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는 다양한 관계 자원이 필요하다
지역간의 관계, 학교와 지역의 만남, 다양한 세대간 교류
관계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작은 것들의 연대를 시작하자
청소년이 학교에 가는 이유는 사실 맛있는 급식과 친구들 때문이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또래 친구들은 밥과 같다. 놀고 놀아도 이야기하고 이야기해도 여전히 고프고 반가운 게 관계이다. 그것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힘과 같다. 그런데 사실 잘 몰랐다. 시골 지역의 친구들에게 새로운 만남에 대한 갈구가 그렇게 깊은 것인지를 말이다. 적어도 면 지역에 살면 관계가 매우 협소하다. 왜냐하면 또래 친구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전교생이 20명 내외의 초등학교에서는 6년 남짓 많게는 5-6명, 적게는 2-3명의 또래친구가 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그 친구들과 한번 틀어지면 무려 12년 동안 힘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중, 고등학교에 친구들이 눈곱만큼 늘어나긴 하지만, 읍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지 않는 이상 한 학년 한 반 5-10명 내외의 친구들은 거의 12년 동안 붙어 다닐 수밖에 없다. 양적으로 적은 관계에서 친한 친구와 다투거나 할 때 다른 친구와 잠시 교류를 하는 완충적인 시공간을 갖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혼자 삭히면서 고독의 시간을 갖거나 어쩔 수 없이 다시 친해져야 하는 강제성은 원튼 원치 않튼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부대끼는 관계에서도 쉼이 필요한데 작은 인간관계에서는 폐쇄성으로 인해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에도 숨구멍이 필요하다. 드문드문 있는 버스시간표, 일찍 끊기는 야속한 버스 때문에 다른 친구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다. 그걸 못 견디는 친구들은 어떻게든 자주 읍내에 나가서 친구들을 자유롭게 사귀기도 한다. 문득 일상적인 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이 사는 다른 동네를 서로 보여준다면 그 관계가 채워지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얼마 전 옥천군 청산면에 사는 친구들을 차에 싣고 영동군 황간면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차로 20분 정도 가면 되는데 버스로 가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불쑥 황간면의 청소년문화의집을 찾아가서 청산면의 청소년문화의집과 비교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황간청소년문화의집에는 홈짐세트도 있고 포켓볼 대도 있고, 코인노래방도 있고, 유튜브 촬영 스튜디오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생 네컷 사진기도 들어온다고 하니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다 청산면 청소년문화의집에는 낡았거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황간농협에 갔더니 저녁 8시에 문을 닫고, 로컬푸드 매장이 따로 있었다. 청산농협은 저녁 6시에 닫고 로컬푸드 매장도 없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지역 주민들의 농산물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새너울중학교를 방문했는데 마침 아는 친구가 있었는지 한참 반갑게 이야기를 했다. 저녁인데 국악의 고장답게 국악관현악단이 열심히 연주 연습을 하고 있었다. 굳이 도시를 가지 않아도 같은 시골이라는 동질성과 차이점을 발견하면서 아이들은 생기를 찾은 듯 했다. 옥천 인근 금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금산간디학교에서 파생된 들락날락협동조합을 방문하고 취재하면서 생긴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수도 없이 연결됐다.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상호 견학도 오고, 옥천으로 한 달, 때론 2주 인턴쉽을 보내기도 했다. 사진을 잘 찍고 동네 배구 동아리에 관심이 많던 지영이도 기억이 나고, 영상 찍는 것과 음악에 애정을 보였던 예준이도 기억이 난다. 다 금산 간디학교에서 옥천으로 인턴을 온 친구들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금산간디고등학교 1,2학년이 청산면의 복합문화공간인 청산별곡으로 이야기를 들으러 단체로 오기도 했다. 이런 만남이 잦아지면서 금산간디학교 박성연 선생에게 우리 금산과 옥천의 관계 프로젝트로 ‘금지옥엽’ 혹은 ‘금이야 옥이야’를 만들면 어떨까요? 라고 한번 제안한 적이 있었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만남이 잦고 관계가 만들어지면 언젠가는 그런 프로젝트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시골 아이들은 대부분 인근 도시로 버스를 타고 주말마다 탈출을 하는 경우가 잦다. 