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콧물이 지독히도 심하게 흘러서 정말 추접스런 꼴로 생활하고 있다. 그래도 이번엔 오후 세 시에 글을 올리자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꼭 지켜야지, 하고 수요일 밤을 붙들고 있는데…. 지난주, 간신히 다 늦은 밤 글을 올리고 콧물에 너무 지쳐 아무려나, 다음 주는 사이시옷에 대해 써보자, 했건만 막상 엄두가 나지 않는다.
30회를 꽉 채워 ‘딴-생각’을 연재할 계획이긴 하지만 매주 어떤 글을 쓸지 미리 계획이 되어 있지는 않다. 솔직히 사이시옷은 되도록 쓰지 않을 작정이었다. 너무 설명적인 글이 될 것이고, 끝내 깔끔한 결론에 도달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기로 하였으니 써야지. 일단 콧물이 너무 나서 — 혹, 비위가 약하신 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양해를 구합니다…. — 녀석이 품고 있는 ‘사이시옷’을 쥐어뜯듯 쓰고 나면 감기인지 비염인지 모를 이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사이시옷은 사잇소리를 표기한 것이다. 사잇소리는 명사와 명사가 결합한 형태인 합성 명사를 발음할 때 일어나는 특수한 음운 현상으로 그 발음 양상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경음화(된소리되기) 현상
예) 문-고리[문꼬리], 물-동이[물똥이], 밤-바람[밤빠람], 강-가[강까]
■ ‘ㄴ’ 첨가 (뒤에 오는 명사의 첫소리가 ㄴ, ㅁ일 때)
예) 코+날[콘날], 이+몸[인몸]
■ ‘ㄴㄴ’ 첨가 (뒤에 오는 명사의 첫소리가 ‘이’ 모음 계열일 경우)
예) 베개+잇[베갠닏], 깨+잎[깬닙], 뒤+윷[뒨ː뉻]
단순히 생각하면, 경음화는 합성어를 이룰 때 뒤에 오는 단어의 첫소리 ‘ㄱ, ㄷ, ㅂ, ㅅ, ㅈ’가 된소리로 발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는 ‘ㄴ’ 소리가 덧나거나 ‘ㄴㄴ’ 소리가 덧나는 현상이 사잇소리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지금 나로 하여금 코로 숨쉬지 못하고 멍청이 얼굴로 입을 벌린 채 숨쉬게 하는 이 ‘코+물[콘물]’(이렇게 형태소 분석하니 정말 더럽잖아…?)도 ‘ㄴ’소리가 덧나는 사잇소리 현상의 예가 된다.
이렇게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나는 단어가 특정 조건을 충족할 때, 거기에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난다는 표시로 시옷을 표기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이시옷이다. 사이시옷 표기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시옷을 쓸 자리가 있을 것. 즉 앞말에 받침이 없을 것
위에서 경음화의 예시로 든 단어들은 울림소리(ㄴ, ㄹ, ㅁ, ㅇ) 받침 뒤의 명사 첫소리가 된소리로 발음되는 것뿐이기에 이 경우 시옷을 쓸 자리가 없다. 즉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나도 받침을 쓸 자리가 없으니 사이시옷 표기를 할 수 없다. ‘내+가→냇가[내ː까/낻ː까]’와 같은 단어는 경음화도 일어나고, 앞말 ‘내’에 받침이 없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써 ‘냇가’로 표기할 수 있다.
■ 합성어를 이루는 단어의 어종 제약
고유어끼리의 결합이거나, 고유어와 한자어의 결합인 경우에만 사이시옷을 쓸 수 있다. 두 음절의 한자어들 중에는 ‘이과(理科)’나 ‘개수(個數)’처럼 된소리로 발음되는 단어들이 많다. 그럼에도 그 단어들은 모두 한자어이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쓸 수 없다. 시옷 표기를 하여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남을 표시하는 두 음절의 한자어는 오직 다음의 여섯 개뿐이다.
예)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
이쯤 되니 사이시옷 표기가 정말 까다롭다는 생각이 든다. 사잇소리 현상은 수의적으로 일어나는 음운 현상이다. 위의 예로 든 단어들은 그래도 발음상의 이견이 거의 없지만, 발음에 혼란이 오면 맞춤법도 덩달아 혼란을 겪게 되기에 많이들 틀리게 쓰는 것도 이 사이시옷 표기이다. 당장에 떠오르는 단어는 ‘인사말’. 표준 발음이 [인사말]로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나지 않기에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많이들 [인산말]로 발음하고, 표기도 ‘인삿말’로 쓰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발음은 또 대체로 통일되게 해내면서도 왜인지 시옷을 쓰는 것을 꺼리는 단어도 있다. ‘순댓국’. 발음이 [순대꾹/순댇꾹]으로 경음화가 일어나고, ‘순대’에 시옷을 쓸 자리도 있는데다, ‘순대’, ‘국’ 모두 고유어이므로 사이시옷을 쓸 모든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순대국’이라고 쓰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혼란한 사이시옷 표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논문들이 꽤 보여 한 주간 읽어보려 시도했지만…. 그 논문을 읽을 시간에 그냥 시키는 대로 매번 더 긴장하며 쓰겠다고, 게으른 샌님마냥 다짐해 본다. 사실 나는 규칙을 좋아하니까.
정해진 대로 하면 되는 깔끔한 규칙. 내가 규칙을 좋아하는 건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변수를 줄여주는 규칙을 나는 아주 잘 따르는 사람. 그러면서도 어떤 규칙은 마치 약속처럼, 낭만적인 마음으로 지키려 들기도 한다. 맞춤법 중에서도 이렇게 까다롭고, 때로 이게 다 무언가 싶은 사이시옷 표기는 내게는 규칙보다는 약속처럼 느껴진다. 좀 엉터리 같은 사이시옷조차도, 조금 헷갈리는 건 사전을 찾아서라도 빈칸에 깔끔히 써넣거나, 혹은 너무 쓰고 싶어도 애써 비워 두면서 문장을 완성하는 일.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고 나면 실은 그런 사람이 못 되어도, 일단은 안정적이고 단정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탐미적인 면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술을, 아름다움을 제일로 여기고 즐기면서도 그림을 잘 그리지도, 악기를 제대로 연주하지도 못하는 나.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으니 이 정도면 퍽 멋진 사치를 누린다 할 수 있겠다. 아, 즐거워서 그런가. 콧물이 조금 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 우선은 숨쉬는 즐거움을 빨리 되찾고 싶은 마음이다.
참고문헌
구본관 外, 『한국어 문법 총론Ⅰ』, 집문당, 2018
한글 맞춤법 제30항 및 표준 발음법 제30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