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의 ‘온라인가나다’ 게시글들을 가끔 들여다본다. 작은 취미라고 해야 할까. 친구는 내게 어떻게 그것을 ‘네이트판’ 보듯 흥미진진 보냐며 놀리기도 하는데, 으음…. 근데 정말 꽤 흥미진진 볼 때도 있어서, 아니라고 발끈하기도 머쓱하기는 하다. 문의 내용 중에는 제법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한 것도 있고, 이 정도는 사전만 찾아봐도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하는 질문들도 있다. 게시글마다 성실하게 덧붙는 답변을 보며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이런 걸 보면 내가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나서서 맞춤법에 어긋나는 글들을 짚어 고쳐주고 다니는 사람일 것 같지만, 굳이 나서서 그것을 지적한다든지, 가르치려 드는 것은 의식적으로 피하는 편이다. 일단 나부터도 완벽하지 않은데, 상대의 실수를 나서서 굳이 따지는 것이 너무 무례한 것 같다. 내 주변엔 맞춤법을 딱히 잘못 쓰는 이들이 거의 없기도 하고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완벽하게 쓰려 노력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보기에 괴로울 일도 없다. 그래도 가끔, 너무너무 알려주고 싶을 때 참지 못하고 슬쩍, 참견을 하게 하는 단어들도 있긴 하다. 오늘의 단어, ‘며칠’이 바로 그중 하나.
‘온라인가나다’에 ‘몇일’을 검색하면 문의 글 총 46건이 나온다. 질문자의 태도는 화가 나 있는 경우가 꽤 많은데, 역시 대부분이 ‘며칠’인 걸 알면서도 왜 그것을 그렇게 표기해야 하는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몇 월’, ‘몇 달’ 등과 같은 관형사 ‘몇’의 쓰임이나, ‘사람이 몇이나 더 있다.’등과 같은 수사로서의 ‘몇’의 존재 때문인 듯하다. ‘몇 일’ 쓰고 바라본다. 표기만 놓고 봐서는 흠잡을 데가 없이, 원래부터 이게 맞다고 주장할 만하다.
화가 난 사람들이 ‘온라인가나다’에 글을 올리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 본다. 처음에는 모르고 썼는데 누군가가 지적을 한 것일까. 그에 마음이 상해 그 지적이 정말 온당한지 찾아보다가 분개하여 글을 쓴 걸까…. 화가 잔뜩 묻어나는 질문들을 보며, 역시 직접적으로 맞춤법을 알려주려고 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한다. 그저 나부터, 바른 표기로 쓰면 된다. 아 그런데, 나 이미 너무 가르치듯 쓰고 있네….
왜 ‘몇일’은 물론 ‘몇 일’도 안 되는가. 이에 대해 《한글 맞춤법》제4절, 제27항 [붙임2]의 해설에 직접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다.
어원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도 원형을 밝혀 적지 않는다. ‘며칠’은 ‘몇 년 몇 월 몇 일’처럼 ‘몇’이 공통되는 것으로 인식하여 ‘몇 일’로 쓰는 일이 많다. 그러나 ‘몇 일’이라고 하면 [며딜]로 소리가 나야 한다. 이러한 점은 ‘몇 월’이 [며둴]로 발음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발음은 [며칠]이라서 ‘몇일’로 적으면 표준어 [며칠]을 나타낼 수 없다. 따라서 ‘몇’과 ‘일’의 결합으로 보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며칠’로 적는다.
이렇게나 따로 설명하고 있으니 아무리 화가 나서 따져 물어도 저 논리는 이길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한글은 음소 문자이기 때문에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무엇이든 소리대로 적는 것은 가독성에 해가 된다. 이에 형태 음소적 표기법을 적용하여 그 원형을 밝혀 적는다. 표기대로 읽었을 때 음운 변동을 거쳐 표준어로 발음됨을 설명할 수 있는 표기 체계를 정한 것이다. ‘몇 월’을 우리는 [며둴]로 발음한다. 이는 ‘월’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음절이라 하여도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형태소이기에 ‘몇’이 음절의 끝소리 규칙을 거쳐 ‘ㄷ’으로 교체된 채로 연음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형이 밝혀져 있고 발음의 근거가 분명한 표기는 문제될 것이 없다.
