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앞의 글도 시니어에 대한 글이어서 묘한 인연이긴 하지만.
이번 커피챗은 아는 동생이자 대표님인 지인의 질문사항이었다.
사실 이 질문을 받고 과거의 나였다면 사실 나도 그 대표의 마음과 같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라서 답해줄 수 있는 답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세월이 가지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10년/20년 뒤에는 또 다른 답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생각보다 까다롭고 복잡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굉장히 상식적 접근과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상식이란 것을 굉장히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상식이란 것을 제대로 학습하는 것이 현재 한국에서 특히 스타트업에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상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감정/욕구 등에 대한 보편적 이해가 필요하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과연 어느 정도를 포함할까? (현재 '보편성과 대치되는 핵개인화에 대한 HR적 고찰' 글을 별도로 작성 중이라 여기선 간단하게 쓰려고 한다)
일단 최소한 수천 년의 인간 역사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발달해 온 철학과 이론에 대해서도 인정이 필요하다. 인정은 존중보다 좀 더 직접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현대 문명과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인간이 변했다고 해도 수천 년간 쌓여온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그 본성에 대한 고찰 및 시각 또한 HR의 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답만 말하면 우리가 으레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다. 상대에 대한 존중 그리고 그 부분을 좀 더 한국 사회의 유교 관점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
보상 영역이 잘 몰라서 실수하게 되는 영역이라면 책임/권한 영역은 알지만 실천을 못하는 영역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책임/권한 영역은 다른 말론 조직/인력으로 말할 수도 있고 HR 영역이라 할 수도 있다.
영역에 대한 존중은 그분에게 의사결정에 대한 권한을 준다는 말과 같다. 물론 새로운 회사에 대한 이해와 적응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대표가 개입할 순 있다. 하지만 이는 감시나 불신의 접근이 아닌 도와준다는 관점이어야만 한다. 그 둘의 온도 차이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다 느낄 수 있다. 대표 입장에서도 잘한다고 하긴 했지만 진짜 잘할지 불안하고 기존 회사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할지도 불안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니어를 뽑는다는 것은 그냥 믿고 맡겨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게 계약이다. 그만큼 그 시니어는 책임을 지는 것이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것이다. 이는 노무적 접근보다는 신의와 프로페셔널 관점에서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너무 많은 회사가 이 부분을 잘 지키지를 못한다. 내가 굳이 앞에서 시니어를 C레벨만을 지칭하지 않고 진짜 관리자레벨이라 표현한 이유는 존중영역이 보상보다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레벨이 진짜 관리자급 시니어부터이기 때문이다. 연차나 조직단위 구분은 사실 회사마다 너무 상이해서 의미가 없다. 그냥 적어도 한 영역(세분화되기보다는 function단위 수준)에서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고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하면 해당된다. 수많은 회사에서 이런 시니어들이 퇴사하는 케이스를 많이 보게 된다.
과연 대표들이 모를 것이냐 한다면 난 다 안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것을 지키기 힘들거나 싫은 것이다. 대표들에게 물어보면 C레벨급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니어들에 대해서는 아직 그 정도 레벨은 아니다고 한다. C레벨에 대해 먼저 난 비판적이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얘기한다면 C레벨은 사실 그냥 하나의 타이틀일 뿐이지 스타트업의 여러 특성상 C레벨이라고 경력이 많거나 전문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영역에 대해 책임자를 수행했을 뿐이다. (가끔은 책임조차... 모호한 경우도 있지만). C레벨이 퇴사하는 것보다 더 큰 타격이 주는 것이 앞의 시니어들의 퇴사이다. C레벨은 의사결정에서의 잠시 공백이 있을 뿐 업무 자체의 전문성이 뛰어나게 하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C레벨보다 시니어들의 퇴사가 회사의 브랜딩을 더 급격히 악화시킨다.
이 부분 또한 너무너무 자주 발생하는 케이스이다. 제발 시니어를 뽑아서 그 사람에게 조직을 맡긴다면 건들지 않아야 한다. 그게 선의에 의해서일지라도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시니어가 왔다고 해서 그 시니어가 모든 조직원을 통째로 데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회사에서 기존에 있었던 인력들을 대부분 데리고 일을 하게 된다.
