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손원평)』을 읽고
이 책이 처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을 때 표지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 굳이 찾아 읽지 않았다. 표지가 감성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속으로 좀 유치할 거라고 생각했다. 또 청소년 소설이라는 점이 나에겐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시중에 정말 많은 청소년 소설들이 폭력적인 양아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배우가 하는 욕은 고난과 역경에 맞닥뜨려 한숨과 함께 토해내는 욕으로 들린다면, 책에서의 욕은 왠지 모르게 날이 서있다. 글이 칼을 들고 있는 듯하다. 이유 없는 폭력과 욕설이 난무한 글을 읽고 있으면 속이 안 좋아지곤 한다.
이런 이유들로 이 책이 내게 개입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끈질기게도 이 책은 베스트셀러 칸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며칠 전 서점에 갔을 때도 높은 곳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이 책을 피해 다른 소설을 꾸역꾸역 찾다가, 계속해서 아른거리는 걸 참지 못해 결국 집으로 가져왔다.
그 날 저녁 먹고 산책하고 온 후 노곤 노곤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러 자세를 거쳐 책을 끝까지 읽고 덮으니 새벽 한 시였다. 이 '유치한 그림'이 그려진 '유치한 청소년 소설'은 나를 잠에 들게 하지 못했다.
이 책은 감정을 읽지 못하는 소년, 윤재가 감정을 있는 대로 쏟아내는 한 소년을 만나 감정이란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윤재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서 감정을 표현하고 읽는 방법을 배운다. 슬픔이 무엇이고, 칭찬을 왜 하는 것인지,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를 암기하며 배운다. 엄마가 바라던 '정상적인 아들'의 모습으로 친구들 무리에 섞여 들어갈 때쯤 한 남자의 습격으로 할머니가 살해당하고 엄마가 식물인간이 된다. 더 이상 정상적인 범주에 들어가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일러주는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삶에 브레이크가 걸렸을 때 곤이라는 소년이 인생에 등장한다. 곤이를 통해 윤재는 무던했던 가슴이 점점 따뜻해지고, 극의 후반에서는 도라라는 여자 친구를 통해 윤재가 느끼는 감정의 고조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가의 말이었다. 작가는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부모로서 아이가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큰다 해도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다. 이 글을 보고 나서야 윤재와 곤이 모두 부모가 기대하는 아이의 모습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만약 나의 자식이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차가 와도 무섭다는 것을 몰라 피하지도 않는다면? 다친 사람을 보고 슬퍼하지 않는다면?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는 그 아이를 잘 이끌 수 있을까? 만약 나의 자식이 의도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다닌다면?
요즘 많은 젊은 사람들이 딩크족을 선언한다. 어떤 부부들은 자녀를 언제쯤 나을 건지, 어느 학군에서 교육시킬지, 어떤 학교를 보낼 것인지를 미리 계획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자식을 어떤 방향으로 키울 수 있을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대처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작가는 자녀의 인격의 성숙을 고민하기 전, 부모로서의 인격을 먼저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