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오류와 다정한 마음

by 윤세영


지난주 어떤 하루, 가는 곳마다 귀여운 아기들을 만났다. 병원에서는 하얀 레이스 보닛을 쓴 볼이 토실한 아기를 만났는데 눈빛이 마치 인생 2회차마냥 깊고 단호해 내게 준엄하게 이르는 것 같았지. 이모,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요…. 하고. 그 경고가 통했는지 잠시나마 그날의 할 일들을 몰두하여 해치웠지만, 늘 그렇듯 집중은 오래 유지되지 않고, 급히 사야 할 게 있어 들른 백화점에서는 동선을 잘못 생각해서 헛걸음으로 체력을 다 소진했다.


밖을 걷는 건 날씨만 쾌적하면 얼마든 걸어도 크게 지치지 않는데, 이상하게 백화점은 조금만 걸어도 에너지가 훅 떨어진다. 발바닥도 아프고 두통도 오려 한다. 겨우 들러야 할 매장에 다 들른 뒤 이제 주차장을 향하던 길, 앞에 또 귀여운 아기를 보았다. 엄마 등에 업혀 양발을 동동거리는 귀염둥이는 제 몸에서 가장 무거운 머리를 용케도 지탱하며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목을 가눌 수 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머리가 까딱까딱 움직일 때마다 힘주어 제법 잘 버텨내는 아기에게 시선을 빼앗겨 나는 또 걸음이 늦어졌다.


기특하게도 목을 가누는 아기의 몸짓이 집으로 가는 내내 자꾸만 생각이 났다. 말랑한 몸에도 힘이 생겨 곧 걷고 뛰고 하겠지. 우리는 자라남이 다른 종에 비해 느린 대신 성장의 순간이 제법 촘촘히 보이는구나. 물론 육아는 온 힘을 들여야 하는 일이니까, 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렸다고 여겨지겠지만. 어린 존재들은 어쩜 그렇게 깜찍할까. 자라면서 드러나는 어쩔 수 없는 미숙함들도 모조리 사랑스럽지. 입이 트이면서 쏟아내는 말들, 어설픈 발음과 서툰 문장들이 떠올랐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매개 모음의 잘못된 사용이 또 정말 귀여운데…. 이제 막 목을 가누는 단계가, 언어생활로 따지자면 동사의 다양한 활용을 시도하는 시기와 비슷하려나.


매개 모음(媒介母音)은 음절을 발음하는 과정에서 자음과 자음을 잇달아 발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이에 끼워 넣는 모음을 말한다. 예를 들면 “밖에서 더 맛있네”에서의 ‘으’가 대표적인 매개 모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용언이 활용할 때 자음과 자음이 만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경우에 매개 모음이 끼어들지는 않는데 유아기의 아이들은 이 부분에서 오류를 보인다.


조금만 더 놀으자(놀자).

내가 더 높으지(높지)?

갈아 입으고(입고) 가자.

나 책 읽으는(읽는) 거 좋아해.

거짓말 같으지(같지)?


위의 예들은 모두 유아기 특정 시기에만 나타나는 오류들이다. 그런데 이 오류는 단순히 잘 몰라서 틀렸다기엔 너무도 규칙적이다. 모든 자음 어간과 어미 사이에 성실히 ‘으’를 쓰는 것. 이 성실한 오류는 아이들 나름의 성장 단계에서의 규칙인 셈이다. 이러한 오류는 자라나며 자연히 교정되는데 제 나름의 적극적인 유추 과정을 통해서 규칙을 습득한다. 매개 모음 삽입 조건을 누가 정리하여 알려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터득해 제대로 말하게 되는 것. 하나하나 짚어 따로이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내다니!


친구의 첫 아이, 이제는 나보다도 키가 큰 열세 살 혁이가 내게 처음 한 말을 종종 생각한다.


“이모, 꽃이 이뽀!”


혁이는 그렇게 말하곤 쑥갓 같은 정체 모를 풀을 가져다줬지. 언어적 존재로서 자라난 아이와 그날, 그렇게 서툴게나마 이야기를 나눈 것이 너무나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썼더랬다.


언젠가 조은 시인의 「친구 엄마」라는 시를 읽고서, 이제 ‘친구 엄마’는 되기 힘들어도 ‘엄마 친구’는 되었으니까 나중에 친구의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뭐가 그리 바쁘고 화가 난다고, 마음 차겁게 지내다가 작고 귀여운 존재들 생각하며 몇 줄 글 쓰고 나니 다정하고픈 마음이 잠시나마 고개 든다. 아직까지도 채 배우지 못한 다정의 마음을 이제는 좀 살뜰히 내보고 싶다.






참고 문헌

임유종 ․ 이필영(2004), 「유아 초기의 문장 구조와 구성 요소에 관한 연구」, 國際語文 제31집




조은, 「친구 엄마」 , 『옆 발자국』 , 문학과지성 시인선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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