‘온라인가나다’에 올라 온 ‘몇일’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우리가 다 [며칠]로 발음하는데 왜 ‘몇일’이 틀리냐고 한다. 같은 말을 반복하며 게시글은 그렇게 마흔 건을 넘어선 것이다. “여러분, 그래서 ‘몇일’이 안 됩니다. [며칠]로 발음하니까요!”라고 확성기로 들려주고 싶어진다. 어쩌면, 정말 ‘몇일’로 시작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밝혀 적은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발음대로 적던 시기 ‘며딜’이라고 적힌 기록이 한 군데에라도 있었더라면! 그러나 과거에도 ‘며츨’과 같이 적힌 기록만 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의 주장에는 조금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어제는 SNS를 구경하다가 누군가 댓글로 ‘몇칠’이라고 쓴 걸 봤다. ‘몇’이라는 원형과 [며칠]이라는 발음 모두를 놓치기 싫은 글을 쓴 이의 마음이 느껴져 괜히 웃음이 났다. 우리는 앞으로도 영영 ‘며칠’의 원형을 알 수 없겠구나. 원형을 알지 못해 발음으로만 남은 단어들, 마치 끈 떨어진 연 같다. 출발지를 알지 못한 채 그저 표류하고 있는 단어들. 이런 말들을 떠올리다 보면 늘 마지막엔 ‘물구나무’에 눈길이 간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물구나무서다’, ‘물구나무서기’로 등재되어 있는 단어. ‘물구나무’에 대해 처음 생각한 건 아주 예전에,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을 읽었을 때였다. 작중 ‘경’이 그의 열렬한 애정의 대상인 ‘옥희도 씨’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물구나무를 선 채 온 매장을 쓸고 다니는 걸 상상하는 장면에서 그만 웃음이 터졌는데, 그러면서 그날 처음 ‘물구나무’의 어원이 궁금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자료나 흔적들을 찾아 봐도, 뚜렷하게 ‘물구나무’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우리말샘에 강원 방언으로 ‘물구낭그’나 ‘물구낭기’가 실린 걸 보면, 중세 국어 시대에는 '나무'가 'ㄱ 곡용 체언'이었으니 아마 말 그대로 어떤 ‘나무’에서 온 것 같단 것까지만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며칠’은 지척에 원형이 이것 아니냐고, 따지고 싶은 다른 단어라도 있지만, ‘물구나무’는 정말 쓸쓸하기 짝이 없다. 나는 너무 알고 싶지만 영영 알 수 없을 것들이 생각날 때마다 목록을 적어두는 습관이 있다. 아주 오랜만에 결국 거기에 ‘물구나무’를 추가하기로 한다. 어찌 되었든, 시간이 흐르며 천천히 변화하는 언어의 풍화, 꽤나 매력적이다.
표기에 있어서, 모두가 이해하기에 자연스러운 단어부터, 그렇지 않은 말까지, 살며 하나하나 깨우쳐 왔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스스로 제법 대견스럽다. 단 하나의 오류 없이 글을 쓰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부분에선 자신에게 질릴 정도로 엄격한 나조차도 가끔은, 이만큼 자라났음에 뿌듯한, 칭찬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되어 버린다. ‘받아쓰기’를 하던 어린 날을 생각하면, 얼마나 근사한 성장인지. 아무것도 몰라 줄줄이 틀리다가, 망설임과 주저함, 부끄러움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쓰기생활에 이른 것을 조금 칭찬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 ‘온라인가나다’에 올라오는 숱한 질문들도. 그러한 우리들의 흔적이니 모두 귀엽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