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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낮밤낮글글글 Oct 22. 2023

긴긴밤에 생각날 이야기

<긴긴밤> 저자 루리, 문학동네

동생에게.        

3월은 아직 바람이 차가운데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니?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 나는 좋더라. 바깥을 돌아다니다 보면 계절의 변화가 곳곳에 숨어 있거든. 해는 정말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해서 지금이 좋더라. 산뜻하고 생명력 넘치는 봄. 이 봄에 나는 『긴긴밤』이란 책이 생각나.      

『긴긴밤』은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을 받은 책이야. 처음 추천받았을 때, 어린이책이니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부담 없이 책을 펼쳤던 기억이 나. 책 제목과 표지에는 코뿔소와 펭귄의 뒷모습을 볼 수 있어.

     

표지를 보다가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어떤 밤들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밤’은 ‘낮’이 지나간 후에 오는 거잖아. 낮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밤 동안은 생각하거나 꿈을 꾸거나 할 수 있고 말이야. 일할 때 나는 너무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밤’을 잘 사용하지 못했어. 잠을 자는 용도로만 사용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밤에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있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밤. 원 없이 생각할 수 있는 ‘밤’이 있어 힘이 돼.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표지에서 코뿔소 노든, 펭귄을 지키려 애쓴 수컷 펭귄 치쿠와 윔보의 이야기야.


나는 코뿔소 노든을 보면서 코로나19 시기에 ‘화’가 많이 났던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화’가 수시로 나서 사람과의 대화가 부담되고 싫어졌던 그때가 말이야.      

소설을 읽을 때는, 주인공들에게 감정 이입하며 읽으라고 하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돼서 힘들었어. 그런데 이 책은 짧으면서도, 그림이 그려지듯이 읽혀서 제목과 이야기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이야기의 결말이 행복한 결말인지, 불행한 결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아.


가족 잃은 코끼리들이 사는 코끼리 고아원에서 노든은 생활하게 돼. 현명한 코끼리들 사이에서 ’ 현명한 코끼리’가 되려고 한 코뿔소 노든에게 코끼리들이 이렇게 이야기해.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이 장면을 보니, 무리 안에서, 단체 안에서 ‘나도 함께하고 싶어’라고 생각하면서도 ‘달라지는 나의 모습’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와닿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어. 함께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닮아가고, 어떤 때는 닮고 싶어 하잖아. 코끼리 고아원에 있는, 가족을 잃은 현명한 코끼리들은 ‘너는 이미 코끼리야’라고 말해주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코뿔소’라고 말해주는 모습은 감동스러웠어.

      

사람은 한 가지 모습만 가진 게 아니라고 들었어. 그리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대. 그래서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야. 그런데 사람들과 친해지다 보면, 나 역시도 ‘내가 가진 모습’을 버리고 무작정 상대방을 따라가려고 해. 그래서 요즘 나는 마음 안에서 많이 싸우고 있어. 무작정 따라 하지 않기로 말이야. 늦더라도 하나씩 방법을 찾아가기로 말이야. 조급함은 내려놓고, 해야 할 질문들을 하면서 가려고 해. 너에게도 내 고민이 도움 된다면 좋겠다. 


나를 알아가면서도, 사람들에게 배우고 싶은 점들은 한 가지씩 도전해 보면서 배워 보고 싶어.          

코뿔소 노든이 처음부터 현명하고 좋은 코끼리들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앞으로의 일들이 험난한 여정으로 펼쳐지니까 좋은 동료를 만나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아. 

얼마 안 가, 노든은 최고로 완벽한 순간에 완벽한 불행을 만나게 돼. 울타리 안에 있었다면 그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행복했을까, 가족도 만들지 않고, 사람들이 관리해 주는 대로 코끼리들과 그들처럼 살아갔다면 험난하지 않아서 살아가기 더 수월했을까 싶기도 했어.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을게.

          

코뿔소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면서 작별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때 다른 주인공이 노든에게 물어봐. ‘그때 고아원을 나오기로 한 선택을 후회한 적이 있느냐고?’ 

노든은 대답해 줘.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는 후회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좋은 결과에 연연했는데, 이 장면은 내게 크게 다가오더라.

장엄하고 변화무쌍한 자연 안에서 자신이 결정한 일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면, 험난한 과정 안에서 노든처럼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 

그런 면에서 자연은 두렵지만 언제나 다시 시작하기 정말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어. 자기 스스로를 돕고 (용기 내고), 내 옆에 소중한 사람들과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두려울 게 없을 것 같아.

그처럼 후회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부터 해보고 싶어.

     

생각해 보니 나는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매일 조금씩 다른 나로서 존재하고 싶었어. 옷을 입듯이 하나씩 내게 맞는 옷을 입고, 해야 할 일을 생각할 수 있다면 충분할 것 같아. 노든의 말처럼, 많은 후회를 하겠지만 때로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일도 만들면서 말이야.  

    

『긴긴밤』한번 읽어 봤으면 좋겠어. 마지막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노든과 치쿠와 윔보의 도움으로 생명력 있게, 씩씩하게 자기 힘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한 인물이 있거든. 그들의 긴 여정은 고단하고 힘들어. 함께 기대며 긴긴밤에 희망을 가지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해. 그런데 계속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읽고 나서는 힘이 생겨나더라.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해, 아름답지만 위험한 세상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살아줘.’라고 느껴졌어. 

책은 읽은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읽고 나면 이야기해 줘.     

당진에서 언니가



* 참고 : 처음에는 편지글 형태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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