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코치 Jul 06. 2023

새벽 응급실에서 알게 된 것

자기 다루기 전문가

 

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절망하거나 상황을 탓하지 않고
도움 되는 쪽으로 생각하는
좋은 습관이 있습니다.

작년 12월 1일.

3살 아들이 한밤중에 배가 아프다고 해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강릉 응급실에 갔다.

남편은 차키를 챙기고, 나는 아들을 안고, 잠자던 큰 딸은 눈을 반만 뜬 채 옷을 갈아입고 출발했다.


다행히 가는 동안 아이는 안정이 되었다.

막상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평온한 느낌까지 들어서, " 괜히 왔나? "라는 생각도 사실 들었다.


언제쯤 차례가 되려나 생각하며, 적당히 붐비는 응급실 모습을 스캔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자고 있는 둘째 아이를 품에 안고서.

남편과 큰 딸은 코로나 때문에 병실 밖에 다른 장소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대화할 사람도 없었다.


때론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날은 세 가지를 깨달았다.



Episode 1.

어디가 아프신지 이동식 간이침대에 누워서 병실로 들어오시던 할머니.

아파서 말하기 힘든 순간에도 " 평소 지병 있으세요? "

큰 소리로 묻는 간호사 물음에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한 숨을 한번 쉬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손으로 한번 쓰다듬으신 후, 손가락을 하나씩 구부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 류머티스 관절염.. 척추협착증.. 당뇨.. 고지혈증.. "


할머니를 보며, ' 나이가 들어도 나의 지병정도는 또랑또랑 말할 수 있어야 하겠구나

그게 모두에게 도움 되는 노인이겠구나. ' 이런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함께 오신 보호자는 다른 할머니 이셨는데 " 어제부터 뭘 잘 못 먹은 건지 토하고 난리야. "라고

상황을 설명하셨다. 함께 오신 할머니를 보며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평소에도 저렇게 서로 의지하며 친구이자 이웃으로 함께 하셨겠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Episode 2.

드디어 우리 아들 이름을 부른다.

" 000 있어요? "

" 아. 네. 여기요! "


새벽 1시가 넘었으니 늦은 밤인지 이른 새벽인지 모를 시간에

호출을 받고 내려온 젊은 레지던트 여자 의사가

나에게 졸리고 피곤한, 혹은 건조한 얼굴로 아이의 증상에 대해 질문했다.

눈을 마주친 적은 한번 정도였던 것 같다. 시선은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문진 하며 배를 만질 때는 달랐다.

어디에 숨겨온 명랑함인지, 이 순간을 위해 에너지를 아껴놓은 사람처럼 그렇게 상냥할 수가 없었다.


" 우리 00이 어디가 아파요? 여기가 아팠어요? 이렇게 눌러볼게요. 아프면 말해요. 우와 잘한다. 진짜 씩씩하네. 선생님이 여기도 좀 볼게요. 안 아플 거예요. "


도~레~미~파~솔. 솔톤으로 유치원 선생님처럼 친절하고 명량한 말투로 진찰하신다.

덕분에 아이가 배시시 웃기까지 했다.

나이도 나보다 한참 어리신 것 같았는데,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이후에 호출받고 내려온 소아과 전문의 여의사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는 아이 상태에 대한 정보만 간단하게 묻고는 괜찮을 것 같다고 하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달랐다.

" 우리 00이 많이 아팠어요? 응? 그런데 괜찮아요. 선생님이 우리 00이 배 안 아프게 치료해 줄 거예요.

조금 불편할 수 있는데 아프진 않아요. 하고 나면 집에 갈 수 있을 거예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


두 사람 모두 나만 소외시키고 아이한테는 따뜻했다.


그런데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뭉클했다.

두 사람의 프로다움이 멋졌다.

크리스마스의 따듯한 느낌이 오래도록 남아있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곳이 따뜻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 그래. 저런 사람이 의사를 해야지. 이 새벽에 없는 에너지 모으고 모아서 아이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안심하게끔 해주는 의사 '

 


Episode 3.

우리 가족의 협동심. 끈끈함.

그리고 위기에 강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인 우리는 물론이고 9살 딸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출발 전 동생을 안고 있는 엄마를 대신해 집에서 병원갈 때 필요한 물건들을 야무지게도 챙겨다 주었다.  

그리고 아침 7시가 넘어서야 진료가 끝나서 큰 딸은 등교를 못 해 결석을 하게 되었다.

모범생 타입이라 결석이 신경 쓰였을지도 모르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딸의 마음이 고맙다.

아픈 3살 아이도 부모와 누나와 의료진의 최선을 아는지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힘이 커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 날은 모든 센서가 열려 있는 느낌이었다.

' 느끼고 깨닫기 위해 이런 상황이라는 선물을 받은 게 아닐까 ' 하는 망상도 해보았을 만큼.

좀 뭔가 알 것 같고 더 느껴지는 것 같은 밤이었다.

진리에 가까운. 이치에 가까운 것을.


내가 느끼고자 하고, 내가 배우고자 하면

진리와 삶의 이치라는 정답지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살면서 그런 날이 다시 온다면

지금처럼 기록해 두었다가 살면서 두고두고 꺼내 읽어야지.




그 날의 여의사 선생님들. 존경합니다.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