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다시 쓰는 이력서 ②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Hyundai Motor Group이 나의 두 번째 커리어 시기로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HR커리어 중 유일하게 내가 어떤 의사결정을 하기보단 조금 더 주니어로서 일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폭넓게 순수하게 배우며 일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만 배울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시스템과 프로세스 그리고 관점을 체득했다. 현대모비스에서 3년 그리고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에서 3년을 다녔다.
[현대모비스]
삼성전자 인턴 시절에 이어서 쓰게 되면 당시 난 삼성전자 인턴 정규직 전환이 당연히 될 줄 알고 큰 생각 없이 재미 반 호기심 반으로 지원했던 포지션이 현대모비스의 HR 포지션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단 1명만 뽑는 포지션이었다....ㅎㄷㄷ. 이 또한 나의 HR커리어의 묘한 시작 같긴 하지만)
모비스는 현대차그룹 내에서 굉장히 특수한 위치를 담당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업구조가 많이 변했지만 당시 모비스 주력 사업은 현대차와 기아차 완성차공장에 공급하는 부품 모듈을 공급하는 사업과 AS부품을 구매/개발해서 공급하는 사업을 담당했다. 간단히 말하면 중간 관리 역할로 이익을 획득하는 구조인데 수많은 계열사 부품사, 1차, 2차 부품사들을 중간에서 총괄하는 역할이다.
HR포지션으로 입사해 처음으로 배치된 것은 글로벌인사기획팀이었다. Global HR과 인사기획, 조직관리 기능이 모여있는 팀이었다. 3년간의 모비스 생활 중 1년은 조직관리, 그리고 2년은 Global HR을 담당했다.
내 첫 사수는 나와는 8살 차이 나는 노총각 대리님이었다. 사수님은 참 술도 많이 사주시고 HR에 대해서도 많이 가르쳐주셨다. 단순히 부사수로 보기보단 동생처럼 생각하셔서 단순히 업무영역 외 많은 것도 알려주시고 또 많이 챙겨주셨다. 그때에 비하면 나이도 먹고 경력도 쌓인 상태에서 생각해 봐도 여전히 나의 첫 사회생활을 그분 밑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겐 굉장히 큰 행운이었다.
그분을 통해 제일 크게 배운 점은 HR은 기능 / 운영적으로만 보기보단 때에 따라선 정치적, 비즈니스적, 조직적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시 조직관리 업무를 같이 하며 정무적 감각을 많이 배웠다. 내가 정무적이기도 해야 하지만 정무적 상황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볼 수 있어야 해야 했다. 마치 시사평론가나 정치평론가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Human Resource Business Partner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HR을 한다는 것이 단순히 기능/이론적 영역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며 조직가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거기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도 배웠다.
보통 대기업에서 HR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면 주니어 때는 보통 급여/보상 혹은 채용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다 해야 할지 아니라 해야 할지 모르지만 나의 업무는 기획성 업무로 시작했다.
모비스의 해외법인은 현대차 해외 법인과 기아차 해외 법인 두 군데를 모두 지원해야 했다. 그래서 전 그룹사 중에 가장 많은 해외법인을 가지고 있다. (생산법인에 한정해서, 판매법인으로 하게 되면 너무 규모나 사이즈가 천차만별이라 기준 산정이 어렵다). Global HR 담당이다 보니 해외법인의 전반적 운영성 업무는 혼자서 다 담당하게 되었다. 혼자서 전체 법인의 법인장과 주재원들, 그리고 카운터 파트너인 국내 본부들까지 조직관리하면서 HR의 다양한 측면을 배울 수 있었다면 GHR을 하면서는 한 번에 핸들링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의 최대치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룹사 구조와 역학관계에 대해서도 배웠다. 현대차그룹은 계열사별 성격(완성차, 부품, 제철, 금융, 건설 등)에 따라 독립성을 가지긴 했지만 어느 정도 서열이 있었다.
현대차 > 기아차 > 모비스 (나머지 계열사는 등등)
지금은 회사들 간 합병도 생기고 조금 더 사업구조들의 독립성이 강해져서 과거랑은 다르다고 듣긴했다.
