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Hyundai Motor Group에서의 시간은 내 커리어에서 두 번째 성장의 시기였다. 이 시기가 특별했던 이유는, HR 커리어 중 유일하게 ‘의사결정자’가 아닌 ‘주니어’로서 순수하게 배우며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시스템과 프로세스, 그리고 조직 운영 방식을 체득할 수 있었던 중요한 경험이었다.
나는 현대모비스에서 3년,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에서 3년을 보냈다.
삼성전자 인턴 이후, 합격이 당연할 거라 생각하며 지원했던 곳이 현대모비스 HR 포지션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단 1명만 뽑는 포지션이었다... 이것도 내 HR 커리어의 묘한 시작이었던 것 같다.)
현대모비스의 특수한 위치
당시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그룹 내에서 굉장히 특수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업 구조가 많이 변했지만, 그때는 완성차 공장에 부품 모듈을 공급하고, AS 부품을 구매·개발·공급하는 것이 주요 사업이었다.
쉽게 말하면, 현대·기아차와 부품사 사이에서 중간 관리 역할을 하며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였다.
내 첫 배치 부서는 글로벌 인사기획팀이었다. 이곳에서 조직관리(1년) → Global HR(2년)을 맡아 3년간 근무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대기업 HR 주니어에게 흔치 않은 ‘기획 업무’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내 첫 사수는 8살 차이 나는 노총각 대리님이었다. 술도 자주 사주시고, HR 업무도 많이 가르쳐주셨다. 단순한 부사수가 아니라 동생처럼 챙겨주신 분이었고, 지금도 돌아보면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그분 밑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큰 행운이었다.
그분에게 배운 HR의 핵심
✅ HR은 단순한 운영이 아니라, 정치적·비즈니스적·조직적 관점에서도 검토해야 한다.
✅ 조직관리를 하려면 정무적 감각이 필요하다. 단순히 데이터를 다루는 게 아니라, 마치 시사평론가나 정치평론가처럼 조직 내 흐름을 섬세하게 읽어야 한다.
✅ HR은 기능적 역할에 갇혀선 안 된다. HRBP(HR Business Partner)의 핵심은 비즈니스와 조직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기아차의 해외법인을 모두 지원해야 했기 때문에, 그룹 내에서 가장 많은 해외 생산법인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는 Global HR 담당으로서 전 세계 해외법인의 HR 운영을 혼자 총괄했다.
법인장, 주재원, 그리고 국내 본부까지 관리하며 다양한 HR 실무를 경험했다.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이해관계자들을 경험했던 시기였다.
Global HR 업무를 하며 현대차그룹의 구조와 역학관계도 배웠다. 현대차그룹은 계열사별 성격이 다르지만, 일정한 서열이 존재했다.
현대차 > 기아차 > 모비스 (나머지 계열사는 등등…)
지금은 회사 간 합병과 독립성이 강화되어 과거와는 다르지만, 당시에는 그룹 내 ‘서열 문화’가 강했다.
GHR 업무를 두 번 정도 사이클을 돌리고 나니, 오만하게도 권태로움이 밀려왔다. 처음부터 운영이 아닌 기획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반복되는 업무에 적응하기 어려웠고, 막연한 회의감이 들었다.
"앞으로 수십 년을 이렇게 직장생활해야 한다면?…"
그때 마침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에서 TF 참여 기회가 찾아왔다. 이것이 내 HR 커리어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TF의 핵심 내용은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 인사기획팀이 헤이컨설팅과 함께 주도한 프로젝트였다.
중국 지역에 진출한 현대차그룹 해외법인 전체의 HR 컨설팅을 진행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이 프로젝트는 그룹 기획조정실과 현대차·기아차 중심으로 팀을 꾸려 진행되었는데, 현대차그룹의 TF는 전통적으로 완성차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해외법인 현황을 분석해보니 현대모비스가 그룹 내에서 가장 많은 해외 생산법인을 보유하고 있었다.이런 구조적 특성을 고려해 TF 구성 시 예외적으로 현대모비스에서도 인원을 추가 배치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 참여가 내 커리어에 큰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었다.
