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 Jan 18. 2016

열심히 쓰는 사람

※ <계간 쓰는사람> 시즌2가 시작되기 전까지 막간을 이용하여 <지독: 지엽적인 독서> 연재를 해보려 한다. 서평이든 독후감이든 책 전체를 제대로 이해한 뒤 일관성 있게 풀어 쓰는 게 옳은 방법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기억력과 통합적 사고력이 모자란 탓에 독서 후 며칠만 지나도 내용을 깨끗이 잊기 일쑤다. <지독>은 그 망각의  와중에도 뇌리에 살아남은 지엽적인 일부분들과 거기서 파생된 뻘생각들을 소개하는 꼭지이다. 『데미안』에서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만 기억 나는 게 나만은 아니겠지.


아멜리 노통브 Amelie Nothomb

1967년  일본에서 태어남. 외교관의 딸로 일본과 중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및 라오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냄.
1985년  벨기에로 돌아옴. 브뤼셀 자유대학(ULB)에서 로망어 문헌학 전공.
1989년  일본에서의 불운했던 직장생활.
1992년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문단 데뷔.
1993년 『사랑의 파괴』
1994년 『불쏘시개』
1995년 『반박』
1996년 『의상』
1997년 『침범』
1998년 『수성』
1999년 『두려움과 떨림』
             『살인자의 건강법』이 영화화됨.
2000년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튜브의 형이상학)』
2001년 『적의 화장법』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
2002년 『로베르 인명사전』
2003년 『앙테크리스타』
2004년 『배고픔의 이력』
             『적의 화장법』이 국내에서 연극으로 공연됨.


  『적의 화장법』 책날개에 실린 아멜리 노통브의 프로필을 읽고 몹시 부러웠다. 외교관의 딸이라서도 아니고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에 빛나는 유명 작가여서도 아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해마다 책 한 권씩 펴내는 삶이라니, 작가로서 이만한 웰빙이 어딨겠나 싶었던 것이다. 나이를 한 살 먹을 때마다 책도 한 권씩 차곡차곡 쌓여 가고, 과거를 떠올릴 때면 ‘아, 1999년? 그해에는 『두려움과 떨림』을 썼지.’라는 식으로 회상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자유를 추구하는 영혼이지만 한편으로는 규칙적ㆍ생산적인 생활에 집착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살 계획을 끊임없이 세우고, 지키지 못해 자학하고, 또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바보짓을 평생 해왔달까? 내가 좀 더 실천력 강한 인간이었다면 지금쯤 다음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난다. 곧장 책상 앞에 앉아 물 한 잔을 마시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으며 예능프로 한 편을 본다. 씻고 외출 준비를 한 뒤 도보 4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 또는 극장으로 산책 겸 걸어간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 뒤 역시 걸어서 집에 오면 저녁 6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드라마 한 편을 보며 저녁을 먹는다. 설거지를 하고 춤 연습을 잠깐 한 뒤(안 어울리게도 취미로 한국무용을 배우고 있으므로) 영어와 인문학 공부를 한다. 11시가 되면 불을 끄고 잔다. 매일 이렇게 생활하되 매주 하루이틀 정도는 나가서 놀거나 대외활동을 한다. 여름이 끝날 무렵 소설 한 편을 완성한다. 편집자 미팅과 원고 수정 등 잡다한 일들을 마치고 책이 나오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부산에 내려가 느긋하게 일주일쯤 영화제와 바닷바람과 맛집들을 즐긴다.’

   아…… 써놓고 나니 왠지 사이코 같기도 하고 ㅋㅋㅋㅋㅋㅋㅋ 웬만하면 브런치 연재글에 자음남발은 안 하려고 했는데 이번만은 어쩔 수가 없다. 이건 마치, 작가라기보다는 수험생에 가까운 생활이 아닌가! 아마 나 같은 사람이 나뿐은 아닐 것이다. 열심히 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열심히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이니까.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예술지망생을 위한 기숙학원이 생기면 어떨까? 모의고사나 족집게 강의 따위는 없지만, 아침 7시에 기상 나팔이 울리고 낮에는 스마트폰을 압수하며 어느 분야든 무조건 일정한 분량의 습작과 독후감 한 편을 완성해 제출해야 하는 스파르타 학원 말이다. 정문에는 이 학원 출신 신인들의 현수막이 걸리고, ‘하는 만큼 늘더라, 힘들었지만 뿌듯하더라, 열정적인 친구들 사이에 있으니 자극이 되더라’ 따위의 홍보용 등단소감이 나도는 곳. 어쩐지 꽤나 인기가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이런 공간들이 이미 숱하게 존재하는지도.

   물론 예술의 세계에도 노력과 자제력은 필요하고, 누구나 더 열심히 하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낼 테고, 열심히 할 의지가 부족하면 누군가가 잡아주길 바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스파르타 학원’은 뭔가 이상하게 여겨지는 건 왜일까? 저런 공간이 실제로 있다면 거기서는 과연 어떤 작품들이 나올까? 그런 생활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더 나은’ 작품만 나오면 되는 것일까?

   아멜리 노통브로 시작해서 어쩌다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론은, 매년 차곡차곡 작품을 쌓아가는 모범생 작가의 삶이 부럽더라도 지나치게 모범적이려고 노력하지는 말아야겠다는 것. 하긴 브런치 주1회 연재나 계간잡지 발행 따위도 내 계획본능에서 나온 규칙적인 뻘짓 가운데 하나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저기요 새해에 복이 많으시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