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하다'를 쥔 채,
말의 갈림길에서

by 윤세영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것치고는 품은 어휘가 많지 않다. 왜인지 모르겠다. 멋진 문장을 쓰고 싶은데 하는 말은 그저 단순하다. 그럼 아는 단어라도 의미를 따져 꼭 맞는 곳에 쓰자고 다짐하지만, 긴장을 쉽게 놓을 때도 많아서 지난 글을 훑다 보면 엉거주춤. 네가 왜 여기 있니, 싶은 단어가 놓인 걸 발견하는 순간도 꽤 잦다.


지난주에 의미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의미’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놓는 때는 거의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문턱이나 끝자락에 서서 말 꾸러미를 펼쳐다 찬찬히 바라보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까지를 되짚는다. 그건 그저 숨 쉬는 것만큼 절로 일어나는 일이라 딱히 고단하진 않지만 결국은 고단한 게 맞는 것이어서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당장 오늘도, 이 순간도 너무나 졸리다. 스무 시간쯤 자고 싶다. 생각을 쉬지 않으면서도 또 그렇기에 조금쯤 흐리멍덩한 머릿속. 그래도 정신을 깨워 오늘의 이야기를 하자.


한 달 전쯤의 일이다. 분명히 며칠 전 주유를 했는데 일과를 마치고 차에 타 시동을 거니 연료 경고등이 켜졌다. 센서 오류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라 도로 위에 차가 퍼질까 두려워 가장 가까운 주유소로 향했다. 운전하는 몇 분 사이, 센서 오류가 아니라면 대체 며칠 만에 기름이 왜 바닥난 것일까, 추측해 봤다. 연료 탱크에 구멍이라도 뚫려서 기름이 샌 걸까. 혹시, 누군가 차 기름을 훔친 것일까! 외국도 아닌데 설마, 하지만 가끔 그런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나친 의심이란 걸 알면서도 상상만으로도 분해서 핸들을 꼭 쥔 채 도착한 주유소에서 주유량을 ‘가득’으로 설정하고 주유를 시작하니, 그럼 그렇지, 얼마 넣지도 않았는데 더는 기름이 들어가질 않는다. 역시 단순한 센서 오류였던 것이다.


연료 게이지는 그 이후에도 한동안 정상으로 돌아오질 않았다. 멍청하게 계속 깜빡이며 주유를 재촉했다. 왓슨, — 내 차 이름이다 — 너 때문에 내가 세상을 의심했어. 물론 너 아니어도 늘 의심하며 살지만, 누가 기름을 도둑질한 줄 알았다고. 혼잣말을 중얼대다 순간, 잠시 멈칫했다. ‘도둑질하다’라는 단어가 너무하단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내 또, 남의 것을 훔친 건데,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숨을 내쉬며 ‘훔치다’‘도둑질하다’를 놓고 번갈아 만지작거렸다.


도둑질하다.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질’이 결합한 ‘도둑질’은 이미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짓’이라는 의미를 지니건만 여기에 ‘-하다’까지 결합하여 동사로 내 놓으니 누구든 그자의 행동을 이 단어로 서술한다면 본격적으로 그를 손가락질하는 기분이 든다. 여지없는 절도 행위. 그래서일까, ‘훔치다’는 두루 써도 ‘도둑질하다’는 쓰기에 조금 망설여진다.


훔치다의 의미를 찾으면 하단에 유의어로 등장하는 단어들에 ‘도둑질하다’나 ‘빼돌리다’가 있다. 훔치다의 주 의미 또한 ‘남의 물건을 남몰래 슬쩍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하다.’이니, 의미상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훔치다’는 ‘도둑질하다’에 비해 운신의 폭이 넓다. 빼앗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여 ‘마음을 훔치다’와 같은 비유적 표현으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 이렇듯 훔치다와 도둑질하다는 유의 관계이면서도 결정적인 어느 지점에서 갈라서게 된다. 이런 지점, 말의 갈림길에서 앞서 말한 대로 의미를 섬세하게 다루고자 하는 마음이 들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말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작게는 한 단어부터, 그것을 안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단지 지시적 의미를 안다고 하여 그에 대해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Nation(1990: 31)은 단어를 안다는 것에 대해 단어의 형식, 의미, 사용의 차원으로 나누어 접근한다. 단어가 어떻게 발음되는지 말하고 들을 수 있는가, 읽고 쓸 수 있는가 등은 단어의 형식에 대한 지식일 것이다. 단어의 의미에 대한 지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1)


■ 형태와 의미

이 단어의 형태는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가.

이 의미를 표현하는 데는 어떤 단어 형태를 사용할 수 있는가?

■ 개념과 지시 대상

이 개념에는 무엇이 포함되는가?

이 개념이 어떤 항목을 지시할 수 있는가?

■ 연상 관계

이 단어는 어떤 단어들을 연상시키는가?

이 단어 대신에 어떤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가?


한 문장씩 옮겨 적고 보니 한 단어의 의미와 그것이 가리키는 바, 나아가 그로 인해 떠오르는 다른 단어들과의 관계까지 제대로 짚을 수 있는 단어가 내게 얼마나 될까 싶다. 그리고 그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그를 두고 온전한 내 말이라 자부할 수도 없다. 하물며 언어생활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의미라는 것이 단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데. 문장과 글, 대화, 이야기들까지…. 이쯤에서 자꾸 잊는 사실을 다시 상기한다. 이래서 말과 말 사이에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고 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오해와 틈은 더 많은 의미를 만들고 인간의 언어는 더욱 확장되기도, 혹은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 단어들을 그저 짐작하고 헤아리며 무수히 말하고 쓴다. 유의어라는 것도, 알 수 없지만 표현하고 싶은 저마다의 마음들을 표현하려다 보니 생겨나고 쓰이고 이어져 온 것이겠지.

말의 갈림길마다 품고 있던 단어들 내려 뒀다 집어 들며 고민하는 일. 앞서 말했듯 저절로 이뤄지는 머릿속 일들에 고단해도 재미가 있으니, 애정을 가져볼까. 내 것 아닌 것만 같은 내 말들을 매만지며 덕분에 이렇게 오늘치의 수다를 떨었으니까.





1) 민병곤 外2, 『한국어 교육학 개론』, ㈜태학사, 2020, pp.27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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