그러면 이제 대표는 시니어가 입사 전에는 자기가 직접 일을 지시했던 인력들이기에 으레 관성에 따라 연락을 하거나 업무를 지시한다. 그리고 괜히 또 그 시니어는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본다. 이런 일들이 불신에 의한 것이라면 그래 이해를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냥 그 시니어가 그것에 불만을 가지고 나간다 해도 이해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불신이 아닌 선의에 의해서 하더라도 그것은 시니어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가끔 이 부분에서 잘 이해를 못 하는 대표들이 있다. 아니 그걸 왜 불만을 가지냐고.... 그래서 앞에 이드가 시니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조직에 대한 상식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배경이다. 더 설명하진 않겠다.
그냥 당장에 성과가 안 나오는 것 같거나 기존 인력들과의 적응과정에서 갈등 때로는 퇴사/이탈이 발생해도 내버려 두어라. 다시 말하지만 그것이 그 시니어를 채용한다는 선택에 대한 책임이고 무게이다. 조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조직의 성장을 위해서 선택한다는 것은 그로 인한 부작용 혹은 단점까지도 포함한다. 정말 만약 그 시니어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 부정적 결과를 만들어냈다면 그 판단을 하고 대응해도 늦지 않다.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 시니어의 진면목도 보지 못하고 나가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잘못 뽑은 결과를 뒷수습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싸게 먹힌다.
드문 경우인데 시니어 조직에 대해 대표가 인력적 측면에서 관여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조직 인원인데 좋은 인력이라는 이유로 시니어의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전보하거나 자기가 소개받은 우수 인재라고 그냥 조직에 꽂는다.
이 경우는 조직관리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축구팀 감독을 예로 들겠다. 축구팀 감독을 새로 영입하게 되면 선수에 대해서는 감독에게 많은 권한이 주어진다. 각 감독마다 자기 스타일과 전략이 있다. 그에 맞는 선수들을 배치하고 뽑는다. 만약 구단주가 자기가 생각할 때 너무 좋은 선수라고 해서 임의로 팀에 배치한다면 먼저 감독이 자기 권한의 정체를 의심하게 된다. 자신이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성과에 따른 책임까지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구단주가 '월권'을 하게 되면 나에게서 책임과 권한을 다 가져가고 난 그냥 구단주의 요구대로 오퍼레이팅만 하면 되는 사람인가 생각하게 된다. 나의 스타일/전략 그리고 커리어를 단순한 운영 역량으로만 봤다고 생각하여 존중받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그렇게 뽑힌 선수는 감독의 말을 듣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은 구단주가 직접 뽑아서 감독의 눈치도 보지 않고 팀에 배치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팀운영이 엉망이 되거나 감독이 제대로 된 성과를 못 보인다 하더라도 그 선수 입장에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자신은 구단주에게만 자신의 가치를 어필하면 된다. 이런 경우가 한 번이면 모르겠지만 몇 번 반복되면 결국 그 팀은 와해될 뿐만 아니라 선수들 또한 망가진다.
조직관리에서 조직장은 올스타 멤버로 주어진 멤버들을 적당히 맞춰서 운영하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은 살아있는 유기체에 가깝다. 갈락티코 정책이 최종 실패로 끝난 사례와 같이 조직장이 자신의 조직을 운영하는 철학과 적정 멤버들이 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일지라도 대표가 조직장의 조직에 대해 인력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그냥 조직장에게 당장 퇴사하라는 말의 시작점과 같다. 정말 정말 하고 싶다면 그냥 대표가 아무런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시작하지 말고 순수하게 추천만 해라.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마라. 축구 사례에서도 나오듯이 리그를 우승하는 팀들은 A급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이 아니다. 조직력이 중요하다.
A 회사에서는 대표가 너무 컬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관심을 가졌다. 결국 컬처조직을 이드 밑에 배치하였음에도 업무적으로나 인력적으로나 놓지를 못해 결국 이드는 대표를 존중해 컬처팀을 대표 직속으로 변경하였다. 이드가 중간에서 스스로 괜히 오해와 의심을 하는 것도 싫었고, 컬처팀 또한 중간에서 애매해하거나 괜히 대표말을 앞세워 체계를 망치고 예의를 어기는 것 또한 싫었다.
