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와실용⑤] 일본의 통상보복과 '투키디데스 함정'
◆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한·일 통상갈등… 이번이 처음 아니다
일본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제보복 카드를 꺼내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후 양국 관계가 악화돼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를 줄이더니 2015년 계약 만료와 함께 완전 종료했습니다. 이듬해 한국 정부는 통화스와프 협정 재체결을 제안했는데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7년 부산 주 한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건립을 빌미로 협상을 중단시켰습니다.
일본은 또 한국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금지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했습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전 세계 51개국 중 일본이 WTO에 제소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연이은 경제 보복에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유무역 시장 질서를 왜곡해선 안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한편 "외 교·안보와 심지어 경제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한국을 일본이 견제하는 모양새"라며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 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국 경제가 약진함에 따라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이 한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단 것이다.
◆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국가를 기존 강대국 이 견제하는 과정에서 두 국가가 충돌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5세기에 살았던 그리스인으로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충돌한 '펠로폰네소스 전쟁'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그가 그리스의 전통 강호 '스파르타', 그리고 새로운 강자 '아테네'의 세력 다툼을 전쟁의 발발 원인으로 봤다 해서 '투키디데스 함정'이 신구 세력의 충돌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시작한 페르시아 전쟁은 기원전 492년이 돼서야 그리스 연맹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재침을 우려해 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델로스 동맹'을 출범시켰다. 델로스 동맹은 도리어 세력을 키워서 나중에는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반도까지 넘볼 정도로 힘이 강해집니다. 위협을 느낀 스파르타는 대항마'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결성합니다. 그러나 하늘엔 두 개의 태양이 떠있을 수 없고, 그리스는 두 맹 주를 섬길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 두 세력이 충돌하는데 그것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입니다.
투키디데스는 신흥 강국인 아테네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이 전쟁을 촉발시켰다며 지극히 객관적인 관점에서 전쟁사를 기록했습니다. 이로부터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개념이 등장합니다. 전문가들은 16세기 이후 벌어진 전쟁 중 11차례가 신흥국이 패권국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1, 2 차 대전 또한 신흥국 독 일이 영국에 도전하며 벌어진 전쟁입니다. 투키디데스 함정이 인류사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은 셈입니다.
◆ 한국 경제가 급성장함에 따른 일본의 절박감
중국이 세계 2대 강국의 자리를 꿰차고 한국 경제 또한 급부상하면서 동북아의 경제 주도권을 점차 잃어가는 불안감이 이번 수출 제한 조치로 이어졌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신흥 강국인 한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통상 갈등이 비롯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것이지요.
일본과 한국의 경제 격차는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습니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1988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3조720억달러로 한국(1960억달러)보다 15.6배나 컸습니다. 그러나 2008년 일본 5조380억달러, 한국 1조20억달러로 양국 GDP 격차가 5배로 축소되더니, 지난해에는 3.1배(일본 4조9710억달러, 한국 1조6190억달러)까지 줄었습니다. 1인당 GDP는 지난해 기준 한국이 3만1362달러(27위)로 일본(3만9286달러·24위)을 바짝 뒤쫓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일본 쏠림 현상도 크게 줄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보면 30년 전 19.8%에 달했던 대일본 '수출' 비중은 올 상반기에 5.3%까지 축소됐습니다. 30년 전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수출 대상국이었습니다. 하지만 2015년 이후 일본은 베트남, 홍콩에도 뒤진 5위 수출 대상국으로 밀린 상태입니다.
사실상 한국 경제를 견인했다고 생각하는 일본으로서는 이 같은 한국의 부상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아베 신조 내각의 장기집권이 이어지면서 정치·외교적 여유가 없어진 것도 일본의 과민한 반응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진경제실장은 “2000년대 중국의 부상, 한국의 빠른 성장은 잃어버린 20년에 빠져 있던 일본에는 경제적으로도 굉장한 위기의식으로 다가왔다”며 “한·일 간 경제력 격차가 컸던 1970~1980년대라면 일본이 지금과 같은 대응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