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이었다. 나는 ‘딴-생각’ 2회차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왜인지 지독히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어쩌자고 원고 몇 회 분량도 미리 써두지 않은 채 덜컥 연재를 결심한 것일까. 앞으로 이렇게 매주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걸까.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산만하고 글은 더욱 말도 안 되게 길을 잃고 헤매던 차, 친구에게 DM이 왔다. 누군가가 정리하여 게시한, 이른바 시간 관리법. 방법은 깔끔하고 분명하다. 실천하기 어려울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그걸 모를까? 다 알면서도 난 당장 이번 주 시간 관리도 엉망진창이라고. 한숨을 내쉬며 친구에게 외마디 답을 썼다.
킥
킥?
내가 저걸 안 해 봤을까…. 킥킥
외롭거나, 괴롭거나, 짜증이 날 때에도 나는 결국 그 웃음을 꺼낸다. “킥킥….” 이것은 허수경 시인의 시, 「혼자 가는 먼 집」을 알게 된 후 입에 붙은 웃음으로, 일종의 ‘광기 경보’다. 친구와 나, 둘 사이에선 ‘광기의 시’라 명명한 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후략)1)
해명을 좀 해두자면, 시 속 화자는 광인이 아니다. 후략 부분에서 화자는 ‘치병’이란 표현을 쓴다. 병을 다스리느라 화자는 오히려 더 많이 아프고, 그래서 새어 나오는 울음, 혹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광인은 바로 나…. 틈만 나면 이 시를 소환하여 킥킥대는 나 자신이다. 어찌 되었든 기어이 입 사이로 ‘킥킥’이 새어 나간 이상, 글쓰기는 틀린 밤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킥킥’을 찾아봤다.
킥-킥¹
부사 나오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잇따라 터뜨리는 웃음소리.
아무 생각 없이 검색했는데 사전에 등재되어 있어서 내심 놀랐다.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어떤 웃음소리도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놓고, 오직 웃음소리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냥 포털 검색창에 ‘사전에 등재된 웃음소리 의성어 개수’를 입력했다. 호기심 많고 똑똑한 어느 블로거가 이 내용을 멋들어지게 정리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검색 결과 제일 상단에는 AI의 답변이 위치했다. ‘하하, 호호, 킥킥, 껄껄, 히히’ 이렇게 다섯 가지만이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는 것. 네놈들 하는 말이 다 그 모양이지.
이번에는《표준국어대사전》에 무작정 떠오르는 웃음소리를 하나하나 검색했다. ‘헤헤’는? 있다. ‘허허’는? 있다. ‘에헤헤’, ‘이히히’까지도! 모두 사전에 실려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킥킥거리며 웃음소리를 하나하나 찾는 방식으로는 갑작스럽고도 강렬한 나의 궁금증, 사전에 등재된 웃음소리 의성어가 몇 가지나 되는지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논문 검색까지 하기에 이르렀지만―이미 이때쯤 깊은 밤에 접어들었다― 검색 능력 부족 탓인지 구체적 자료는 찾기 힘들었다. 내가 알아낸 건, 통상 국어사전에 수록된 의성어ㆍ의태어(표준어)는 약 5천여 개에 이르며 여러 접미사와 결합된 파생어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15,000여 개에 이른다는 사실 정도였다.2) 하, 이 중 웃음소리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나는 커다랗고 두꺼운 사전을 펼쳐 기역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웃음소리를 찾는 상상을 했다.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대단한 광기의 밤이었다.
그러니까 지난 화요일 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오늘은 17일, 연재 하루 전, 수요일이다….― 하루 틈틈이 사전에 실린 웃음소리들을 생각했다. 사실, 웃음소리가 사전에 실리는 건 어색하지 않은가, 의아하기도 했다. 비분절의 음성으로 흩어지는 웃음을, 의미를 구별할 수 있는 하나하나의 음운으로 정돈하여 종이 위에 옮기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그런데 아득히 먼 과거부터 막연히, 상상하다 보니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붙들고 싶었던 거구나. 당신의 웃음소리를. 그리고 나의 웃음소리도, 전하고 싶었구나.
문자로도 웃고 싶어서, 편지에 웃음을 전하고 싶어서. 어색하게 시작한 웃음의 기록이 오늘에 이르지 않았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웃음을 건네다 어느 정도 통일된 형태를 갖추게 되자, 그야말로 번듯이 사전에 오르게 됐겠지. 국어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여, 언어 규범에 맞추어 웃음소리들을 추리고 그 의미를 숙고 끝에 정리했을 것이다. 헤매던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인간싫어인간’이라 스스로를 광고하고 다니는 나조차 별수 없이 잠시나마, 이건 좀 귀엽네, 인간. 하게 된다.
순간의 감정과 의미를 담은 수많은 소리들이 점차 정돈되고 다듬어져 종이 위에 쓰일 때까지, 그 긴 시간을 생각하다 보면, 요즘 우리의 언어생활은 그와 얼마나 다른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우리말의 사용 양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 변화를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건 심란하면서도 또 흥미로울 것이다.
오래도록 문학을 향유하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듣고, 내 이야기도 찬찬히 해 나가야지. 그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豪奢) 아닐까. 그러니 외로워도, 다음 연재 글도 꼭 써야겠다.
언어 규범이 실제 언중들의 언어생활을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반영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단순치가 않다. 문법 체계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더욱 복잡하다.
국립국어원은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총 748개의 표제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 추가했다. 『결과보고서 - 2024년 표준국어대사전 개편』에 따르면 연구책임자 정희창 교수를 비롯 총 26명의 연구자들이 고심하여 사전을 정비했다고 한다. 이 중 의성어ㆍ의태어만 해도 정비 대상 개수가 무려 2,767개인데, 이 부분은 한 명의 연구원이 맡아서 해낸 것으로 보인다.3) 얼마나 힘든 작업이었을지. 언어의 세계는 정말 방대하여서, 가만 앉아 헤아리다 보면 우주에 표류 된 기분마저 든다.
2024년 《표준국어대사전》에 추가로 등재된 표제어 중 눈에 띈 세 개의 단어를 옮긴다.
‘간장게장’, ‘양념게장’, ‘청양고추’
늦게나마 환영의 의미로 위 단어들을 한 번씩 사전에서 검색해 보았다. 킥킥거리며.
올해에도 새 단어들이 몇 개 추가되었는데, 그중 '듣다못하다', '한말씀하다'는 내게는 아직 한 단어라기엔 조금 어색하다. 띄어쓰기를 완벽히 해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덧붙여,
정말 좋아하는 허수경 시인의 시를 이렇게 장난치듯, 소개하게 돼 부끄럽다.
시인의 시 중 「먹고 싶다……」를 특히 좋아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시를 사랑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다면 좋겠다.
1)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118
2) 박동근, 「국어사전의 의성어ㆍ의태어 미시 정보 제시 방법과 문제점」, 한말연구학회, 2024
3) 국립국어원, 『결과보고서 - 2024년 표준국어대사전 개편』,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