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산다는 것, 일한다는 것

기술이 있어도, 기회가 없다면

by 이니프

‘지방 소멸’이라는 말이 흔해졌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4년 기준 지방소멸위험지역은 전체 228개 기초지자체 중 121곳(53%)에 달한다. 이 중 다수는 20~30대 청년 유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청년 인구 유출은 곧 지역 경제의 기반이 사라지는 문제로 이어진다.


통계청 ‘지역이동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수도권으로 전입한 20대 청년은 전체의 62.7%.
이 중 취업, 창업, 교육 등의 경제적 이유가 75% 이상을 차지한다.
즉, 지방에서는 일하고 배우고 창업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지방에 '일'이 없는 게 아니라, '기회'가 없다


지방에는 단순히 '직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일과 성장 기회가 부족하다.
2023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청년 고용률은

서울특별시: 50.6%

전남: 41.9%, 경북: 42.8%

로 격차가 크다.

더 큰 문제는 ‘기술 기반 일자리’의 격차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지역별 R&D 투자 현황을 보면
2023년 전체 국가연구개발비의 75.1%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다.
비수도권 전체를 합쳐도 25%에 불과하며, 그중에서도 대전과 대구 등 일부 도시 중심이다.

지방 청년이 소프트웨어 개발, AI, 헬스케어, 에듀테크, 에너지 전환 같은 분야의 창업을 구상하더라도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지원체계나 네트워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다.


벤처 생태계, 왜 지방은 항상 늦는가?


지방 청년 창업 중 대부분은 소상공업 또는 자영업 형태다.
2023년 기준 지방청년 창업자의 84.3%가 식음료, 체험관광, 지역상품 유통 등 서비스업군에 집중돼 있다.

반면 기술 기반 창업(Tech-based Startup)의 비율은 7%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지방 대학이나 지역 혁신기관의 직접 연결 없이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다.

그 원인은 명확하다.


인큐베이팅 시스템의 부재

지역 내 메이커스페이스, 디지털 팹랩, R&D 허브가 전국적으로 불균형하게 분포.

예비 창업자용 MVP 제작, 프로토타이핑 설계, 특허 컨설팅에 접근하기 어렵다.

기술 인력의 수도권 편중

전국의 ICT 전공자 60% 이상이 졸업 직후 수도권 기업으로 이동.

팀을 꾸릴 수 없으니 기술 기반 창업 자체가 어렵다.

시장 접근성 한계

수도권 대비 평균 IR 기회는 1/4 이하,

지역 엑셀러레이터 중 후속투자 연계율 10% 미만.


지방 청년에게 기술은 ‘그림의 떡’일까?


기술 기반 창업은 더 이상 특정 인재나 기업만의 영역이 아니다.
노코드 툴, 오픈소스 기반 프레임워크, 마이크로 SaaS 등은 소규모 팀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했다. 문제는 이런 도구들조차 접해볼 기회가 없다는 데 있다.

‘피그마’도, ‘앱시트’도, ‘깃허브’도 모르는 상태에서 로컬 자원을 활용한 브랜딩 창업만 반복되는 구조는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자립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기술은 이제 접근성의 문제다.
누가 어떻게 그것을 전달하고 실험할 수 있게 해 주느냐가 관건이다.


창업이 아니라, 실험이 필요하다


지방에서 창업을 시작하는 청년은 사업모델 이전에 실험기회가 필요하다.

아이디어를 MVP로 바꾸고 현장에서 빠르게 피드백을 얻으며 실패하더라도 소득, 경험, 네트워크 중 무언가는 남기는 구조. 이런 창업이 아니라면, 오히려 청년을 소모하게 된다.


기술 기반 아이템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단순히 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쌓고 해석할 줄 알아야 하며 마케팅 이전에 사용자를 알아보는 감각이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은, 혼자 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창업가’ 이전에 ‘실험가’가 되어야 한다.


지방에서 살아도, 일할 수 있다

청년이 지방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더는 서울살이가 감정적으로 버거워졌거나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의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그 선택을 이상한 선택이 아니게 만드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단기 수익성보다는 실험 가능성, 하향이동이 아닌 새로운 기회로서의 지방, 그렇게 시작된 창업만이 지역도, 개인도 함께 살릴 수 있다.


지방은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기술이 있어도 떠나야 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이제는 실험을 설계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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