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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id 이드 Mar 03. 2024

[iid] 쇼펜하우어 in HR (현타 극복노하우)

이드의 HR 개똥철학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이번 글은 미리 주관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시작하려고 한다. HR을 하면서 그 대상인 '사람'들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고 또 어떻게 대하고 있냐는 글이기 때문이다. 원래도 정답 없는 HR에서 더더욱 정답이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답이 있을 필요도 없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굳이 글을 쓰는 배경은 HR에서 '사람'에 대한 현타의 계기 중 하나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여러 영역에서 먼저 신뢰나 기회를 주었는데 그에 대한 보답보다는 실망/배신감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꿋꿋이 유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역시 사람은 이렇게 대하면 안 되는가?라고 점점 생각을 닫아가고 부정적으로 바꾸게 된다.


미안하지만 상대는 실망을 준 것도 배신을 한 것도 아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그대로였을 뿐 나 혼자만 내 생각 속에서 북 치고 장구를 쳤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철학자 중에 쇼펜하우어를 좋아한다. 정말 철학 이론 관점에서 쇼펜하우어를 하나하나 분석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HR 관점에서 본 쇼펜하우어를 소개할까 한다.

[소개]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로 유명한 철학자이다.
• 그렇다고 인생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나의 진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말한다. 그는 “원래 인생은 고통이고, 행복은 잠깐 고통이 부재한 순간”이라거나 “행복하기 위해선 행복이라는 단어를 제거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삶은 곧 고통이라는 점을 자각하며 절망에서 시작됐지만 어떻게 하면 절망 속에서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 쇼펜하우어는 행복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타인의 시선과 생각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걱정이나 두려움의 대부분은 타인의 시선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서 비롯되며 과시, 허풍, 겉치레, 자존심 등은 모두 이와 관련된 집착이다.
[출처] 서점에 부는 쇼펜하우어 열풍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허무주의와는 다르다.


그는 인간에 대한 너무도 차가울 정도로 담백하고 명확한 현실 인식을 통해 인식/기대에 대한 거품을 제거한다. 인간 인식과 기대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더 실망할 것이 없으니 이제부터는 플러스만 있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시작한다면 무리한 기대를 하지 않고 좀 더 명확한 가이드와 설계를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적으로 불교와도 많은 교류를 하였다. 불교 교리에서는 우리가 고해(苦海, 고통의 세계)에 산다고 한다. 이 관점이라면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그 인식에 빠져서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이제 스스로의 구원을 위한 수양과 구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드를 시니컬하거나 염세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난 스스로를 가장 긍정적인 HR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HR 역할을 수행하며 '사람'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기대/신뢰보다는 굉장히 현실적 접근과 한계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사람에 대한 현타나 배신감이 들 때 웬만해서는 이제 놀라지 않는다. 솔직히 짜증은 아주 가끔 나긴한데 그것도 분노보다는 지겨움에 가깝다.


• 누가 (이드 기준으로) 이상한 말을 하거나 정치적 행동을 해도 좀 더 주니어일 때는 열받고 대응했겠지만 이제는   '그냥 그럴 수 있지' '그래 뭐 해보셔라' '자기 선택인데 어쩌겠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 생각 속에서는 자신이 맞기 때문이다. 진중권님(개인적으로 존경하지는 않지만)의 명언을 항상 스스로 잠언으로 새긴다 : 말을 해도 못 알아 들으니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다.


왜인지 모르지만 모든 직무/모든 레벨에서 스스로 사람에 대한 과신을 한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 그 또한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0여 년 넘게 사람만 봐온 나조차 매번 사람은 모르겠고 어떤 확신도 가지기 힘들고 그냥 블랙박스의 존재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냥 나는 수많은 (사람에 대함이 아닌) 상황에 대한 경험과 그것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는 제도/시스템을 알 뿐이다.


 여러 번의 경험들로 인해 예상되는 이슈(거의 매번 항상 흐름은 똑같다)와 결과가 있어도 주의는 주지만 그 이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차피 결국 경험해야 알기 때문이다. 내가 막아줄 수 있는 것은 시행착오에 의한 원상복귀 시간과 정도를 최소화해 줄 뿐이다. 가끔 HR은 목소리를 내거나 잘못된 의사결정을 막는 역할이어야 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나도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표들은 그러기 힘들고 그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 유독 스타트업에서는 항상 보편성을 벗어나는 예외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하다. 자신이 보편적 엘리트나 모범생이 되기보다는 신화의 주인공을 되고 싶거나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일런 머스크조차 트위터 해고를 그렇게 진행하며 결국 의사결정을 번복한 것을 보면 HR 영역은 특히 예외성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성악설/성선설, X이론/Y이론 뭐 사람의 본성에 대해 말하는 이론들이 많다. 그런데 각각의 이론들은 마냥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마냥 사람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명확한 현실 인식 후 사람에 대해 판단하는 관점을 다를 뿐이다. 그렇기에 난 사람에 대한 명확한 시작점만 있다면 이후는 어떤 관점으로 보는 것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명확한 현실인식/분석 없이 이루어지는 선의나 철학은 무서운 것이다. 대부분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 보상이 아니더라도 기대효과를 희망하지만 심지어 보상을 기대하지 않더라도 무섭다. 왜냐하면 실제적 보상이 없더라도 스스로의 머릿속에서는 그런 선의/철학을 함에 대한 '나는 옳은 일을 했어'와 같은 자기 위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끝없이 자기 속으로만 빠져들게 된다.




