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그게 최선인가요?
지금 보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한 7년 전쯤인가 보다. 여섯 번째 연애에 종지부를 찍고 허탈함인지 후련함인지 명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이따금씩 수시로 심장을 쿡쿡 찔러댔다.
마치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팬시브*에 누군가가 강제로 내 머리를 욱여넣으며, "이제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가 되지 않았니? 이 겁쟁아"라고 내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 팬시브(pensieve) : 작중 기억을 시각화해 되짚어 볼 수 있는 마법 도구.
바뀌고 싶다. 아니 바뀌어야만 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구글링을 해보니 한 블로그에 몇 가지 흥미를 자아내는 목차가 있었다.(Do not google your symptoms)
-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
- 연애 초반이 지나면 갑자기 식어버리는 남자들의 심리.
- 남자의 권태기는 남자 스스로가 잘못된 노력을 해서 올 수도 있고 여자가 너무 많이 바래서 일 수도 있다.
과거 연애를 복기해 보면, 처음에는 그녀를 너무 좋아해서 어떻게든 시간, 돈, 열정을 쏟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그녀들이 약간만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면 그동안 내가 했던 노력들이 닿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급격하게 마음이 식어버리고 이내 이별을 고했던 내 모습을 직격 하는 글 제목들.
블로그 글을 읽고 내 얘기다 싶어 바로 상담을 신청드렸다. 주 1회 50분 전화 상담, 회차마다 내 모습을 돌아보고 개선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 선생님의 상담 방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로에 기반한 상담이 아닌 철저하게 내담자를 객관화시키고 때에 따라서는 혹독하게 에고를 깎아내리는 상담에 가까웠다.
" XX는 자존감이 높은 게 아니라 자존심만 강하고, 상대방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내 기준의 노력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 같네. 이런 경우에는 보통 자기 존중감이 낮고 자기 수용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회피형 애착 유형에 해당될 수 있고 상대방과의 비교를 통해서 우월감을 느끼는 내현적 나르시시즘이 높게 여겨져"
첫 상담에서 선생님께 받은 피드백이었다. 융단팩트폭격에 뻑적지근함을 넘어 뼈마디 삭신이 욱신거린다.
약 9개월 동안 전화 / 대면 상담을 통해서 배운 내용을 여섯 가지로 요약하자면,
1. 상대방의 의견이나 말을 넘겨짚거나 의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2. 우리는 판사가 아니다.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맞고 틀림을 판단하기보다 경청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
3. 타인에게 선의를 베푼 후 그에 대한 감사를 표현할지 말지는 그 사람의 선택이다. 네 선의가 타인에게 선의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기대감은 내려놓자.
4. 불안한 사람일수록 내가 아닌 남을 통제하려 든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 밖에 없다. 타인을 바꾸려고 들지 말고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보자.
5. 남과 비교해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일시적이고 반드시 한계가 있으며 절대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
6.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나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노력을 하면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뼈가 가루가 되어 납골당에 안치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무자비하게(?) 때려주신 선생님 덕분에, 지금은 어느 누구보다도 건강한 에고를 갖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심적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아무렴 사기꾼이 사기꾼을 잘 알아본다고 하던가. 이제는 몇 마디 섞어보면 이 사람이 회피형인지, 표면적으로 화려하지만 열등감에 절어 사는 사람인지, 나르시시스트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것은 덤이다. 이쯤 되면 시쳇말로 자칭 쎄믈리에다.
내가 회피형이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도 어쩌면 그들의 고단한 삶에서 무의식 속 생존의 방식으로 회피를 선택한 것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만..
스레드나 유튜브 등 SNS를 둘러보면 회피형 & 나르시시스트는 믿고 거른다라는 말과 댓글 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이들에게 상처받은 분들에게 엑스와 재회하는 방법을 상담하는 컨설턴트 들도 있다.(아무리 수요가 있는 틈새시장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이제는 걸러지지 않을 자신이 있고 필자 또한 회피형 & 나르시시스트들은 갱생 불가하니 거르라고 말하고 싶지만,
혹시나 아직 겪어보지 않아 나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한 번은 엮여보시길 추천한다. 아마 뼈마디 정도가 아니라 멘탈이 벚꽃처럼 흩날리는 & 인류애가 세상 박살 나는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다.
회피형 & 나르시시스트들은 자기가 가진 역량과 이해의 역치를 높이는 방법이 아닌,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물질과 감정을 착취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대 다수다. 물론 정말 능력과 매력을 겸비한 경우 이 단계를 뛰어넘어 이익 추구형 소시오패스 성향을 발현해 가며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서도 말이다.
가끔 이들과 대화할 경우, 자신의 선택으로 비판받을 상황에 엮였을 때 타인 또는 배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되묻는다. 그게 정말 최선이었나요?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추신 : 그때 저를 계몽해 주신 윤 XX 선생님, 지금도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연락처는 가지고 있는데 기껏 붙여놓은 뼈가 인수분해 당할까 두려워 연락을 못 드리는 저를 이해해 주세요.(합리화)
추신(2) : 과거에 한 때 필자가 회피형이었다고 소개하면, 지인들은 내게 "네가 무슨 회피형이냐"라고 말한다. 택갈이 제대로 해서 뿌듯하다.
추신(3) : 노파심에 미리 얘기하지만, 누나 얘기 아니에요. 어제 보니 소녀시대 윤아 닮았어요. 제가 많이 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