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사(副詞), 도무지의 시간

by 윤세영


살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부사는 ‘절대’였다. 수업 시간, 우리 선생님께서 ‘절대’는 인간이 말할 수 있는 범주의 단어가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순간 내가 ‘절대’로 시작하는 어떠한 말을 하여도, 그것은 지금의 이야기일 뿐, 앞으로의 날들까지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 그 말씀이 계속 마음에 머물러 어떤 말을 할 때든 ‘절대’를 입에 담지 못했었다. 물론, 내 태도는 온몸으로 모든 것을 장담했지만.


몇 해 전, 잠깐 동안 해금을 배웠다. 종로3가역 7번 출구로, 엄청난 계단을 오르고 올라 — 나만 그렇게 힘든가요, 그 계단 — 레슨을 받는 곳까지 또 10분 정도 걸어 선생님과 마주 앉으면 숨이 차고 손이 떨려 곧바로 연주를 하기도 힘들었다. 연주자가 연주하는 해금 소리는 정말 아름답다. 그러나 내가 나의 ‘니나.노’ — 친구가 지어 준 내 해금 이름이다 — 를 연주할 때엔 꼭 악기가 머리채를 잡혀 내지르는 비명과 상스러운 욕. 같은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초보자용 악보를 받아 처음에 연주한 곡이 아마 ‘비행기’였던 것 같다. 내 비행기는 좀처럼 잘 뜨질 못했고, 이제 막 시작하는 주제에 하루빨리 근사한 곡을 연주하고 싶었다. 괜히 악보집을 뒤로 넘겨 보니,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눈에 띄었다. 정간보에 쓰인 대로 천천히 연주를 해 보았다. 그날따라, 소리가 제법 잘 나왔다. 더듬더듬, 조금 청승맞은 목소리로 노래도 소리 내어 불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그때부터였다. ‘절대’보다도 훨씬 자주, ‘도무지’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습관이 생긴 건.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도무지’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도무지²

부사

1. 아무리 해도.

2.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부사는 문장에서 부사어로서 기능하여 서술어를 수식한다. 서술어가 반드시 부사어를 요구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부사어는 수의적 성분이기에 생략이 가능하다.


지우는 빨리 달린다.

지우는 달린다.


위의 예문을 보았을 때 부사이자 부사어인 ‘빨리’를 생략한다 하여도 문장은 비문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부사어는 부속 성분으로 불린다. 그런데, 예전부터 늘 의아했다. 비문이 아니면 그만인 걸까. 의미의 측면에서 보면, 생략 가능한 말을 정하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울까.


화자의 태도를 나타내는 부사를 양태 부사라고 한다.

‘도무지’와 ‘절대’ 모두 화자의 감정. 정서적 태도를 나타내는 부사라 할 수 있다. 이들이 빠진다 해도 문장은 온전히 제 기능을 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르다.


지우는 도무지 걸음을 뗄 수 없었다.

지우는 걸음을 뗄 수 없었다.


두 번째 문장에는 앞선 문장의 절박함이 없다. 단지 어떠한 이유로 걸음을 뗄 수 없다는 서술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도무지’가 올 때, 지우가 걸음을 뗄 수 없는 ‘이유’는 더는 중요치 않다. 당장에 걸음을 뗄 수 없는 것, 아무리 애를 써도 한 발짝 나아가지 못 하는 그 절박한 상황 자체가 중요해진다.


이번 주 화요일과 수요일에 「모종의 도무지」라는 짧은 소설을 올렸다. 이 이야기 역시 그런 도무지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지금 내가 왜 이러는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도무지’에 놓이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으로부터, 그를 지나는 시기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앞서 말한 대로 나의 선생님께서는 ‘절대’는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말이라 하셨다. 매 순간 순간에 깊이 빠져 힘들었던 시기에는 ‘도무지’ 또한 내가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말 아닌지, 의심했었다. 그렇지만, ‘절대’라는 확언과 ‘도무지’라는 호소는 조금 다르다. 언젠가 괜찮아질 수도 있으니 도무지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되는 걸까. 아니다. 도무지의 시간엔 마음껏, 그것을 써도 된다. 힘들거나 아프다고, 얼마든지 호소해도 좋다. 가볍지 않음을 인정하되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소설의 제목을 정하면서, 어찌할 수 없는 외롭고 힘든 순간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부사 앞에 원래는 올 수 없는 관형어를 놓아 그의 수식을 받게 했다.

‘도무지’를 마치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명사인 양 두고 ‘모종의’라는 관형어로써 깊이와 폭을 한정 짓고 싶었다. 단지 어떤 종류의 도무지일 뿐이라고. 지금은 이 상태가 영원할 듯해도 이 또한 수많은 도무지 중 어떤 한 도무지일 뿐이라고.


도무지 중 도무지라니. 도무지를 너무 많이 써서 부끄러운 글이 되었다.

실은 이 글은 내가 마감으로 정해둔 목요일 오후 3시가 되기 직전에 쓰고 있다. 나는 어제 마음이 너무 힘들어 도무지 무엇도 할 수 없었기에.

조금은 가벼운 도무지를 막 지나쳤으니, 다시 또 기운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또 다른 도무지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 아니 우선은, 무어든 좀 미리미리 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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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