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에서 느껴지는 감흥이 있다. 모기장 문 틈 사이로 옷핀을 꽂아놓고 가위로 마치 삐뚤빼뚤 썰어낸 종이에 틀린 맞춤법도 정감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밭 갈던 할아버지가 얼른 달려와서 받을 밑반찬이었다. 매주 목요일에 있던 노란색 목욕차도 없었다. 앉아서 반기던 할머니도, 대신 문을 열어주던 요양보호사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서 문 앞에 당도한 순간 하얀색 종이에 쓴 메시지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 병원 약 타러 갑이다. 선생님 반찬 안에다 넣주세요. 미안합니다’ 청산면 판수리에서 목요일 아침 반짝 햇살이 비추는데 그 순간 정적이 잠깐 흘렀다. 문도 활짝 열어놓은 그 집안에서 반가운 기척이 스쳐갔다. 판수리를 들르고 나서 신매리로 향했는데 할머니가 밭둑에 걸터 앉아 들깨모종을 한참 바라보고 계셨다. 힘에 부치신지 숨을 가쁘게 쉬셨지만, 밭둑을 정말 정갈하게 다듬어 놓았다. 들깨모종은 씨앗을 심어 스스로 키우신 거라고 했다. 몸이 부서지라 아프지만, 농사는 포기하지 못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어떤 결기가 느껴졌다. 목요일 밑반찬 배달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사탕 한 주먹, 두유 하나 꼭 쥐어 주시는 할머니의 손길이 너무 좋다. 스트레스로 엉겨진 마음이 살살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