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일어났지만, 남지 않았다

지방 창업에서 ‘실패’가 기록되지 않는 구조에 대하여

by 이니프

2023년 기준,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 지원 예산은 약 1.6조 원에 달했다.
그중 지방 창업 및 로컬크리에이터 관련 사업 비중은 약 15% 이상.

지방에서 창업은 '지원이 많아졌다'는 것과 밀접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이 예산이 투입된 수천 개의 창업 사례 중 '실패한 사업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기록한 사례는 거의 없다.

지원사업은 끝나면 보고서가 남지만,
그 안에 실패는 없다.


숫자는 있지만, 이야기와 구조는 없다


정부의 창업성과 보고서에 등장하는 지표들은 다음과 같다.

생존율 (예: 1년 후 생존율 64.9%)

고용 창출 수 (예: 청년 창업기업 1곳당 평균 1.9명 고용)

매출 성장률 (예: 초기 기업 대비 2년 차 매출 1.5배 상승)


하지만 여기엔 빠진 것이 있다.
그 기업이 어떤 이유로 무너졌는지, 혹은 무엇을 반복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는 지방 창업 생태계의 가장 큰 손실이다.
왜냐하면 지방뿐만 아니라 창업은 대부분 성공보다는 실패를 먼저 겪을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지방 창업에서 실패가 더 빈번한 구조적 이유


1. 시장 접근성의 한계

피드백 주기가 길다.

실험할 수 있는 소비자 풀이 작다.

2. 네트워크와 관계 기반 실행 구조

B2C보다는 커뮤니티 중심 실행이 많아 실패 후 다시 시작할 ‘사회적 거리’가 좁다.

3. 실패 공유의 인프라 부재

IR보다 훨씬 더 중요한 회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망했는가”를 써줄 공간도, 구조도 없다.


실패를 기록하지 않는 3가지 정책적 문제


1. 성과 중심의 문서 언어

지원사업의 평가 기준은 여전히 다음과 같다

매출

고용

투자유치

사업화 성공 여부

여기에 관계 유지, 실험 반복률, 실패 회고 수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평가 기준은 창업자가 실패를 드러낼 유인을 없앤다.

2. 파일럿 실험이 아닌 완성형 결과 중심

실험을 반복하며 배우는 구조보다는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을 요구

실패 가능한 초안을 설계하기 어렵고, 설계 자체가 곧 보고서가 되는 구조

3. 공유와 회고의 시스템이 없다

실패를 구조적으로 분해해서 회고하는 워크숍이나 사례 데이터베이스는 전무

결과적으로 같은 지역, 같은 대상, 같은 서비스가 해마다 이름만 바꿔 재시도된다

→ 구조적 학습이 일어나지 않음


실패는 설계될 수 있고, 기록되어야 한다


실패는 무작위적일 수 있지만, 실패의 구조를 기록하면 실험은 설계 가능해진다.

실패 기록이 쌓이면,

반복 가능한 패턴과 조건을 추출할 수 있고

후속 창업자는 ‘하지 않아야 할 것’을 빠르게 선별할 수 있으며

정책 설계자는 성공률이 아닌 실험률을 기반으로 설계할 수 있다.


무엇이 필요할까 : 실패가 남는 구조


1. 실패 회고가 성과로 인정되는 정책 설계

회고 보고서, 사용자 분석, 실행 실험 데이터 등을 사업성과 항목으로 인정

2. 지방 창업 실패 데이터베이스 구축

지역별・업종별 실패 사례 오픈 아카이브

실패한 사업 아이템, 방식, 타이밍, 타깃 정보 기록

3. 공유 회고 세션의 정례화

IR 데모데이뿐 아니라, '실패 회고데이'를 통한 창업자 간 학습 가능성 확대

정책 담당자, 후속 팀, 시민 사용자와의 대화 구조 마련


실패는 계속된다. 다만, 남느냐 사라지느냐의 차이다


지방에서의 창업은 어렵다. 그리고 대부분은 실패한다.

문제는 그 실패가 사라진다는 데에 있다. 실패가 사라지면, 실험은 반복되지 않고 지원은 다시 같은 방식으로 설계되며 창업자는 매년 같은 방식으로 지쳐간다.


이제는 실패가 설계되고, 기록되고, 공유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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