시니어가 "나 얼마 처우해 주세요"라고 하거나 "얼마 더 해주세요"라고 하게 만드는 것은 불편한(쪽팔린) 상황이다. 내가 이 정도 시니어라고 생각하고 회사에서 나를 존중한다면 알아서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만족할 수준으로) 처우를 해주는 것이 맞다. 왜 그렇냐고 굳이 묻는다면 우리 한국 사회에선 유교적 영향으로 돈을 내가 먼저 요구하는 것이 명예롭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시니어급이라면 이제 나만을 생각할 레벨이 지났기에 자신에게도/타인을 통해서도 명예로운 형태로 존중받기를 원한다.
또한 그 정도 시니어급이라면 이미 회사 내에서 경영을 함께 고민해 본 경험이 있다. 인건비가 회사 경영에 얼마나 영향을 크게 미치는지 알기 때문에 사실 처음부터 무리하게 나의 인건비를 회사에 부담시키기 머쓱하다. 그런데 나도 한 명의 급여 생활자로서 (C레벨 포함) 분명 보상을 무시할 수 없는데 그걸 내가 직접적으로 요구하기는 좀 그런 것이다. 그러면 만약 인건비를 대놓고 원하는 수준이나 기존 수준을 맞춰주지 못하면 당장의 인건비로 부담 안 되는 스톡옵션으로라도 알아서 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내가 양보를 했다고 치면 사실 회사가 성장하고 성과가 좋아진다면 내가 양보하거나 굳이 요구하지 않은 보상을 알아서 챙겨줘야 하는 것이다. 내가 최초 보상에 대해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고 해서 내가 그 정도 가치인 것은 아니다. 이는 '연예인 DC'처럼 '명예 DC'인 것이다. 행여나 회사에서 싸게 채용했다고 좋아해서 내 가치를 그것으로 인식하고 책정해 버린다면 그것은 나의 존중에 대한 배신이 되는 것이다. 나의 명예는 잠시 키핑 해두었을 뿐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보상영역에서 쪽팔리게 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다.
- 회사가 도저히 알아주지 않거나 너무 당연시 생각해서 내가 결국 말하고 요구하게 하는 경우
- 내가 믿고 기다렸는데 결국 내 믿음을 회사가 배신하는 경우
- 나랑 비슷한 급 (선배/후배/동료)과 비교해서 내가 너무 못 받을 때.
1/2번도 자의/타의에 따라 사실 잘 존중 못하고 실제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3번이 가장 간과되기 쉽다. 3번은 입사 이후에 회사를 다니는 경우가 많다. 시니어급이 되면 사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비슷한 동료급들과 네트워크가 연결되기 쉽다. 이제 각 회사에서 그 시니어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가 대놓고 서로 비교하지 않더라도 알게 된다. 능력상 내가 부족하다면 인정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내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이는 2번의 배신과 유사하게 인식될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존중 나아가 무례한 처우라고 까지 생각한다.
• A 회사에서 처우를 급격하게 올리는 제도를 내가 설계하고 좋은 오퍼가 와서 이직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제도의 적용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긴 하지만 간단하게만 얘기한다면 그냥 HR담당자로서 그 제도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요구하기 쪽팔렸기 때문이다.
• B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실제 담당 역할보다 많은 영역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큰 리스크를 몇 번이나 해결해 주어 꽤 많은 보상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회사에서의 특수성이 반영된 보상으로 생각하였기에 일부 DC를 해주었다.
위 두 가지 경우 모두 이직한 회사에서는 나의 배려를 존중하여 입사 시 내가 요구할 수 있었던 버전보다 더 높은 보상과 인정을 주었다. 사실 실제 보상에서의 인정 또한 큰 동기부여나 리텐션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이런 존중과 배려 자체가 더 큰 책임감과 감사함을 만든다.
상식을 잘 모르겠으면 책을 읽거나 주변 HR 담당자에게 질문해라. 책은 절대 최근에 쓰인 실리콘밸리류나 스타트업류는 보지 말고 그냥 탈무드나 명심보감과 같은 고전을 읽어라. 인류가 상식에 대해 고민한 것은 최근 몇십 년이 아니고 이미 수천 년 / 수만 년 동안이었다.
채용관점에서도 정말 뛰어난 하이퍼포머 리크루터는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다. 바로 상대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다. 이는 노무관점에서도 동일하며 영업관점에서도 동일하다. 스타트업이 아무리 평등하고 자유롭고 직설적이고 하더라도 예의와 존중을 하지 말라는 말은 절대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