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지원의 득과 실
지방에서 창업은 시장을 만드는 일임과 동시에 고용과 정착으로 이어지는 순환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는 정부 지원 정책이 더해지는 경우가 있다.
지원은 많다.
거의 ‘지원 없이는 시작할 수 어렵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다.
실제로 지방 소상공인의 68%가 정부지원으로 초기 자금을 확보했고, 청년 창업의 10건 중 7건 이상이 공공지원 사업으로 시작된다. 그만큼 지방 창업의 생태계는 행정이 설계한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이 구조가 정말 지방의 창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일정한 궤도를 그린 뒤 소진되는 순환 속에서 늘 ‘다시 시작해야 하는 창업’만 남겨두는가?
지원사업은 대부분 1년 단위다. 예산은 회계 연도 기준으로 설정되고, 사업의 주제는 매년 달라지며 담당자는 순환 보직이다. 이는 지방 창업자가 자신의 사업을 설계할 때 매년 다른 판에서 다시 평가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측 가능성은 낮고, 연속성은 줄어든다. 사업을 하려는 게 아니라 ‘선정되기 위한 설계’를 반복해야 한다.
게다가 정부의 정책 변화는 이 흐름에 큰 영향을 준다.
정권 교체 시 사업 방향이 통째로 바뀌거나 폐지되는 경우도 많다
지역 기반 실험이 국가 단위 평가 체계와 충돌할 때도 자주 발생한다
예산이 줄면 가장 먼저 줄어드는 항목은 지방 소규모 지원사업이다
결국 정책이 바뀌면 지원은 끊기고, 지원이 끊기면 사업도 종료된다.
이건 창업이 아니라, 행정에 기대 탄 기획일 뿐이다.
사업의 지속성, 창업자의 정착율, 수익 지표의 꾸준함, 현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용지표
이것을 살펴보자.
사업의 목적에 따라 KPI 설정을 다르게 할 수 있겠지만, 지방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지원을 한다면 그 지원에 따른 결과를 판단하는 데이터와 해석하는 방식도 다양화 할 필요가 있다.
지방 창업이 정부 지원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 설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군산에서 SK와 언더독스가 함께 만든 창업 프로그램이 보여준 적이 있다.
군산은 조선소 폐쇄 이후 경제가 급격히 침체되면서, 지역 회복을 위한 여러 방식이 논의되던 도시였다.
당시 SK는 지역 기반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언더독스와 함께 3년짜리 장기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이 실험이 주목할 만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책 중심이 아니라 기업 자본 기반의 설계
매년 새로운 사람을 뽑는 방식이 아니라 한 번 선발된 팀을 깊게 성장시키는 모델이었다는 점
단순한 교육이나 시드머니 제공이 아니라, 선발된 팀들이 군산 안에서 실제 사업을 테스트하고, 실패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과정을 함께 설계할 수 있도록
현장 기반의 실행 – 피드백 – 전환 구조가 반복되었다.
지역 자원 활용, 공동 브랜드, 관계 기반 유통 실험, 지역 고객에 대한 반응 조사까지 비즈니스 실험의 단위가 실제 생활권 안에서 작동한 것도 차별점이었다. 무엇보다 행정 주도가 아닌 민간(기업)의 책임 구조였기에, 담당자의 순환 없이 일관된 기획 관점과 실행자와의 신뢰 관계가 유지되었다는 점이 크다.
이 실험은 단순히 ‘지원을 잘한 사례’가 아니라, 지원이 창업자의 실험 감각을 제한하지 않고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방 창업 생태계 설계의 중요한 힌트를 남겼다.
자금 투입의 지속성이 담보되는 구조
유통/고객 접점이 로컬에 있고, 반복 및 확장이 가능한 모델
지자체에 및 정부에 판매 가능한 모델
실패 후에도 재시작이 가능한 ‘저위험 설계’
정책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속적 수익성
정책은 사라질 수 있다. 예산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은 거기 있고, 사람들은 남는다.
지방 창업은 기획보다 생존이고, 성장보다 정착이다.
“지원 없이도 반복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원은 보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