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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코치 Nov 23. 2022

비움 전문가 & 채움 전문가

자기 다루기 전문가

“ 이거 안 쓸 거지. 버려도 돼? ”

내가 집에서 자주 하는 말이다.


버리기를 좋아한다.

중고 판매도 잘한다.

쇼핑할 때는 늘 아마추어 같지만, 버릴 때만큼은 프로다.

확신에 차있다.      


TV ‘신박한 정리’는 내 최애 프로그램이다.

버리고 비우는 것을 보면 상쾌해진다.

과감하게 버렸다.

물건을 버리자 공간이 생겼다.

그러면 또 채울게 많아졌다.

물건 대신 휴식, 행복, 사랑, 꿈, 미래계획을 채울 수 있었다.

현재 기억해야 하는 것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것들로만 채운 집이 마음에 들었다.      

물건을 버리는 것은 과거의 미련이나 현재의 불안을 버리는 일이다.       


내가 노인이 되어도 물건을 보며 과거를 추억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과거의 영광이나 추억에 사로 잡혀 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때의 추억은 물건 대신 내 가슴에, 내 글에, 내 사진에 남길 것이다.      

미래를 대비하며 현재를 감수하고 싶지도 않다.

현재를 더 안락하고 편리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우리 집 비움 전문가이다.        

   


그런데 채움은 스트레스다.

쇼핑이 어렵다.

선택지가 많은데 뭘 골라야 할지도 모르겠다.

취미도 소질도 아닌 것을 하는 시간이 아깝다.

진지하게 ‘ 나만의 쇼핑 원칙’을 만들려고 시도한 적도 있다.    

  

별로 갖고 싶은 것도 없다.

물건이 너무 갖고 싶어서 안달 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물건을 살 때는 평생 쓸 것처럼 고르고 또 고른다.

후기까지 꼼꼼하게 읽어보고 단점까지 감수할 수 있을 때 구매한다.

어차피 물건에는 애착을 느끼지도 못할 거면서 그럼에도 막상 살 때는 평생 쓸 것처럼 신중히 고르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건이 너무 좋아서라기보다는 이 정도면 괜찮을 듯해서 고른다.

늘 적당한 것을 고른다.

그러면서도 인터넷 최저가를 고르고 고르는 내가 짜증 날 때가 많다.

그냥 후딱 고르고, 나에게 가치 있고 즐거운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실패는 하기 싫은 것이다.

이럴 땐 어떤 것도 사소하지 않은 내 성격이 버겁다.      


쇼핑이 어려운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참 오랫동안 생각해왔었다.

이번엔 시간을 정해두고 집중적으로 분석해 봤다.     

 



충분한 마인드와 부족한 마인드의 차이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그중에 한 가지가 바로 수동성과 주체성입니다.
부족한 마인드의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저렴한 물건을 선택한다고 해요.
원래는 A를 사고 싶어도 더 저렴한 B나 C로 타협하죠.
그렇지만 충분한 마인드의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으로 곧장 손을 뻗어요.
다른 것보다 가격이 약간 비쌀지도 모르지만 정말 필요한 물건을 샀으므로 그 쇼핑 만족도도 높고요.
                                                                                         책 ‘사지 않는 생활 ’ 중 -      


책 ' 사지 않는 생활 (저자: 후데코) ' 에서는 이런 사람을 ‘부족한 마인드의 소유자’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그렇다면 내가 바로 ‘부족한 마인드의 소유자’이다.      

진짜 비싼 물건이나 좋은 물건까지 내 선택지 안에 있다면 어떨까?

그때도 스트레스일까? 아닐 것 같다.

한정된 자원과 시간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그런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면서

최고의 물건을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합리적 가격, 성능. 디자인. 색감. AS까지.

더 엄격한 잣대를 대는 것이다.     

명품에 까다로운 잣대를 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명품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내가 잣대를 대야 하는 것들을 미리 다 재고 나온 걸 수도 있으니까.

     

어릴 때부터 늘 절약하는 엄마를 보며 자랐다.

시장에 가서 팔다 남은 시래기를 얻어 와 국을 끓여주던 엄마였다.

초등학교 때는 옷도 거의 물려받았다.

책이나 참고서도 물려받았다.

전기, 수도 아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고,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정을 알기에 무엇을 사달라고 말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별로 갖고 싶은 물건도 없었다.     

덕분에 ' 절약해야 해. 저축해야 해. ’라고 늘 생각하며 살았다.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은 잘하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소비는 자신이 없었다.

물건을 구매하려면 엄격한 잣대를 그었다.  

소비는 늘 조심스러웠다.

자유롭게 소비하는 기쁨은 어떤 건지 궁금해서 한 달 월급을 일부러 다 써본 적도 있다.  

그런데 그게 부족한 사람의 마인드였던 것이다.     

오랜 궁금증이 풀리는 것 같다.  


친정 부모님은 절약정신과 성실함으로 현재는 노후에 걱정 없으실 만큼 꽤 여유가 생기셨다.

감사하게도 나도 좋은 남편을 만나 평범하지만 부족함 없이 산다.

시간이 지났고 상황이 바뀌었는데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가.

죽을 때까지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 인가.


나는 이미 충분하다. 충분하게 갖고 있다. 내가 정말 갖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다.

부족한 마인드가 아닌 '충분한 마인드의 소유자'로 살아가야겠다.


버리는 것은 잘하고 있으니 채우는 것도 잘해보고 싶다.

비움 전문가에서 채움 전문가도 되어보려고 한다.


내가 정말 갖고 싶은 물건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내 10년 뒤의 원하는 모습은 취향과 멋을 아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필요 없는 것은 모두 버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고 필요한 물건들로만 채운 공간에서 지내게 될 나의 모습이 설렌다.  


이제부터 1년에 한 번 정도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원하는 것' 을 꼭 사봐야겠다. 


시즌 3 안 하나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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