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참 많은 편이다. 김영랑 시인은 마음에 끝없는 강물이 흐른다 하였는데, 나는 쓸데없는 생각만 흘러넘친다. 그 덕에 지혜롭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되었다면 좋았겠으나, 나는 그저 정신없고 산만한, 무어든 시작 전에 이미 울화가 쌓여 있거나 주눅 들어버리는 — 쓰다 보니 정말 슬퍼진다…. —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 생각하지 말라 하면 머릿속을 싹 비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게 얼마나 놀랍던지. 생각 비우기, 그거 어떻게 해내는 걸까.
이렇게나 속엣말로 시끄러운 상태가 지속되면 자연히 지치고, 나는 어떻게든 평안을 위한 방도를 찾아 나선다. 가장 마음이 내키는 건 아무래도 폭식이다. 거기에 영상 매체의 도움이 가미된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인 도파민이 제공된다면 제아무리 입을 다물고도 말을 멈추지 않는 말기계라 해도 꽤 긴 시간 뇌를 멈출 수 있다. 주로 찾는 영상은 일본 드라마 중에서도 <수수하지만 굉장해>나, 미드 <모던 패밀리>처럼 약속이 지켜지는 세상이 배경인 드라마이다. 아무래도 생각을 멈추는 데엔 안전하다는 감각이 꽤 효과적이니까.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생각의 늪으로부터 도피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항상 그 끝이 자괴감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잠깐 내려놨던 생각이 그 덕에 복리로 불어나 안긴다. 무엇보다, 이건 휴식 시간에나 쓸 수 있는 방책이다.
지금 당장 할 일이 쌓여 있거나 어디 도망칠 구석 하나 없는데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난장의 상태에 빠지면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이럴 때, 내가 찾는 단어가 있다. 의미가 아닌, 오직 소리 즉 기표(記標)로서 기능하는 한 단어.
이십 대 후반의 어느 날, 유독 속으로 자신을 지지고 볶던 때였다. 이제 막 시를 좋아하기 시작한 무렵, 시집을 보다 눈에 띈 시어가 있었다. 고독(孤獨). 입말로 읊으니 우뚝 멈춘 기분. 그대로 잠시의 적요를 지나는 동안 나는 무언가 놀라운 발견이라도 한 듯 그 순간이 너무나 반가웠다. 간절히도 찾던 소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파열되지 않고 멈춘 폐쇄음 기역(ㄱ)이 이전의 모든 내 안의 문장들을 멈춘 것 같았다. 이게 침묵 소리구나, 이제부터 침묵 소리가 간절할 때, 나는 고독을 찾아야겠다, 했었지. 그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도 고단할 때 속에 잘 품어 둔 그 두 음절의 한 단어를 꺼내 조금 빠르게, 그러나 정성 들여 발음한다.
사실 고독이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요즘의 십 대, 이십 대는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합죽이가 됩시다, 합!”
단체로 모여 있으면 시끄럽기 마련이므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저렇게 구호를 외치면 이를 따라 외친 아이들은 입술을 앙다문 뒤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순식간의 일. 비읍으로 끝나는 단어를 사용했단 점이 음운론적 측면에서 본다면 꽤나 그럴싸하다. 그러나 ‘합죽이’라는 단어가 ‘이가 빠져 입과 볼이 움푹 들어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비교육적인 구호다.
국어의 자음은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총 19개이다. 이들은 발음이 되는 조음 위치와 조음 방식에 따라 분류된다. 좀처럼 마주하기 힘든 고요는 자음 중에서도 파열음으로 끝맺는 단어 뒤에 선명히 감각된다. 자음 중 파열음에는 ‘ㅂ/ㅍ/ㅃ, ㄷ/ㅌ/ㄸ, ㄱ/ㅋ/ㄲ’이 있는데 이들은 음절의 초성에 올 때에는 ‘폐쇄-지속-파열’의 세 단계를 모두 거치지만, 음절의 종성, 그러니까 끝소리에 올 때에는 ‘폐쇄-지속’ 과정만을 거치고 파열 단계는 생략된다. 폐쇄의 지속. 터지지 않는 소리의 빈자리, 그게 바로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침묵 소리인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어떤 파열음이든 음절 끝에 온다면, ‘생각 소음’을 잠시나마 막기에 충분하다. 나는 단지 그 순간을 ‘고독’으로 처음 마주했을 뿐. 그래도 나의 ‘고독’에 의미를 조금이나마 부여해 보자면, 우선 아무리 기표의 기능만을 생각해서 필요시 꺼내 드는 말이라 해도 그 단어의 의미 자체가 그것이 요구되는 상황에 제법 어울린다는 것.
그리고 기역은 소리 자체로도 제법 매력적인 음소인데, 히읗 다음으로 조음 위치가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여린입천장소리, 연구개음軟口蓋音) 말의 속도를 천천히 할 때면 속엣말을 신중히 꺼내는 말맛을 느끼기에 좋다. '고독'의 모음 '오' 또한 안쪽에서 발음하는 소리로, 이 단어의 음소들을 한데 모아 발음하면 계속하여 쏟아지는 생각을 안쪽에서부터 든든히 막아주는 것만 같다. 음, 실은 이렇게나 진지하게 생각하며 쓰진 않았는데….
또 지독히도 의미를 부여하며 생각 소음을 만들고 있다. 다시 침묵이 필요한 시간이다.
우리가 음절 끝에서 발음할 수 있는 음운은 일곱 가지뿐이다. 'ㄱ, ㄴ, ㄷ, ㄹ, ㅁ, ㅂ, ㅇ'
표기상으로는 많은 자음들이 음절 끝에 오지만 결국은 위의 일곱 자음으로 교체되어 발음된다.
'읊다'의 'ㄿ'도 자음군 단순화와 음절의 끝소리 규칙을 거쳐 'ㅂ'으로 발음한다.
그러니 종성이 파열음인 단어는 정말 무수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