독신주의의 완성은 결혼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장 친절하고 따뜻한 HR은 도리어 사람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현실적 시선에서 나온다고도 생각한다.


• 꼭 염세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적어도 자신의 사고/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람에 대한 시선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 없이 이루어지는 HR은 무조건 배신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에 따라 삐뚤어지기 시작하는 시선은 사실 그 순간부터 형성되기에 더 어긋나고 흑화 된 시선이 된다. 그러면 절대절대절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나 순기능마저 진정으로 믿을 수 없게 된다. 회사가 커지고 정말 대표역할을 하게 된다 해도 아닌 척하는 연기만 능숙해질 뿐이다.


• 사람들은 절대 내가 기대하는 만큼 성숙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내가 생각보다 너무 높은 기준을 가졌기도 하겠지만 모든 사람은 개인이기 때문이다. 모든 구성원은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심지어 C레벨 임원뿐만 아니라 대표이사까지도 못 벗어난다. 농담으로 대표들에게 회사가 누구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99%는 자신의 회사라고 말한다. HR담당자들 또한 개인의 관점에서 온전히 벗어나기 힘들다. 이건 그냥 어쩔 수 없다. 그냥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먹고살기 위함인데 어떻게 우리가 공정성/정의/도덕 등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가치를 지켰을 때 과연 어떤 보답/보상이 돌아온다고 보증해 줄 수 있는가. 슬프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 사람들은 또한 절대 합리적이지 않다. 경제학자인 케인즈가 경제에 반영되는 인간의 심리를 '야성적 충동'이라 하며 '보이는 손'의 개입을 주장하였다. 경제는 그래도 돈이라는 숫자 지표만 있음에도 그 정도라면 HR은 무든 기준들이 더 주관적이며 개인적이며 본능적이다. HR에서의 '보이는 손'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경제에서의 '야성적 충동'보다 강하면 강했지 절대 약하지 않다.


• 한 때 넷플릭스에서 유행했던 무제한 복지가 있었다. 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일을 하며 내가 식사를 하기 위함에 어느 정도까지 회사 비용을 써도 되냐라는 상식 수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무조건 학습과 경험에 의해서만 생성된다. 그것을 가이드 없이 성숙한 성인으로 대한다고 일방적으로 구성원에게 해보라고 준다면 또 다른 폭력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그 상식 수준을 넘는 직원이 있다면 마치 함정수사처럼 걸려서 징계 혹은 해고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회사 생활을 몇 년이라도 해봐야 보통 아 이 정도가 식비 수준이구나라는 것을 안다.

어느 회사라고 말하지 못하지만 경험한 회사 중 한 곳에서 전 직원의 채용 장려를 유도하기위해 법카를 자유롭게 쓰며 채용 미팅을 하라고 하였다. 최초 2~3개월은 기준이 형성되지 않아 오마카세 / 다이닝 / 소고기 고급 식당 / 장어 등 정말 말그대로 자유롭게 사용되었다. 보통 그래도 일반 직원 레벨에서의 접대(?)수준을 고려한다면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기는 했다. 당시 대표는 그것을 인내할 만큼 사람에 대한 관점은 명확하게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대표들이었다면 그냥 부들부들 거리며 바로 철회를 했을 것이다. 물론 거기도 얼마 안가서 철회했다. HR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이 글의 결론은 앞에도 말했듯이 사람에 대해서는 무조건 의심하고 관리해야 한다가 아니다. 그것은 회사의 산업, 구성원 현황, 비즈니스 모델, 대표의 철학 등에 의한 선택사항이다. 막연히 낙관적인 기대에 따라 정확한 사람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기원전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종교의 영역부터 과학의 영역까지 가장 본질적인 화두 중 하나는 인간이다. 인간은 잠재력도 가지고 있고 선에 대한 의지도 존재한다. 하지만 일단 그전에 도대체 사람에 대한 인식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부터 잡고 하라는 말이다. 염세주의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부록)

① 주니어일 때 시니어였던 선배가 해줬던 말이 있다. HR은 시니어가 되면 될수록 혼밥/혼술 하게 되고 외톨이가 된다는 것이다. 주니어일 때는 회사 내 다른 직무 구성원들과 교류하는 것이 즐거웠던 내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그 말을 너무도 뼈저리게 이해하며 어느덧 취미를 혼술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HR 직업병 중 하나는 '고독'이다. 직무 특성상 말/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같은 조직 내에서 동료인 상대를 너무 알게 되는 것 또한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이드의 취미는 만화책이다. 국민학교 때부터 어른들의 만화방을 다니며 영역을 가리지 않고 좋아했었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 쩌든 HR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춘열혈물을 보면서 울컥하거나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누가 본다면 너무 유치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대사나 상황들일 것이다. 내가 적어도 그 장면에서 몰입하며 감동을 받는 이유는... 슬프게도 점점 더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모습이기 때문이다. 의리와 정으로 대표되던  한국사회의 '낭만'이 점점 각박해지는 현실을 아쉽지만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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