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d] 예수님/부처님도 변화 시간은 필요했습니다.
이드의 HR 커리어 성장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후일담이 아닌 선일담]
원래 제목을 '4드론 & 하드코어 질럿 러시 괜찮나요?'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뭔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이는 표현에다가 내용에 비해 가벼운 제목이라 변경을 하였다. 제목의 표현은 스타크래프트 1 게임의 빌드전략 중 하나로 초반에 승부를 끝내기 위해 도박성으로 올인하는 형태의 전략이다. 뒤에 내용을 보다 보면 왜 이 제목도 고민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제일 많이 듣는 한탄 중에 하나는 빨리 성과를 내야 하는데 혹은 낼 수 있는데 그게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다는 것이다.
경력직에 과거 경력/실적이 화려한 분들이 회사에 오는 경우 (100%는 아니지만) 오자마자 빨리 성과를 내보이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면 기존 인원들과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고 본질을 건드리기보다는 양식과 같은 형식적 요소나 조직도/위임전결 같은 행정적 요소만을 지적하기도 쉽다.
개인의 영역에서 열정을 가지고 드라이브하는 것은 사실 스스로 힘들 뿐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업과 같은 정말 독립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면 결국 같이 일하는 동료나 조직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 그 영향 미침이 서로 잘해보자 / 서로 이렇게 개선해 보자라는 긍정적 분위기로 간다면 다들 동기부여도 받고 선순환이 발생하지만 대부분 비난과 질책 / 탓 돌리기로 변질되기 쉽다. 이유는 내가 최고 의사결정자 급이 아니라면 그런 여유를 가지기도 힘들뿐더러 그런 선순환 방식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끈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순환 방식의 PM이 내가 되어서 전반적으로 주도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악순환 방식(비난/질책/탓하기)에서 특히 스타트업에서 쉽게 나타나는 행태는 결국 초기멤버나 경영진을 타깃 하기다. 사람에 따라 날 선 비판을 하기도 하고, 훈계를 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인력 교체를 추진하기도 한다. 분명 경력직에 그전 성과가 좋았던 분이기에 회사도 기대치가 있다 보니 빨리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너무 이해한다. 하지만 그 뭔가를 보여준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전략적 마인드와 조직/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어떨까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고 당장은 소화된 것으로 보일지언정 어딘가에서 탈이 난다.
① 내가 생각하는 상식은 나만의 상식이다.
과거 이드가 썼던 '스타트업 이직 시 포기해야 할 것 3가지'에서 상식에 대해 썼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이 사는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구성하는 배경이 경제력이 될 수도 있고 학벌이 될 수도 있고 집안이 될 수도 있다. 굳이 그 세계를 이루는 이유를 사회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나는 그 세계관이 가지는 의미를 말하려고 한다. 한 세계관 안의 구성원들은 보통 공통의 상식을 공유한다. 그 상식은 사실 절대적이지 않다. 지극히 상대적이며 개별적이다. 속해있는 집단이 바뀜에 따라 그 세계관은 매우 달라진다. 하지만 내가 기존에 있었던 조직 내부가 너무 공고하고 완전해 보일수록 그 세계관은 절대적인 상식으로 여겨질 수 있다. 즉 우리 집단에 국한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것을 보통 개인들은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걸리버여행기를 보면 거인족 세계도 가고 소인족 세계도 간다. 걸리버는 그 모습 그대로 일 뿐이지만 각각의 세계에서는 걸리버만 이상한 존재로 여겨진다. 비슷한 맥락으로 눈 한 개인 세상을 간다면 눈 두 개인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내가 익숙하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맞다고 생각하는 상식은 굉장히 상대적인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인정을 하는 것에서부터가 시작이다.
② 누군가를 바꾼다는 것은 많은 요소들이 전제된다.
앞의 상식 내용과 일부 이어지는데 내가 누군가를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전달한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에도 그 지식을 수용할 배경 지식의 유무나 경험의 수준 그리고 그 지식을 실제 적용할 응용력까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닌 변화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그리고 심지어 비행기라는 개념자체를 몰랐던 이에게 항공예절이나 기내식 가이드를 알려주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도록 한다면 비행기부터 알려줘야 한다.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을 알려주고 왜 비행기에서는 다른 매너/에티켓이 필요할지도 알려줘야 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을 지식 전달로 볼 수도 있지만 1번의 상식을 넓혀주는 것부터 다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개인의 지식 습득이 아닌 어떤 행동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은 문화를 이해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③ 필요성 / 니즈가 있는지부터 의심해봐야 한다.
