는데, 솔직히 지금 우리 20~30대 보면 꽤 비슷해지고 있지 않나.
그나마 일본은 내수 시장이라도 크다. 1억 3천만 인구가 만드는 경제 규모 안에서, 동네 편의점 알바를 해도 혼자 먹고사는 게 가능한 구조다. 소비를 줄이고 조용히 살겠다고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있다. 근데 우리는? 인구 5천만에 내수 기반도 약하고, 서울 아니면 일자리 자체가 마땅치 않은데. 다들 포기 모드로 들어가면 그 다음은 뭐가 남는 걸까. 일본식 포기마저도 우리한테는 사치일 수 있다는 게 좀 씁쓸하다.
뚜렷한 답이 있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이게 한 방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끝없이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생각나는 것들을 좀 꺼내본다.
먼저 큰 틀에서 봤을 때, 이건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영역이 있다. 자산에 돈이 몰리는 구조, 노동 소득보다 자본 소득이 빠르게 커지는 구조. 이걸 개인한테 열심히 하라고 하는 건 좀 잔인하다. 세제 개편이든 자산 과세 강화든, 유동성이 풀릴 때 그게 골고루 흘러가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 부담은 줄이고,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는 현실화하는 방향. 말은 쉬운데 실행은 어렵다는 거 안다. 근데 방향이라도 맞아야지.
지역 격차 문제도 그렇다. 모든 게 서울에 몰리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지방은 계속 죽어간다. 기업이든 대학이든 병원이든, 지방에도 사람이 살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 일자리 문제, 물가 문제, 인구구조 문제. 앞에서 다 얘기했지만 결국 이것들은 개인의 의지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책이 방향을 잡아줘야 개인의 노력이 의미가 있어지는 거다.
K자의 핵심 문제는 중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다. 중산층, 중소기업, 중간 가격대 소비, 중간 수준의 일자리. 다 무너지고 있다. 위 아니면 아래. 근데 사실 사회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려면 이 중간이 두꺼워야 한다. 중산층이 소비하고, 중소기업이 고용하고,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품질의 것들이 거래되는 게 경제의 허리다. 그 허리가 부러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하청으로만 살아가는 구조가 아니라 자기 기술과 브랜드로 버틸 수 있는 생태계. 프리랜서나 1인 기업가가 최소한의 안전망은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제도. 중간 소득층이 무리하지 않고도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주거 정책. 이런 것들이 중간을 두텁게 만들어주는 거 아닐까.
구조가 바뀌길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개인 차원에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근데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남들 속도에 맞추려고 무리하지 말자는 거다. K자형 시대에 가장 위험한 건 FOMO에 휩쓸려서 감당 안 되는 투자를 하거나, 빚내서 남들 따라가는 거다. 실제로 영끌 투자했다가 금리 올라서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사람들이 지금 얼마나 많은가. 차라리 내 속도를 인정하는 게 낫다. 월급이 적으면 적은 대로, 자산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지금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꾸준히 쌓아가는 것. 그게 답답하고 느려 보여도, 무리해서 한 방 노리다 터지는 것보다는 낫다.
그리고 돈만이 아니라 경험을 쌓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 K자형 사회에서 자산 격차를 단기간에 뒤집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근데 경험과 실력은 좀 다르다. 지금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나중에 써먹을 수 있는 경험을 하나씩 쌓아두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단단한 기반이 된다. 사이드 프로젝트든, 새로운 분야 공부든, 사람을 만나는 것이든. 자산은 없어도 경험은 누구한테도 빼앗기지 않으니까.
소비 기준도 남이 아니라 나한테 맞춰야 한다. SNS를 보면 다들 좋은 데서 먹고, 좋은 데 여행 가고, 좋은 차를 타는 것 같지만, 그건 그 사람들의 하이라이트만 모아놓은 거다. 남의 하이라이트에 내 일상을 비교하면 절대 이길 수 없다. 내 수입에 맞는 소비, 내 상황에 맞는 라이프스타일. 그게 초라해 보여도 지속 가능한 게 훨씬 낫다. 버티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결국 K자형 사회를 한 방에 뒤집을 마법 같은 건 없다. 구조적인 문제는 정책이 바뀌어야 하고, 그건 시간이 걸린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무리하지 않는 것, 나만의 속도를 지키는 것 정도다.
근데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혼자 버티려고 하지 말자는 거다. K자형 사회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고립된 사람이다. 조바심이 무력감으로, 무력감이 포기로 넘어가는 그 흐름을 막아주는 건 거창한 솔루션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이다. 같이 불안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K자형 사회라는 건 결국 연결이 끊어지는 사회다. 올라가는 쪽과 내려가는 쪽이 서로 다른 세상에 살게 되는 거다. 그 단절이 깊어질수록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이해가 안 되면 분노하게 되고, 분노가 쌓이면 사회 자체가 갈라진다.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제도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기도 하다.
우리 다 K자의 어딘가에 서 있다. 어느 쪽이든. 근데 적어도 혼자 서 있지는 말자.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한테 요즘 어때, 한마디 건네는 것. 어쩌면 그게 K자형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가장 확실한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