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겠다 │ 커피와 혼잣말

by 윤세영


무언가를 좋아해도, 가끔 진짜 좋아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드는 대상이 있다. 단박에 떠오르는 건 커피. 스무 살에 선배가 카페에 데리고 가 마시고 싶은 거 아무거나 골라, 호방하게 말하며 사줬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내가 맛본 첫 커피였다. 뭐가 뭔지 알 수도 없으니 제 딴에는 가장 값이 덜 나가는 걸 선택한 것이었다. 빨대를 타고 입으로 들어온 그 검은 액체가 던져준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지옥에서 마시는 물이 있다면 바로 이런 맛일 거야, 했었다.


무엇이 맛있는(시럽이 듬뿍 든) 커피인지 금세 알게 된 후로는 카라멜마끼아또나 — 규범 표기인 캐러멜마키아토라고 도저히 못 쓰겠다…. — 바닐라라테를 즐겨 마셨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와의 시간을 보내는 방식 중 하나였던 커피가 차츰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생명수의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원두에 따라 달라지는 미세한 맛의 차이는 사실 아직도 잘 모른다. 아메리카노를 잘 마시게 된 지도 따져 보니 몇 해 되지 않으니까. 그래도 이제는 기분과 상황에 따라 라테류를 마실지, 쓰게 마실지 달게 마실지, 계절에 따라 즐기는 종류를 달리하는 정도는 되어서 정말 피곤할 때는 카푸치노를 찾는다.


며칠 전에도 잠을 거의 못 자 정신이 멍한 가운데 카페에 들러 뜨건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켰다. 계핏가루를 듬뿍 넣어서 한 모금 마시니 절로 살겠다, 소리 나온다. 그러고 보니 살-겠-다 좀 재미있는 말이다. ‘-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말이 되니까.


- + -겠- + -다


규범 문법에서는 조사를 제외하곤 띄어 쓰는 한 덩어리를 한 단어로 본다. 그러므로 ‘살겠다’는 한 단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살다’라는 동사의 어간 ‘살-’과 선(先)어말어미 ‘-겠-’, 그리고 마지막에 위치하는 어말어미(語末語尾) ‘-다’가 결합된 활용형이다.


‘-겠-’의 문법적 위치에 대해서는 국어의 시제 문제와 관련하여 이견이 있다. ‘-겠-’을 비롯한 몇 선어말어미들을 시제 형태소로 보지 않고 한국어의 시제를 과거와 현재의 2시제로 보기도 한다. 나는 순순히 학교 문법에 따라 선어말어미라 칭하지만, 보조동사 구성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가만, 살겠다, 하고 말할 때 그것은 ‘말’이라 칭하기에도 머쓱하게 나 하나 쓰다듬는 음성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여름 더위에 종일 걷고 나서 친구들과 숙소에 둘러앉아 지금은 입도 안 댈 패트병에 든 맥주를 종이컵에 나눠 마셨을 때에도 — 아직까지도 살면서 마신 맥주 중 가장 맛있었던 맥주로 기억한다. — 여럿속에서 내뱉은 그 순간의 ‘살겠다’ 역시 청자가 달리 있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일까. 내 생각에도 ‘-겠-’은 시제 형태소로 분류하기보단 양태적 차원에서 다루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걸 세세히 분류할 깜냥은 없지만, 나를 독려하는 ‘살겠다’만 놓고 보아서는, 그 순간의 ‘-겠-’은 안심이자 만족에 가깝다.


생각해 보면 말이라는 것은 각각의 어휘적 의미, 문법적 요소들의 유기적인 결합으로 완성된다. ‘-겠-’ 역시 어떤 어휘적 환경에 놓였느냐에 따라 의미 해석이 달라진다. “내가 그곳에 가겠다.”는 ‘의지’라는 양태를 지니지만, “그가 곧 오겠다.”에서는 그것이 드러나지 않으니 말이다.


‘-겠-’에 대한 생각들을 이어가다가 얼마 전 할리데이(Halliday)의 동사성 이론을 접하게 됐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이것은 인간이 세상을 언어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로, 언어로 표현된 세계를 분류하는 방식이다. 할리데이는 각각의 표현된 언어가 구현하고 있는 과정 유형을 ‘물질적, 정신적, 관계적, 행위적, 구술적, 존재적’의 6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살겠다’는 그에 의하면 정신적 과정과 관계적 과정에 속하지 않을까 한다. 이 일종의 혼잣말은 철저히 개인적인 변화를 감지하고 표현(정신적 과정)하며 커피와 나의 관계를 생명수와 안쓰러운 인간으로 상정(관계적 과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존재 자체로만으로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지 의문을 품었을 때, 처음 집중한 건 그것의 맛이었다. 오늘의 글을 쓰며 이제 나는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커피가 내게 준 무수한 ‘살겠다’는 안도, 그것이 일순간의 나약한 손길일지라도 그 덕에 소소히 일상을 꾸렸으니까.


맛과 관계없이 좋아하는 마실거리라니. 이것이 어른의 기호(嗜好)라는 것일까. 순간 어린이처럼 으쓱한 마음이다. 언젠가는 맛과 관계없이 좋아하는 또 다른 나의 기호, 맥주에 대해 써볼까.







참고문헌


구본관 外(2018), 『한국어 문법 총론Ⅰ』, 집문당

목정수(2000), 「선어말어미의 문법적 지위 정립을 위한 형태 ․ 통사적 고찰 -{었},{겠},{더}를 중심으로-」, 언어학 제26호

최윤선(2021), 「체계기능언어학과 비판적 담화분석 : 할리데이의 동사성 이론을 중심으로」, 불어불문학연구 no.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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