✅ 평생 못 가볼 곳들을 경험했다. 윤동주 생가와 백두산을 방문했던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국인/중국인 직원들을 인터뷰하고 다양한 산업군과 직무들에 대해 직무평가 및 레벨링을 진행하였다.
✅ 컨설팅의 복잡함과 역학 관계를 직접 체험했다.
1년 동안 같은 프로젝트를 하며 같이 일한 사람들을 누구보다 깊이 알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이 프로젝트는 내 커리어에서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 기회였다.
• 만약 좋은 인상을 남긴다면, 큰 기회가 될 수 있었지만,
• 반대로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면, 전 그룹 차원에서 낙인이 찍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함께 일했던 과장님이 내 역량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셨고, 그 덕분에 그룹 인사실장님께 추천을 받아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기획조정실로 이동한 최초의 ‘완성차가 아닌 계열사 출신’ HR이 된 순간이었다.
기획조정실로 이동한 후, 술자리에서 과장님께 직접 물어봤다.
"왜 저를 추천하셨나요?"
과장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물론, 사실 여부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주니어임에도 불구하고, 현대모비스 조직을 설명할 때 단순한 구조 분석이 아니라 value chain과 business 관점을 함께 고려하며 이야기했다는 점."
"직무평가 인터뷰가 정말 길고 지난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들 졸 때 너만은 끝까지 졸지 않았다는 점."
(…이걸 장점으로 생각해 주셨다니, 새삼 감사하다. �)
지금 돌아보면, 그때부터 나는 새로운 조직으로의 이동과 적응에 대한 '스트레스 내성'을 키우고 있었던 것 같다. 현대차·기아차의 다른 조직과 미팅하거나 회식에 참여할 때마다,
"몇 기인가요?"
"어떤 배경으로 그룹에 이동하게 됐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며, 항상 10분 정도는 자기소개와 배경 설명을 해야 했다.
현대모비스 내부에서도, 기획조정실로의 이동은 전례가 없는 케이스였다. 그래서 나를 보내면서도,
"어차피 그룹 프로젝트 참여 경험이 있어도 원래 조직에서는 성과로 인정받기 어렵다."
"경력만 붕 떠버리는 것 아니냐?"
이런 우려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전보가 결정되자, 이전과 달리 나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신기했다.
나는 원래 "정치보다는 실무!" 그야말로 ‘아싸 of 아싸’ 스타일이었다.
"일만 잘하면 되는 거지, 정치나 인싸 문화가 왜 중요한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조직 내 네트워크와 포지셔닝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기획조정실에서의 시간은 재미있으면서도 힘든 시기였다.
뛰어난 경력직들과 새롭고 다양한 기획성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었고 기획조정실은 그룹 HQ 조직임에도 내부 관리/안정화보다도 외부의 트렌드/변화/혁신을 더 중시하였다. 새벽 6시 30분 출근과 보수적인 현대문화는 여전했지만, 3년간의 경험은 내게 큰 자산이 되었다.
특히, ‘인사혁신 TF’는 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이 프로젝트는 생산직(노조)을 제외한 일반직을 대상으로, 전기차와 ICT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HR 제도를 설계하는 작업이었다. 핵심 변화 방향은 다음과 같았다.
✅ 직급 통합
✅ 상대평가 → 절대평가로의 전환
✅ 연공서열 → 직무 중심의 평가 체계로 전환
즉, 기존의 보수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반영하려는 시도였다.
보수적인 문화가 강한 현대차에서 이런 급진적인 HR 혁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설레었다.
다른 ICT 기업들의 HR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면서,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내가 경험해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룹 기획조정실까지 경험하며, "현대차그룹에서 계속 HR을 한다면 안정적인 커리어는 보장될 것이다."
그런데, 왜 마음 한구석이 허전할까?
"대기업의 안정적인 커리어만이 내 길일까?"
"10년 후에도 나는 같은 일을 하고 있을까?"
"매일 같은 그릇을 닦아 반들반들하게 만드는 게 맞는 걸까?"
이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현대차그룹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새로운 세상을 본 이상,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날 바로, 네이버, 우아한형제들, 비바리퍼블리카에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