모비스 시절의 업무나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추후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GHR 업무를 하던 중 2번 정도 사이클을 돌리고 (오만하게도) 사실 난 권태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 입사하고 맡은 업무가 운영성 업무가 아니다 보니 매번 새롭고 기획하는 업무 중심이다 보니 동일한 영역이 반복되는 것에 내성이 없었다. 그러면서 막연히 아.... 몇십 년 해야 할 직장생활 어떡하지란 걱정을 막연하게 했던 것 같다.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
그러던 중 아주 우연히도 현대차 그룹에서 진행하는 TF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지금에서야 해당 TF의 내용을 이야기한다면 그룹 기조실 인사기획팀에서 헤이컨설팅과 주도하여 중국지역에 진출한 현대차그룹 해외법인 전체 HR컨설팅을 진행하는 TF였다. 그룹 기조실과 현대차/기아차 중심으로 멤버를 꾸렸는데(현대차그룹은 대부분 완성차 중심으로 진행해왔었다) 해외법인 현황을 확인해보니 그룹사 중에는 현대모비스 해외법인이 제일 많다 보니 프로젝트 구성 측면에서 모비스에서 인원을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나에게는 굉장히 큰 기회가 되었다. 새로운 조직으로의 이동도 이동이지만 직장생활의 1차 권태기를 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년여 동안 약 50여 개의 현대차그룹 중국법인을 방문하여 실제 제도를 분석하고 구성원들을 인터뷰해 직무평가를 하였다. (평생 못 가볼 지역들도 많이 가보고 개인적으로는 연길기아법인을 방문해 윤동주 생가나 백두산을 가본 것도 나에겐 큰 경험이었다.) 1년을 동거동락했으니 알려면 얼마나 잘 알 수 있었겠냐 사실 그 당시의 나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나에게 좋은 인식을 가진다면 나에겐 기회였겠지만 혹시나 내가 못했다면 전 그룹 차원에서 내가 낙인이 찍힐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운 좋게도 나에 대해서 좋은 인식과 평가를 가지셔서 같이 일했던 과장님이 나를 그룹 인사실장님에게 추천해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 이동을 하게 되었다.
전보 후 술자리에서 왜 나를 추천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당시 과장님의 답은 아래와 같았다. 물론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난 만족했었다
주니어가 모비스 조직을 이야기하면서 value chain과 business 를 함께 고려하며 이야기했다는 점
직무평가 인터뷰가 정말 길고도 지난할 수 있었는데 다들 졸 때 저는 졸지 않았다는 점
인수합병과 같은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면 HR영역에서는 처음으로 완성차가 아닌 계열사에서 기획조정실로 이동한 케이스가 되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난 새로운 조직에의 이동 및 적응에 대한 스트레스 내성을 키웠던 것 같다. 다른 현대차/기아차 조직과 미팅이나 회식을 참여하면 꼭 몇 기인지 혹은 무슨 배경으로 그룹에 이동하게 된 지를 10분 정도는 매번 설명하며 친해져갔었던 것 같다.
현대모비스에서도 이런 케이스가 전혀 없었기에 나를 보내며 모비스에선 그룹 프로젝트를 참여해 봤다 해도 원래 조직에선 성과로 인정받기도 힘들고 그만큼 경력만 붕 뜰 수 있다 본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전보가 결정된 이후 다른 관심들이 생기자신기하기도 했다. 난 원래 아싸 of 아싸 주의로 일만 잘하면 되었지 정치나 인싸가 왜 중요하나 스타일이긴 했다.
현대차그룹 기조실 시절은 참 재밌으면서도 힘들었던 시기였다. 보수적인 회사지만 다양하고 똑똑한 경력직들과 새로운 기획 프로젝트를 많이 할 수 있었고, 그룹의 HQ지만 내부보단 외부를 더 보고 고민하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매일 새벽 6시 반까지 출근하거나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엔) 꽤 보수적인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현대문화가 다 살아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3년은 나에게 참 큰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다.
현대차 기조실에서의 개별적인 경험은 다시 한번 이야기할 때가 있을 것 같아 커리어적으로만 이야기하면, 나의 커리어 전환기를 만들어준 프로젝트는 '인사혁신 TF'였다. 이는 노조인 생산직을 제외한 일반직을 대상으로 앞으로의 전기차 시대 그리고 ICT시대를 대응(이라고 했지만 이미 늦은) 하기 위한 HR제도를 고민하는 프로젝트였다. 일반적인 대기업들의 직급 통합,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 연공서열중심에서 직무중심으로와 같은 여러 패러다임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보수적인 현대차에서 그런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런 미래를 준비하는 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어 굉장히 설렜었다.
다른 ICT회사들의 HR을 벤치마킹하며 흠... 뭐라고 해야 할까 막연히 해보고 싶다 그런 감정보다는 내가 지금 경험해 왔던 그릇과는 정말 다른 그릇이구나를 생각했었다. 분명 난 그룹 기조실까지 경험했으면 현대차그룹에서 HR을 계속한다면 분명 어느 정도 보장된 커리어를 가질 텐데 왜 내 맘속에선 허함이 있을까.
내가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내며 여기까지 왔고 또 살아가고 있는데 나의 의미와 보람은 단순히 대기업에서의 안정적인 고위직급일까
분명 대기업 임원!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또 좋은 타이틀인데 그것을 목표로 해도 될까
내가 지금 대리인데 앞으로 10여 년을 더 일한다고 그릇 자체가 얼마나 커지거나 바뀔까? 그냥 그 속에서 매일 똑같은 그릇을 닦고 닦기만 해서 반들반들해지기만 하는 건 아닐까
그 프로젝트를 참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의 눈은 뜨이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봤고 나의 현재에 대해서 근원적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선악과를 먹은 에덴동산의 아담처럼 나는 다시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회사생활만 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이제 액. 션. 뿐이다!!!
난 결심을 세운 그날 바로 네이버 / 우아한 형제들 / 비바리퍼블리카를 지원했다.
To be continued with 비바리퍼블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