도시의 자본이 화려한 매무새를 갖추고 스폰지처럼 쫙쫙 빨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비단 청소년들뿐이 아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옥천이나 금산 같은 경우에는 대전으로, 보은 같은 경우에는 청주로, 영동 같은 경우에는 김천이나 대전으로 그렇게 빨려 들어간다. 바로 인접지역은 교통망도 그렇고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더 ‘작은 것들의 연대’는 필요한지 모르겠다. 고만고만한 시골지역끼리 서로 의존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친구라는 선물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같은 시골에 산다는 동질감과 각 지역의 다양성이 그들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해줄 것 같다. 한 마디로 지근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관계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리라. 인근 지역과의 교류도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군내 읍면간 교류도 활발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냥 교류하기 뭣 하니까 스포츠로 우정을 쌓는 방법에 대해 실제 한 친구가 제안해 준 것도 있다. 그 친구 말을 인용해보자. ‘영동의 좋은 점은 읍면간 청소년 교류가 활발하다는 거에요. 각 읍면 학교별 풋살대회를 한다든가, 배드민턴대회, 농구대회도 자주 하거든요. 1년 내내 다양한 종목으로 리그전을 하면 다른 지역의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을 거 같아요’
지속가능한 교류 관계를 위하여
인근 대도시 중심의 일극, 일방향 통행이 아닌 비슷한 지역끼리 서로의 다양한 문화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다자간 쌍방향 통행이 필요하다. 일상적인 만남이 가능하도록 교통망을 확충하는 것도 청소년들 관계의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학교간 협동 교육 및 공동화 교육과정 속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방학 동안 만이라도 친구네 집에서 숙박을 하면서 그 지역을 구경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면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숨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학교 끝나면 스쿨버스 때문에, 버스 시간 때문에 강제로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야하고, 집에 가면 사실 또래 친구들을 만나기 어렵다. 상주의 경계인 청산면 명티리에 사는 승준이도 그렇고, 보은의 경계인 청산면 대성리에 사는 은정이도 그렇다. 경계에 산다는 것은 다양한 양쪽의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선처럼 명확하게 그어놓은 행정구역은 이를 방해한다. 서로 오갈 수 있는 문을 벽처럼 쌓아놓고 있다. 인근 지역 뿐 아니라 멀리 제주도나 완도 등 바다가 있는 섬 지역 학생들과의 교류는 어떠한가. 영동 상촌 갈마루지역아동센터 학생들은 해마다 감자농사를 지으면서 그것을 판 것을 노잣돈으로 만들어 격년으로 제주도나 해외를 가곤 한다. 교류 활동까지는 아니지만, 새로운 곳에 간다는 것은 폐쇄된 지역에 있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주마간산식 관광이 아니라 스스로를 성찰하는 여행이었으면 좋겠고, 그런 여행이 자주 갈 수 있는 일상이었으면 좋겠다. 작은 학교의 학생 수는 ‘작은 것들이 스스로 연대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인근 지역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자주 오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같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각종 스포츠리그를 통해 일상적으로 만나는 것도 좋고, 방학동안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해도 좋을 것이다. 교환학생처럼 중, 고등학교 한 학기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서로 교류를 통해 활용한다면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길 수 있다. 초,중,고등학교 청소년기는 정말 친구와 관계가 중요한 시점이다. 학교 공부보다 관계에서 배우는 것들이 더 클 수 있다. 행정구역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대도시 자본중심의 일방향 통행을 경계하고, 지역농촌의 관계의 협소성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는 작은 것들의 연대를 통해 이 모든 것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지역 농촌에 산다는 동질감은 기본 베이스로 공감능력을 다질 것이고, 다른 문화, 다른 체계 등은 스스로에게 많은 자극이 될 것이다.
