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티게 하는 사소한 것들

보편의 단어(이기주 저)

by 휘휘

p.46

매 순간 우린 다른 기분으로 살아간다.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기분은 얇은 창호지와 비슷하다. 타인이 더러운 말과 행동으로 찌르면 힘없이 찢어지고 만다.

기분을 회복하려면 혼자만의 시간이나 나 아닌 다른 존재의 다정함을 접착제 삼아 마음에 고르게 펴 바른 다음, 시간이라는 바람 속에서 천천히 말려야 한다.


p.71

누군가의 곁에 머물기 위해선 그 사람과 내가 동일한 시간과 공간 속에 함께 존재하는 경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타인과 시간을 공유해야 한다.


p.72

우리가 쫓겨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뿐이다. 그 안온한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 불안과 초조에서 벗어나 안정감을 느끼며 삶의 허무를 가라앉힐 수 있다.


p.109

마음에도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 마음이 너무 빽빽해지면 시야가 좁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의 속도마저 빨라진다.


p.136

기쁨이나 성취감 같은 것이 내가 나아가야 할 인생의 좌표를 알려준 경우가 없진 않았지만, 그것들이 나로 하여금 타인과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하게 해주진 않았던 것 같다. 오직 마음에 가장 깊게 새겨진 은밀한 상처만이 날 특정한 방향으로 걸어가게끔 하는 '삶의 나침반'으로 작용했다. 언제나 그랬다.


p.166

어떤 면에서 산다는 건 내가 상상했던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배반당하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p.167

그런데도 우린 현실성이 없거나 실현 가망이 부족한 일을 끊임없이 떠올리며 살아간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무언가를 공상하거나 그것에 닿고자 결심할 때 마음에서 솟구치는 설렘의 기운으로 현실을 버티고 미래로 전진하기 위함이다.


p.178

그들은 뭐랄까. 타고난 기질이 온화한 사람들이라기보다 쉬운 길을 두고 일부러 어려운 길을 걸으면서, 남들이 실천하기 어려운 삶의 원칙을 정립한 뒤 그것이 몸과 마음에 스며들도록 애쓴 이들처럼 보인다.


p.179

더러운 걸 발견하고 침을 튀기며 손가락질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입을 닫고 묵묵히 청소하는 건 아무나 하지 못한다. 편견과 혐오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쉽다. 하지만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p.181

우린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실을 꼭꼭 감추려 하기 보다 주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사랑은 자랑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p.193

대부분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타인이 겪는 커다란 시련보다 자신이 느끼는 작은 불편함을 훨씬 중요한 문제로 여긴다.

어떤 면에서 편견은 일종의 '심리적 지름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p.210

"남의 흠결만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 삶이 아니라 '남'의 삶을 좇으며 시간의 바깥쪽에서 겉돌면서 평생 제 삶을 허비하기 때문이다." _말의 품격 중에서


p.221

긍지감이나 자부심을 표현하는 걸 넘어, 우월감에 빠져 조언을 쏟아내는 사람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는 편이다. 스스로 우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조언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p.229

후회라는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깊이 후회할지, 아니면 새로운 길로 접어들지를 두고 어느 쪽이든 택해야 한다. 선택의 문을 열어젖혀야만 우린 후회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p.247

익숙한 것을 빼앗겨 박탈감에 시달릴 때, 우리 마음속에선 감정의 파도가 일어난다. 감정이 요동치거나 그것이 마음의 벽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져야 인생의 행로를 바꿀 만한 사연과 동기도 생겨난다. 이는 우리 삶에 내포된 가장 지독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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