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다. 이렇게 가도 되는 건지를 말이다. 하지만, 삶이 그래왔던 것 같다. 박 터지게 경쟁하여 쟁취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필요를 읽어내고 결핍된 곳에 가서 복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성취의 한계일 수도 있는데 늘 정점에서 한발자국 비껴나 있었다. 그 삐딱함이 지금의 상태를 유지해왔던 것 같기도 하다. 변방을 찾아다니는 습, 아웃사이더처럼 빙빙 돌아야 안온했던 마음들이 체화됐다. 혼자 우뚝 서는 것보다 두루두루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왜 그리로 이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산면으로, 이웃 영동으로 활동 장소를 넓힌 것은 영역의 확장이라기보다 변방으로의 이동이라는 측면이 컸을 것이다. 청소년문화공간을 만들고, 풀뿌리 언론을 하나 더 만든다는 것이 사실 돈이 되는 사업은 아니라는 것은 아마 삼척동자도 다 알 것이다. 필요한 일이라는 기반하에 하고 싶었던 일이었으니 마음이 그리 꿈틀거렸던 것 같다. 35년 역사의 옥천신문의 전통과 역사, 22년 간의 지역신문 경험, 그리고 수년 간의 공동체활동 등이 고난의 행군을 조금 더 압축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살짝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첫 길을 내고, 처음 문을 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혹독하게 느끼고 있다. 요즘 들어 1989년 창간 당시가 아닌 어느 정도 자리잡혔던 2002년 옥천신문에 합류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고, 10여 년간 고생을 했던 선배들에게 새삼 경외심이 느껴지고 있다. 역시 겪어봐야 느끼는 것들이 있다. 충분히 학습된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 없이 할 것이라는 자신감은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낯선 땅에서 좌충우돌하며 부대끼며 버티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그래도 배우고 있는 것들이 많기에 버텨내고 있다. 주위 사람들의 온정으로 살아내고 있다. 엊그제도 한 분이 주간영동 신문사 게시판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신문을 읽고 계셨다. 지금까지 영동에는 군수 비판하는 펼침막도 지역광고사에서 안 만들어주고, 기사도 안 실어줘 돈을 내고 무가지에 광고하는 것이 유일한 저항의 수단이었는데 주간영동이 만들어져 참 고맙다고, 그리고 구독의사를 내비쳤다. 이런 말 한줌이 다시 일어설 힘을 솟게 한다. 한주 한 주 지역의제 빠뜨리지 않고 힘있게 써내려가는 옥천신문 구성원들이 있기에 또 가능했던 일이다. 위기이지 않았던 적이 한번도 없다. 한 달 한 달 매순간이 위기이고 구성원들의 모아진 마음으로 헤쳐왔다. 청산면에 만들어진 문화공간 청산별곡은 올해부터 밤 8시까지 청소년들이 모여 있을 수 있는 면내 유일한 공간이 되었다. 옥천군에서 직영하는 청산청소년문화의집이 올해부터 밤 9시까지 운영하던 것을 저녁 6시까지로 폐문을 앞당겼기 때문이다. 사실 예고된 수순이었다. 집까지 데려다주는 이동수단이 없는데 문만 연다고 멀리 사는 아이들이 있을리 만무하다. 청산별곡에 모이는 이유는 스스로 저녁을 해먹을 수 있고 끝나면 집까지 데려다 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공공이 철수한 이후에 별곡에서 담당해야 할 것들이 커졌다. 학원 조차 하나 없는 청산에서 기초학력의 배움이 부족한 친구들에게 화요일, 수요일에는 밤 9시까지 배움의 공간이 되고 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당초 계획한 것들이 아니었다. 끈을 놓지 않고 부대끼다 보니 필요를 읽어내고 그 필요를 충족시켜 가면서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공공의 정책이 철수하는 순간에 우리는 나름의 대책을 강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동군에서 내어놓은 제안하는 총선 공약 중에 영동향토민속사료관 설치가 포함됐다. 영동문학관을 설치하면서 감쪽같이 사라진 향토민속사료관에 대한 비판 보도를 단독으로 했고, 이런 목소리들이 짧은 시간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동안 투명하게 휘발되어 갔던 목소리들이 주간영동이라는 풀뿌리 공론장 위에 차곡차곡 개어지고 있다. 언제든 꺼내볼 수 있고 같이 공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아카이빙 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변화들은 더디지만 희망적이다. 둑이 터지지 않도록 버팀목을 하나 둘 얹는 기분이다. 민주주의를 체감하는 것이 선거와 가끔 있는 촛불 시위여서는 곤란하다고 말해왔다. 그것은 민주주의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민주주의는 숨쉬는 공기와 같아야 하고, 삼시세끼 먹는 밥과 같아야 하고, 목 마르면 언제든 마실 수 있는 물과 같아야 한다고 강변해왔다. 주간영동에 제보의 물꼬가 터져 넘실대고 있고, 청산별곡의 청소년들도 스스로 목소리를 조금씩 내고 있다. 활동은 끝이 없다. 숨쉬고 움직이는 것은 일상이다. 그런 다짐을 해왔다. 말이 물처럼 낮고 후미진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물꼬를 틀거라고, 언제든 와서 목을 축일 수 있는 말의 우물이 될 거라고, 배고프면 언제든 와서 먹을 수 있는 글의 곳간을 만들어 보겠다고. 우리의 관계를 지켜주고 공론을 되살려주는 말과 글을 더 이상 자본과 권력에 빼앗기지 않겠다고. ‘민’들레 영토를 확장하고, ‘진’달래 공론을 지키겠다고 말이다. 지역과 농촌의 삶은 여전히 소멸되고 지워지고 있는 가운데 삶은 곤궁하고 궁핍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살아남을 거라고 말하면서 같이 마음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