여기까지 오면서 어쩌면 우리가 오류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진짜 회사를 위한 개선인지 아니면 나의 자기만족일지 그리고 그 개선이 진짜 본질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는 건지. 필요성/니즈가 없는 개선은 사실 정말 그저 일방적 계몽주의에 기반한 식민지 개념에 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미개하니 내가 너희를 위해서 이런 지식/개념들을 알려줘야만 해.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일단 어떻게든 강제적으로라도 배워놓으면 도움이 될 거야.
너희가 아프리카에 살면서 최소한의 부위만 가리거나 짧고 가볍게 입겠지만 너희도 언젠가 슈트를 입을 테니 슈트 매너/예절을 배워야 해.
선의에 기반했더라도 조직/구성원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지 못했다면 그 조차 폭력이 될 수 있다.
④ 배가 고플 때 먹어야 음식은 더 맛있고 아플 때 복용해야 그게 약이다.
마지막으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 TPO가 중요하다. 어떤 변화/개선이 적절할 때 적용되어야 그 효과와 고마움 나아가 성과로 인정이 극대화된다. 나이가 들고 연차가 쌓일수록 여백의 미와 절제/삭제하는 것에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처럼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많더라도 그것을 신중하게 아끼며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베테랑이라고 생각한다. 컨설팅은 짧은 시간 내에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기에 아는 내용을 그냥 다 쏟아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컨설팅 이후 실제 조직에 남거나 소화된 영역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저그 4드론 러시는 잘되면 너무 큰 효과지만 사실 도박성이 짙은 전략이다. 나의 조급함에 무리한 전략을 했을 때는 그만큼의 도박성이 짙어지게 된다. 물론 임요환/홍진호 정도의 프로게이머라면 그런 전략을 하면서도 안정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과 현실은 다른만큼 조금 더 천천히 상황을 분석하며 지금 상황에 적합한 요소들만 제때 그리고 정확히 줄 수 있어도 인정받을 수 있다.
글 제목에 썼듯이 예수님/부처님도 시간은 필요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공생애라 불리는 3년여 동안의 기간을 통해 기독교가 시작할 수 있었다. 석가모니 님도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45년 동안 전파한 결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가 이렇게 기틀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 성인들조차도 2~3개월 내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이단으로 치부받으며 탄압받기도 하고 많은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람이란 그런 것 같다.
(속된 말로) 가끔 HR 동료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 회사가 돈 잘 벌고 성장 잘하고 투자 잘 받고 있을 때는 그 회사에서 발생하는 이슈는 이슈가 아니다. 그저 성장통이자 하나의 해프닝이다. 그것을 문제로 지적하고 개선하고 싶다 해도 아니러니 하게도 회사가 잘될 때 그런 부분은 이슈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여유를 갖고 기다리며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를 하라. 투자사들조차도 그래서 잘될 때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으며 할 수도 없다.
• 스티브잡스 같은 뛰어난 경영자도 (물론 성격이 안 좋다고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나마 현재가 된 건 애플에서 쫓겨난 뒤다. 그조차도 그 정도의 일을 당해야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한다. 절대 일반 사람은 자신이 좋은 상황일 때는 자신을 정말 객관적으로 보고 반성하기 어렵다. 그때는 주변의 조언조차 잔소리로 느껴질 수 있다. 병원 심리상담조차도 한 번쯤 깊은 수렁에 빠져 스트레스/맘고생을 제대로 당해봐야 그제야 그 말이 깊게 들어온다.
경영부채 또한 분명히 존재하고 또 영향을 준다.
지금의 아쉬움/개선 포인트들이 눈에 보일 순 있다. 하지만 정말 당장의 비즈니스를 막을 정도(예를 들면, 마약을 한다든지, 불법세력과 연계된다든지, 누가 봐도 법을 어기는지 알정도)로 크리티컬 하지 않다면 잠시 천천히 해결해도 된다. 미루라는 거지 그것을 그냥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기술부채와 유사하게 경영부채 또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경영부채에 의한 응어리/스트레스들이 한 번씩 큰 성공 스테이지에서 탕감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채를 만든 근본 레거시들은 변화되지 않기에 그대로 잔존되어 있다.
부채들은 그 자체로 회사를 망하게 하지는 않는다. 단지 회사가 1년의 기간동안 할 수 있는 성공을 짧으면 3년 길면 5년이 걸리게 하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시간이 제일 중요한 스타트업이기에 그 영향력은 절대 작지 않음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