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울푸드는요?
1. 2005년 고등학교 2학년쯤으로 기억한다. 방년 십팔 세 하루에 몇 끼를 먹어도 배고플 청춘.
누구나 가슴 한편에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 잡은 음식 하나쯤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바로 한솥도시락의 치킨마요다.
아무리 치킨이 맛있다고 해도 마요네즈와 함께 밥을 비벼먹는다니.
지금이야 워낙 대중적인 레시피로 자리 잡았지만 그 당시 마요네즈를 먹지 못했던 나는 치킨마요 출시 이후 2년이 지나서야 처음 접할 수 있었다.
(실제로 햄버거 가게라고는 롯데리아 밖에 없던 아주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서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를 호기롭게 주문했다가 한입 먹고 마요네즈 때문에 다 버리고 혼난 기억이 있다.)
매일 하굣길에 친구들과 또는 혼자 치킨마요를 먹는 게 일상이 되고 몇 개월씩 반복이 되니, 언제 한 번은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주인 할머니가 부모님이 혹시 안 계시냐고 물어보시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생겼다.
(탈룰라 아닌가요 할머니... 하하)
돌이켜보니 공부에는 영 흥미도 재능도 없던 내가, 그나마 집에서 30분 거리 통근 가능한 대학교에 갈 수 있었던 건 저녁 메뉴 선택에 대한 고민을 지워준 치킨 마요 덕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도련님도시락도 가끔 먹었는데 먹을 때마다 후회했다. 그냥 치킨마요 먹을걸)
2. 2015년, 그토록 가고 싶었던 모교 교직원으로 입사했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교 교직원은 신의 직장으로 손꼽힐 만큼 안정적인 직장으로 여겨진다. 꿈도 야망도, 직무 분석도 없이 막연하게 취업 준비를 하던 내게 그저 운이 좋았지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기회.
입사 후 놀란 점은 그 쟁쟁하고 대단한 사람들을 제치고 내가 수석 입사자라는 사실. 그보다 더 놀란 점은 불과 반년을 못 채우고 퇴사했다는 사실이다. 그저 적당히 행정업무만 수행할 줄 알았는데, 학생회 행사를 지원 / 기획하고 직원들의 술자리 등을 챙기는 업무를 맡게 되었고 사회초년생이자 당시 극 I였던 내가 적응하기 쉽지 않은 업무 강도와 보수적인 분위기. 지금보다 불과 10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회의실에서 연초를 태우고 이 XX 저 XX 정도의 폭언과 욕설 정도는 감수하는 직장 분위기 속에서 내가 서있을 자리는 없었다.
매콤한 사회생활을 겪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때도 저녁 메뉴는 늘 치킨마요였다. 한참이나 그늘진 내 표정을 보시고는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그저 레시피에 따라 치킨마요를 내어주시는 주인 할머니. 세월이 지나 김치는 추가 금액을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내어주시던 주인 할머니. 취업의 고통 앞에서 서 청승맞게 울고 난 다음날엔 치킨 조각을 한 덩어리 더 주셨던 주인 할머니. 2015년 하반기 당시 치킨 마요 가격은 2,700원이었다.
그해 12월,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 통보를 받고 어느덧 직장 생활 10년에 불과 한 달 앞둔 시간까지 숨 가쁘게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주인할머니가 치킨 마요와 함께 흔쾌히 내어주신 김치 한 조각, 치킨 한 조각 덕분이지 않을까.
3. 2025년, 닿을 듯 말듯한 인연의 거리를 좀처럼 좁혀가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다이어트한다고 저녁도 안 먹고 자의적으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았는데, 우리 동네 근처 지하철역 9번 출구에 반가운 가게가 생겼다.
한솥도시락. 이사 온 뒤 더 이상 주인할머니의 치킨 마요를 먹을 기회가 없었고 이제는 그것보다 맛있는 음식도 너무 많아서 시건방지게도 치킨마요 따위(?)를 먹을 일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치킨마요의 가격은 3,900원까지 올랐고 이제는 내 돈으로 치킨과 계란프라이 10개씩 추가 토핑으로 얹어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얹어 먹으면 25,900원이다. 치킨을 시켜 먹고 말지.)
오랜만에 추억을 되살려 볼 겸 네이버페이로 주문해 본다. 2분이 채 지나지 않아 픽업 알림이 울린다. 여전히 제조는 빠르고 물가 상승률 대비 저렴하고 맛도 그대로다. 이 가격에 주인할머니의 온기까지 느끼는 건 아무렴 사치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내 그리워지는 건 내 욕심일까. 주인할머니가 아직도 영업을 하실까 싶어 매장을 검색해 보니 한솥도시락 광진구청점은 더 이상 조회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내 인생의 변곡점마다 특히, 10년 주기로 치킨마요는 무수한 의미와 족적을 남겨왔다. 학창 시절, 취업 등. 2025년의 치킨 마요는 과연 내게 어떤 에피소드를 만들어 줄지 사뭇 기대감을 자아낸다.
내 소소한 장래 희망 중 하나는 환갑이 돼서도 치킨마요를 맛있게 먹고 이렇게 의미 부여하면서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것이다. 아마도 쉽게 이룰 수 있는 몇 안 되는 버킷리스트이지 싶다. 그때까지 살아만 있다면
추신 : 2015년 당시 나를 괴롭혔던 직장 상사 세 명이 있었다.
한 사람은 정치 싸움에서 밀려 좌천되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성희롱 때문에 평직원으로 강등되었고, 마지막사람은 술 때문인지 까마득하게 정신이 이상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배척당했다고 한다. 그것도 내가 퇴직하고 2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추신(2) : 교직원이었을 때 치킨마요를 좀 더 자주 먹었어야 했나? 이상 치킨마요 신봉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