금지옥엽, 금이야 옥이야를 시작하자
정말 지역 농촌의 아이들은 전부 금지옥엽같은 존재들이다. 금이야 옥이야처럼 키워내야 한다. 그럴려면 그들은 다양한 관계를 통해 만나야 한다. 또래친구들도 좋지만, 지역내 다양한 세대들과 만나야 한다. 하지만, 학교의 담장은 해마다 높아지고 지역안의 또 다른 섬이 되고 있다. 학교 축제는 예전에는 온 마을의 축제이고 알리고 같이 즐겼지만, 지금은 그냥 조용히 소리소문없이 자체적으로 그냥 소진하고 있다. 학교는 담장을 허물고 지역과 뜨겁게 만나야 하며 지역속의 학교로 거듭나야 한다. 청소년들은 지역내 다양한 세대와 입체적으로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청산초의 세대공감, 지학(지역학교)협력 프로젝트 짝짜꿍 텃밭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청산초 이기분 교장이 사택 텃밭이 잘 활용이 안 돼 시멘트를 바르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 필자가 이 프로젝트를 적극 제안을 했다. 그랬더니 흔쾌히 응하여 청산노이복지관의 할머니 10명을 조직해냈고, 청산초 1-4학년 학생들과 짝궁을 맺어줬다. 청소년문화의집은 교육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해줬고 학교에서는 사택 텃밭과 아울러 울타리를 문으로 만들었고 수도를 설치해줬다. 벽을 문으로 만든 것이다. 10명의 할머니 텃밭 기술자들은 순식간에 척박한 토양을 옥토로 만들었고 손주같은 아이들과 같이 농사를 짓는다는 마음에 벌써부터 설레이고 있다. 아이들만의 텃밭으로 만들었다면 벌써 방치되어 망가졌을 것이다. 선생님들의 품만 늘어났을 것이다. 영동 상촌 산울림협동조합 김희정 이사장이 기꺼이 퍼머컬쳐의 지도 교사가 되기로 하고, 능숙한 할머니 농부들을 유기농으로 다양한 작물로 지도를 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텃밭으로 기쁘게 출근하고, 아이들은 밥을 먹고 산책하며 할머니들과 만난다. 같이 풀도 뽑고, 작물의 이름도 서로 공유하며 사진도 찍는다. 그 아이가 지역의 아이로 커갈 수 있는, 할머니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사는 동안 또래친구들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동네 형과 누나, 언니도 필요하고, 삼촌, 이모라 부를 수 있는 관계도, 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다양한 관계가 필요하다.
굳게 문을 닫아 건 학교의 빗장을 열고, 지역 속의 학교로 거듭나지 않으면 이 많은 관계자원을 만날 수 없다. 주변 자원을 십분 활용하여 텅텅 빈 게이트볼 구장에 가서 할아버지들과 게이트볼을 칠수도 있고 다목적회관에 가서 아코디언도 배울 수 있다. 면사무소 2층에서 지역 어른들과 같이 치는 풍물은 어떠한가. 지근거리에서 우리는 닫힌 관계로 서로의 보물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각자 품고 있는 옥과 금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보는 게 교육이다. 각자 어딘가에 꽃혀 있는 금으로 된 가지와 옥으로 된 잎사귀를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금지옥엽처럼 느낄 수 있다. 금이야 옥이야처럼 귀중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학교의 주인은 지역사회여야 한다. 교원들은 이동하고, 학생들은 졸업하지만, 지역사회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태초에 지역사회에서 학교를 만들었지만, 이제 학교는 지역사회와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다시 본질로 다시 기본으로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교류의 다각화가 작은 학교의 살길
학생 수가 적은 작은 학교의 장점은 서로의 존재를 쉽게 인식하고 그 이름을 불러준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 장점은 시간이 가면 금방 시들해지고 확장되지 못한다. 다양한 관계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작은 학교는 필사적으로 절실하게 관계 자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작은 학교의 연대와 일상적인 교류가 그래서 필요하다. 학교와 지역간의 교류도 마찬가지다. 또래 친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대와 어떻게 관계맺기를 하고 성장할 지는 매우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과정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작은 학교의 긍정적인 부분만 말하는 것은 식상하다. 우리 작은 것들은 이제 연대의 나래를 펴고 연결되어야 한다. 서울이 인근 김포까지 손을 대며 서울 왕국으로 확장하려는 이 시기에, 각 거점도시들이 서울을 본 받아 메가시티로 커지려고 하는 숨막히는 이 시기에 우리는 작은 것들의 연대로 작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연결되면 단단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 보여줬으면 좋겠다. 광역행정구역이 다른 금산과 옥천의 연대로 금지옥엽이란 말을 구상했지만, 각 지역간 금지옥엽같은 관계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학교와 지역간의교류가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다시 한번 변화는 변방에서 시작된다. 경계에서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