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다시 쓰는 이력서 ③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2018년 스타트업 계는 사실 어느정도 유명해진 회사들이 나오고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사람들이 대기업보다 가고 싶어하고 대기업에서 이직을 적극적으로 하는 시대는 아니었다. 당시 유니콘도 거의 없기도 했고 시장의 전체적인 보상 수준도 대기업을 상회할 수준은 아니었다. 특히 다른 직무와 비교한다면 전략은 초창기 창업자들 중 컨설턴트 백그라운드가 많았다보니 많이 진출했지만 HR은 더더욱 드문 일이었다.
1. 네이버
먼저 회사를 선택하며 난 게임회사는 나와는 성향이나 방향성이 너무 달랐기에 카카오/네이버를 찾아보았다. 당시 카카오는 카카오 본사는 채용이 없었고 일부 자회사들을 세팅하며 멤버들을 구하고 있었지만 나와는 맞는 포지션이 없었다. 네이버는 약간은 HRD 성격 포지션이지만 조직쪽 업무를 하는 포지션이 오픈되어 있어 큰 생각없이 지원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다른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나에겐 회사를 옮긴 경험(현대모비스 → 현대차그룹)은 있지만 그것은 나의 자의나 내가 지원해서 한 형태가 아니었기에 이력서 쓰는 법이나 면접 준비도 처음 공채때 말고는 없었다. 1차 서류합격도 신기하긴했었다.
나는 회사 반차를 써서 갔기에 정장을 입고 갔었는데 면접관이 들어오자마자 그 정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었다. 나의 7년 생활에서 정장은 너무 당연한 옵션이었기에 그 시선이 묘하게 느껴졌었다. 전반적인 질문은 무난했지만 보수적인 현대차에서 과연 네이버에 와서 잘 적응할 수 있겠냐는 경계&의구심은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즈음에 했던 코멘트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 이드님은 위트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그 멘트를 통해 나는 네이버 인터뷰 결과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알 수 있었다. 그분들은 어쩌면 내가 입고왔던 정장과 현대차라는 배경이 그네들에겐 고민되었던 요인이었을 것 같다.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현대차에서 갈망했던 다른 HR은 여기는 좀 덜 다를 것 같기도 했고 내 갈망이 충족되기 힘들 것 같다 생각했다.
2. 우아한 형제들 (배달의 민족)
우아한 형제들은 올림픽 공원에서 지나다니며 보고 또 서비스도 이용해봤지만 지원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링크드인에서 리크루터 분이 메시지를 주셨다. 당시 나의 링크드인은 이력도 제대로 입력되어있지 않았음에도 연락을 주셨다는 것이 지금으로선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된다.
메시지를 받고 우형에 대해 진지하게 나도 조사 및 고민을 하고 지원하겠다 얘기를 드렸다. 사실 내가 회사도 스타트업도 잘 알지는 못했지만 당시 우형은 직원들을 위한 복지(4.5일제, 피플팀 활동 등)가 유명했기에 왠지 HR에도 관심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며 여기서는 뭔가 다른 HR을 해보고 또 배울 수 있다 판단했다.
그리고 지원서에 대한 안내를 주었는데 아직도 우형 지원서가 특이했던 것은 기억에 남는다. 아쉽게도 지원서는 지워져서 찾을 수 없지만 기억에 남는 시/소설/노래를 쓰라할 때 나는 만화책을 썼던 것 같다. 그리고 성격 장/단점에서도 뭔가 꾸미기보단 나를 그대로 표현했던 것 같은데 그뒤 리크루터분에게서 특이했던 지원서라는 피드백을 나중에 듣긴했다.
1차 인터뷰는 당시 팀장님과 실장님이 들어오셨다.
실장님은 HR업계에서 굉장히 원로(나보다 30년 선배)이자 인플루언서셨다. 다양한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셨던 것도 그랬지만 워낙 자기관리를 잘하셔서 락 티셔츠 입고 그런 분이셨다. 난 그 부분에 대해 나쁘다라기보단 그만큼 나이가 있으심에도 본인의 캐릭과 브랜딩을 한다는 점에서 존경하기도 한다. HR 영역에서도 한국에는 잘없는 소히 HR 전문가 역할도 해오셨다 생각한다. 회사가 어느 시점에 들어서면 (성과관리 목적도 있지만 저성과에 대한 효율적 관리를 위한) 평가제도를 도입한다든지 여러직군이 있음에 발생하는 노조/노무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체계를 만든다든지, 혹은 사업적 큰 변화에 따른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이라든지.
인터뷰는 확실히 네이버와는 달리 보수적인 대기업출신이든 정장을 입었든지 그런건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대기업에서 하나의 부품/실무자로 업무를 해왔을지언정 어느정도까지 고민을 해보았고 그리고 그 속에서 얼마만큼 내 실력을 쌓아왔는지에 대한 탐색이었다. 팀장님은 진행역할이었고 실제 면접은 거의 실장님과의 대담 이었다.
평가제도 수립에 대한 질문을 하시면 평가요소는 무엇으로 하였고 (이정도는 예상되었지만)
실제 보상 설계에서 직원은 어느정도 변동성 비율을 그리고 임원은 어느정도 변동성 비율을 부여했냐까지 디테일하게 물어보셨다.
물론 왜 그런 비율을 설정했는지에 대한 판단 근거까지.
