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

by 윤세영


할 수 있을 때 하자. 통화 중 친구의 말이었다. 글도 쓸 수 있을 때 쓰자. 그리곤 김승옥을 말했다. 완전히 잊고 지냈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언젠가 별칭처럼, 스스로를 옥도라 이름지은 적이 있다. 김승옥과 기형도의 이름 끝 글자에서 따서 지은 것이었다. 학부 때, 학회 발표에서도 김승옥의 작품 속 여성상에 대한 글을 썼었지. 그러고는 그와 (혼자서) 이별했다. 잠시 옛 추억에 빠진 사이 친구는 마저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승옥은 한순간에 언어를 잃었잖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는 것 중 가장 지키고 싶은 게 무어가 있을까. 가장 지키고 싶은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아무래도 눈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신체의 여러 기능을 따져 보았을 때 시력이 가장 안 좋다고 여겨지는데, 대상포진도 눈으로 와서 생애 첫 입원 생활을 한 적도 있다(제발 그것이 생의 마지막 입원이었길….).


안과에선 그래도 호들갑을 목격할 일이 별로 없지만, 안경점에 가면 늘 생활하기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을 듣는다. 어릴 때부터 익숙한 질문이니 대답은 되도록 산뜻하게 한다. 아, 네. 그래도 책 읽는 것 외엔 크게 힘든 게 없습니다. 물론, 내겐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굳이 말을 더 잇진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눈’을 찾으면 다섯 개의 표제어가 나온다. 오늘의 ‘눈’은 첫 번째 단어.


눈¹

3.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힘.

4. ((‘눈으로’ 꼴로 쓰여)) 무엇을 보는 표정이나 태도.

5. 사람들의 눈길.

6. 태풍에서, 중심을 이루는 부분.


여섯 번째, 태풍의 눈은 관련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1, 2번 감각 기관으로서의 눈과 내가 잃을까 두려운 신체 기능인 시력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하여 추상적 방향으로의 의미 확장이 보인다. 단어의 의미를 살피고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관용구들이 정리되어 있다.


눈과 관련된 관용구는 다른 신체어에 비해 많아서 넓게 잡아 거의 100개는 된다. 그 중 “눈이 돌아가다.”라는 관용구는 재미가 있다. 어제 유독 눈이 돌아가다가 눈에 밟혀 관용구에 대해 찾다가, 「한국어와 프랑스어 분노 표현 비교연구」라는 논문까지 봤다. 그래,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단어. 가장 가깝고 친근해서 짧은 음절의 순우리말로 이루어진 신체어를 통해, 선명히 감각되지만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감정들을, 추상적인 개념들을 표현한다.


요사이 신경 쓸 일이 조금 더 많았다. 개인적인 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것도 많았고, 낯선 이들과 통화도 해야 했다. 다 싫어. 다 싫을 때의 잔잔히 돌아 있다가 돌연 제대로 돌아 버려서 벌컥 화를 낼 때도 있다. 어제도 그럴 뻔했다. 하지만 상대는 난생처음 통화하는 낯선 이였고, 중요치도 않은 낯선 이의 무례함 때문에 추해질 수는 없었다. 나의 분노를 잘 포장해야 했다. 격식을 갖춰 책임자에게 말했다. 찬찬한 목소리로 “내가 지금 눈이 돌게 화가 났으니 다시는 그자가 제게 연락하지 못하게 하십시오.”라는 의미를 담아.


눈이 돌아가다에 마음을 빼앗겨 어제 짧은 글을 쓰고 나니 친구가 관용어에 대해 쓰라고 성화다. 그러더니 이제 온갖 관용구를 말하기 시작하는데 급기야 "똥줄이 타다"에 이르렀다. ‘똥줄’이라니. 이걸 글로 써도 되는 거야? 아니 일단 어쩜 대장이 똥줄이 될 수 있지. 우리는 정말 해학의 민족이구나. 이렇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내게 오직 모국어 하나라는 것이 이럴 때 세상 아쉽다. 그나저나 아무래도 똥줄이 타는 건 과민성 대장증후군 상태 아닐까. 하, 어제오늘 머무는 표현마다 나를 미치게 하는구나.


가장 개인적인 경험이 문학을 통해 보편 정서로 확장된다. 내가 문학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관용어의 사용도 우리가 표현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나아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가 어제 겪은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순식간에 솟는 화의 방향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솟아오르는지, 침잠하는지 그도 아니면 회전하는지. 그런 데에까지 생각이 이르면, 지금 나의 이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화가 가라앉기도, 웃음이 나기도 한다.


내 눈으로, 손발로, 얼굴로 즉시에 표현하고 느끼며 자신의 언어적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꽤나 신비롭고 즐거운 일. 물론 당분간은 눈이 돌아가는 경험이든 똥줄이 타는 경험이든 하고 싶지 않고, 1차적 의미의 신체들도 평안하였으면 하지만. 아닌가. 쓸 수 있을 때 쓰려면 무어든 계속 자극을…. 열받는 자극도 달게 느끼며 보아라 세상아, 하고 글을 쓰면 되는 일인가.







참고 문헌


임지룡(2016), 「신체어의 의미 확장 양상과 해석」, 배달말 59호

나윤희(2013), 「한국어와 프랑스어 분노 표현 비교연구」, 프랑스문화연구, 제2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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