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이 창조하고, 더 움직이는 마을 만들기
인생은 결코 짧지 않다.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밀도’를 생의 전반에 걸쳐 계속 늘려갈 수 있다면 말이다. 물론 ‘좋은 사람’의 기준은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찰나의 인연으로, 누군가는 오랜 서사를 통해 만나가기에 그 실체를 하나로 정의하기 모호하다. 하지만 ‘좋은 시간’이 내게 남기는 특징만큼은 꽤 선명한 형상을 띠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느끼는 좋은 시간의 징후는 의외로 단순하다. 거창하지 않다. 감각과 관련된 지표들이다.
1. 기록의 욕구가 늘어난다. 렌즈 속에 풍경과 사람, 그리고 그 순간의 나를 끊임없이 담게 된다.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움을 붙잡아 두려는 솔직한 본능이다.
2. 일상의 감정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일상의 지루함, 게으름, 막연한 불안 등 무채색 감정과 대비되는 선명한 감정이 일어난다. 호기심이나 경외감이 들어서는 것이다.
3. 몰입의 상태로 진입한다. 인생을 길게 만드는 이 마법 같은 순간들은 그 찰나가 시곗바늘의 속도를 압도하고, 매우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좋은 시간’은 크게 두 갈래의 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타인과 함께 즐거움을 공유하는 ‘사회적 경험’이다. 여행, 미식, 운동과 같은 활동들은 여럿이 함께할 때 그 기쁨이 입체적으로 증폭된다고 느낀다. 이 갈래에서 내가 느끼는 핵심은 ‘관계적 충만함’이다. 나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이들의 감정과 이익을 함께 고려하고 챙기는 과정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본능적인 충만함을 얻는다. 내게 이는 인생의 ‘넓이’를 확장하는 시간이다.
두 번째는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자신과 만나는 ‘내밀한 경험’이다. 독서나 철학적 사유가 이에 해당한다. 이 시간의 호기심은 외부가 아닌 철저히 내부를 향한다. 본질을 탐구하고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이 과정은 내게 때로 아득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자기만의 논리에 침잠한다는 점에서, 이 시간은 어쩌면 가장 반사회적 행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고립되고 강한 사유를 통해 인생의 깊이를 만들어 내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아의 뿌리를 내리게 된다. 무질서하고 파편화된 생각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된다. 혼란스러움이 정리되다 보니, 나는 이 시간을 ‘좋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결국 내가 인생이 짧게 느껴질 때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을 채우는 경험의 부피가 얇기 때문인 것 같다. 타인과 교감하며 인생의 넓이를 넓히고, 홀로 사유하며 인생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 이 두 가지 ‘좋은 시간’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부피가 곧 내 인생의 진짜 길이라고 느낀다. 그러므로 좋은 시간의 밀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면 인생이 짧다고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좋은 시간이란 내게 결국,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순간들이다. 사진을 찍어 그 순간을 멈추려 하거나, 몰입하여 흐름을 잊거나, 사유를 통해 무한한 영원을 붙잡으려 하는 것이다. 이런 순간들을 늘려야 인생이라는 유한한 틀 안에서 무한함을 경험하게 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