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는 널 좋아해│'좋아하다'라는 단어

by 윤세영


띄어쓰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아주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원칙과 허용 사이에서 가독성에 해가 되지 않는 한 되도록이면 원칙을 선택하려 한다. 가끔 지칠 때, 이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 묻다가도, 나는 그것을 신경 쓰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인 게 마음에 들어.라고 자세를 단정히 한다. 그렇게 얼마 전 글을 쓰다가 다시 확인한 것이 바로 ‘그 애’.


‘이분’, ‘그분’, ‘저분’은 모두 대명사로서 붙여 쓴다. ‘그 애’는 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붙여 쓰면 안 되는 걸 알고 있는데도. 앞의 대명사들이 생각나 또 강박적으로 확인을 한다. 포털 사전에 ‘그애’를 검색한다. ‘그애’가 한 단어가 아니기에 ‘그 애’가 쓰인 예문이 상단에 자리하는데, 나는 이 한 문장에 또 집중을 잃고 쓰던 글을 멈췄다.


그 애는 널 좋아해.


말랑하고 간지러운 소문이 귓가에 들리는 것처럼 단박에 설레게 하는 문장.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 애’랑 ‘너’ 행복하게 살렴, 하고 웃다가, 눈길은 점차 ‘좋아해’를 향한다.


좋아해, 좋아하다.

좋아하다는 참 귀엽다. 마치 ‘좋아’에 ‘하다’가 결합한 거 같다. 이런 단어들 더 있지. '부끄러워하다'. '부끄러워'에 ‘하다’가 붙은 것 같잖아. — 또 혼자 킥킥거리는 시간이다. — 그러나 당연히도, ‘좋아하다’를 ‘좋아+하다’로 분석해서는 안 된다.

형태소 분석을 하자면 ‘좋아하다’는 어근 ‘좋다’에 ‘-아하다’가 결합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이 ‘-아하-’를 접미사로 본다면 ‘좋아하다’는 파생어가 된다. 그런데 ‘하다’를 단독으로 사용되는 동사라는 점에 초점을 둘 경우, ‘좋아하다’를 어근과 어근의 결합으로 보아 합성어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맞는지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의 ‘온라인가나다’에 ‘좋다, 좋아하다’를 검색하면 총 아홉 건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단순히 ‘좋다’와 ‘좋아하다’의 차이를 묻는 질문도 있고 ‘좋아하다’의 형태소 분석, 그러니까 이것을 합성어로 봐야 하는지, 파생어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주가 된다.


‘딴-생각’ 2회에서 아주 간단하게나마, 형용사의 경우 현재 시제, 그러니까 지금을 서술할 때에는 다른 문법 형태소와의 결합 없이 기본형으로 쓴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므로 ‘좋다’는 형용사, ‘좋아하다’는 동사이다. ‘좋다’와 ‘좋아하다’는 문형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좋다’의 경우 주관성 형용사, 즉 화자의 심리 상태를 서술하는 형용사로 쓰일 때 평서문의 주어가 1인칭이어야만 한다는 제약이 있다. 동사인 ‘좋아하다’는 그러한 제약은 없으나 목적어를 요구한다.


나는 여름이 좋다.

그 애는 여름을 좋아한다.


파생어와 합성어의 차이라든지, 띄어쓰기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내가 좀 더 집중하여 생각한 것은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 문장, ‘그 애는 널 좋아해.’이다. 앞서 ‘좋다’는 화자의 주관적 감정을 말하는 주관성 형용사로 쓰인다고 하였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말할 때, ‘그 애는 네가 좋다.’라고 말하는 건 비문이 된다. ‘그 애는 널 좋아해.’에서 ‘좋아하다’라는 동사를 쓴 것은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나의 마음을 상대에게 고백할 때에도 왜인지 ‘좋다’보다 ‘좋아하다’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사전에 ‘좋다’를 검색하면 그 의미의 폭이 아주 넓다. ‘좋은 게 좋다.’든지, ‘좋게 좋게’라는 말들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우리는 ‘좋다’를 정말 엄청나게, 많이 쓴다. 그중 고백의 표현으로 쓰이는 ‘좋다’의 의미는 아래와 같다.


좋다

형용사

II.「…이」

1. 어떤 일이나 대상이 마음에 들 만큼 흡족하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다.


‘좋아하다’는 형용사인 ‘좋다’에 비해 의미나 용례의 폭은 좁다. 고백의 상황에서 쓰이는 '좋아하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좋아하다

동사

I.「…을」

1. 어떤 일이나 사물 따위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가지다.

나는 과학을 좋아한다.


두 단어를 번갈아 검색해 보곤, 아래의 두 문장을 쓰고 가만 바라봤다.


나는 네가 좋아.

나는 너를 좋아해.


형용사는 성질이나 상태를 의미하기에 ‘좋다’를 쓴 문장은 ‘나’와 ‘좋다’라는 서술에 더 눈길이 간다. 반면 동사는, 특히 ‘좋아하다’와 같이 목적어를 요구하는 타동사의 경우 목적어인 ‘너’와 좋아한다는 나의 마음가짐이 더 강조된다. 너무나 넓은 의미로 쓰이는 ‘좋다’라는 형용사보다, 고백의 순간 ‘좋아하다’라는 동사를 찾게 되는 건 바로 그래서인 걸까.


어릴 때 수업 시간에 ‘좋아하다’, ‘사랑하다’가 동사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좀 당황했던 것 같다. 감정은 상태 아닌가. 그런데 가만 바라보니 심리 동사는 그 의미가 미묘하게 달랐다. 좋아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상태의 서술이 아닌 증명의 문제였다. 그 증명은 우리의 움직임, 우리의 모든 행동을 통하는 것. 내가 사전 속 예문, ‘그 애는 널 좋아해.’ 그 짧은 문장에 설렌 건, ‘그 애’만의 특별하면서도 또 보편적일 애정의 형식들이 잠시나마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답지 않게 풋풋한 단어들에 오래 눈을 두다 보니 전생 같은 옛 기억이 떠오른다. 스무 살에,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고백을 한 경험이 있다. 지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당시에는 동대문운동장역이었다.)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 너무 떨려서 고백의 순간을 미루고 미루다가 하필 열차가 들어올 때 말을 꺼내는 바람에, 소음을 뚫고 마음을 전하느라 목소리를 크게 높여야 했는데, 그 애는 잘 들리지 않아 내 말을 되물었고, 나는 또 같은 말을 다시 외쳐야 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씩씩한 고백이었네. 언젠가 짧은 에세이로든, 아니면 소설로 한번 쓰면 재미가 있으려나.







앞에서 ‘좋다’를 주관성 형용사라고 잠시 언급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우선 객관성 형용사로서의 의미와 용례를 먼저 보여준다. 너무 예가 많아 조금만 인용해 보겠다.


좋다

형용사

I.

1.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 만하다.

품질이 좋다.

2. 성품이나 인격 따위가 원만하거나 선하다.

그녀의 성격은 더할 수 없이 좋다.


위의 예들은 화자가 자신의 주관적인 심리 상태를 의미하는 심리 형용사의 쓰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