연차가 굉장히 높으시고 또 관리역할인 실장님이 그정도의 디테일로 질문을 하신다는 점이 나에게 자극적이었다. 기분이 나쁘기보단 묘하게 아 이런게 뭔가 다른 세상인가! 연차가 높아도 저렇게 살아있을 수 있는건가! 그러면서 나도 흥분하기 시작하며 면접은 점점 (즐거운) 언성이 높아지고 또 서로 속도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화룡점정은 바로 이 질문이었다 : 회사내에서 HR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요?
가장 단순해보일 수 있지만 가장 어려운 이 질문으로 무려 20~30분정도를 격론했다. 심지어 내가 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제시한 것도 8개나 되었다. 기억이 안나지만 어렴풋이 써본다면
회사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단순히 인력자원을 관리하는 것이 아닌 전략과 ..등등 (굉장히 교과서적 답)을 얘기하니 다시답을 달라고 하셨다
그러면 채용/보상/평가/조직 등의 활동을 통해 조직을 성장유지하며 또 등등 (굉장히 기능적 관점에서의 답)을 얘기하니 또 다시답을 달라고 하셨다
이번엔 조직내의 혈관이자 피의 역할을 한다고 우리 몸에서 피가 있어야 각 기능들이 살고 또 움직일 수 있다..등등 (굉장히 실무적 관점에서의 답) 얘기하니 또 다시 답을 달라고 하셨다
이런 질문들이 6~7번 진행되니 난 마지막에는 돈주고 잘 입사시키고 잘 일하게 하고 잘 내보낸다라고 했다.
이정도되니 원래 예정된 1시간 면접에서 1시간 20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서야 생각해보면 어쩌면 실장님은 답을 정해두지 않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느정도의 스콥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컷들로 HR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듣고 싶었을 것 같다. 이 질문은 가끔 지금도 스스로 떠올린다. HR은 무슨 역할을 해야하고 어떤 의미를 가져야하나. 그당시 대답한 것들이 사실 이제서야 어느정도 경험들이 붙으면서 때로는 이불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계속 HR을 하게되면 벗어날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깨달았다
너무 시간이 지나버렸고 또 실장님과 내가 흥분해서 격론을 했기에 팀장님이 워워하고 잘 마무리하며 나에게도 잘 달래주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사실 나도 면접에서 이정도로 (좋은 의미의) 흥분을 하고 또 면접관과 서로 두다다다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지는 몰랐다.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2차 면접을 오라고 하였다.
2차 면접은 실장님과 경영지원을 총괄하는 부사장님이 오셨다. 2차 면접은 부사장님이 메인이시다보니 실장님이 진행하시며 1차 때와는 사뭇다른 분위기였다.
전반적으로는 좋은 대기업에서 왜 스타트업을 오는가에 대한 의구심보다는 이직동기 확인과 나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를 물어보셨다. 인상깊은 나의 답중에 하나는 내 성격 단점이 금방 지루해하고 실증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만이 어필되면 사실 나는 진득함이나 끈기가 부족해보였을 텐데 나는 좀 다른 관점으로 답했다. 내가 실증나는 것은 업무도 있지만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렇다. 내가 기존에 해왔던 업무 방식 / 생각 / 정책들에 대해서도 상황이나 환경이 바뀌고 그리고 내가 바뀌게 되면 나의 기존방식을 난 지루해하고 실증낸다. 그래서 끈임없이 바꾸려고 한다. 나 스스로에 대해 어떤 상을 가지고 고착화하기보단 계속 알을 깨고 또 만들고 또 깨고 만드는 탈아의 삶을 추구한다.
부사장님이 나의 어떤 부분에서 호감을 가졌을지는 모르지만 보수적 대기업 출신치고는 틀에 박히지 않으려고 하는 유연한 모습 그리고 6~7년차임에도 아직도 주니어처럼 배움/성장에 대해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있음을 좋게 보지 않았을까 지금에서야 생각해본다
결국 이 다음편에서 토스시절 이야기를 쓰긴하겟지만 난 최종 토스와 우형 두 회사를 합격하고 고민하였다. 내가 현대차그룹에서 이직 결심을 하게 만든 다른 HR 기준은 두 회사모두 충족하였다. 하지만 그다음은 그러면 얼마나 다른 HR이냐는 것이 다음 고민으로 다가왔다.
당시 우형은 이미 1000여명 규모였고 실장님이 오신뒤 제도들이 세팅되며 해외법인도 만든 사실 어느정도 구조와 체계가 세워진 스테이지였다. 반면에 토스는 80여명규모에서 그냥 아무것도 없고 그리고 HR체계란 것이 내가 기존에 겪었던 성격과는 너무도 달랐다. 오만한 표현이지만 우형을 가게된다면 내가 현대차그룹내에서 조금 젊고 신생 그룹사를 선택해서 가는 것과 아주 많은 차이가 있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그런 이유로 토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직의 시작점이 다른 HR이었던 만큼 다름에 대한 갈망이 컸었던 것 같다.
후일담) 우형에 아쉽지만 토스를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실장님도 나에게 굉장히 우수한 평가를 하였고 부사장님도 꼭 데려오라했다는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었다. 사실 난 6~7년차의 거기다 대기업에만 있던 주니어일 뿐인데 나 한명에게 그런 후한 평가와 다시 한번 어필해달라는 이야기가 고민하게 만들었지만 결심을 바꾸진 않았다. 실장님이 그런 1차 면접을 하고도 높은 평가를 주신 것은 의외긴했다.
진짜 To be continued with Viva Republica (T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