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전주 통합에 반대한다
#1.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지름길을 찾게 되어 있다. 조금만 가까운 길이면 그리로 향한다. 애써 돌아가야 하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가까운 길 놓아두고 돌아가야 한다면 누구나 불합리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한다. 그걸 넘어서는 경우는 관계성이 개입될 때이다. 관계가 만들어지면 모든 비합리적인 것도 이해가 가능해지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 아는 사람 집이 있다면 충분히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친밀한 사이일수록 부러 돌아가기도 한다. 그것은 이성보다는 감정의 개입으로 때론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 안부를 묻고 마음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면 정서적 심리적 거리는 짧아지고 축척된다. 이는 물리적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익숙해지고 특별해지는 장소성과 관계성이 축적되다보면 물리적거리쯤이야 아무 것도 아닌게 될 수 있다. 이는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게도 만든다.
#2.옥천에 군북면 막지리란 곳이 있다. 행정구역상 군북면이긴 하지만, 대청댐이 생겨난 이후로 군북면으로 가는 길이 수몰되면서 외딴 섬처럼 존재하는 곳이 되었다. 사실 거리상으로 치자면 행정구역을 안내면으로 하는 것이 면사무소 가기도 훨씬 수월할 터이지만, 마을은 계속 군북면을 고집하고 있다. 막지리에서 군북면사무소를 가려면 배를 타거나 차로 40분을 가야 한다. 안내면은 20분 밖에 걸리지 않지만, 군북면에 남아있기를 원한다. 가려면 또한 예전에는 안내면 소속이라는 역사성도 있지만, 최근 수십년 군북면에 속해 있기 때문에 행정적인 측면과 관계성으로 인해 안내면으로 옮기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군북면 소정리와 국원리도 사실상 옥천읍이 훨씬 가깝다. 옥천읍은 불과 10분 남짓이지만, 군북면사무소는 20분 남짓 걸린다. 하지만, 이들 마을이 읍면 소속을 옮기려고 하지 않은 이유는 관계성이다. 면민화합대회니, 이장협의회니, 군북면 행사를 치르다보면 이런저런 얽히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익숙해진다. 정서적 거리는 물리적 거리를 압도한다. 물리적 거리는 개발로 인해 짧게 단축할수도 있지만, 정서적 거리는 쉽게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
#3.탁상에서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보면 생활권도 같고 물리적 거리가 가까우니 통합하자는 이야기가 쉽게 나올 수 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통합이란 그리 자로 쭉 긋고 그냥 선을 지워버린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내려온 관계성과 그리고 자발적, 자주적, 자치적인 관계와 협동과 연대했던 경험 등 무형의 자원을 깡그리 무시하고 가까우니 통합하자는 말처럼 무식한 말들이 없다. 때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땅위에 솟아있는 나무만큼 이를 지탱하고 있는 땅속에 있는 뿌랭이도 봐야 하는 법이다. 물리적 거리가 어떻고, 생활권이 어떻고 통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어떻고 하는 말들만 계속 읊어댄다면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원들을 존중하지 않고 점령하고 지배하려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그러고서는 절대 마음을 얻어낼 수 없다.
#4.더 잘게 쪼개져야 자치권이 살아나고, 자주성과 자율성도 그만큼 늘어날 수 있다. 체계는 늘 관계를 지배하려 해왔고, 체제는 늘 생활세계를 갉아먹고 성장했다. 청주-청원 통합이, 마산-창원-진해 통합이, 제주 특별자치도 통합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통합의 당위론을 펼치는데 통합하고서 살림살이는 나아지셨는가. 다들 거짓부렁이다. 그래서 완주-전주 통합에 반대한다. 소멸로 겁박하고 통합으로 출구를 마련하는 체제의 압박은 농촌을 없애려는 뻘짓이다. 개발과 성장으로 주변농지에 혐오시설을 잔뜩 세울 요량의 첫걸음이다. 복제 서울을 전북도에 만들겠다는 기치를 내걸면서 농업 농촌을 깡그리 지우려는 속셈이다. 남 일이 아니라 머지않아 우리의 발등에도 떨어질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강력히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