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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Feb 08. 2016

설맞이 중간점검 대토론회

이 작가의 생존법

사회자: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 내빈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한국의 무명작가 최이제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 텐데요, 먼저 미국 아버드 대학 부설고등학교의 제2외국어 교사 줄리아 한 선생님께서 개회를 선언해 주시겠습니다.

줄리아: 20년째 교양한국어를 가르치는 줄리아 한입니다. 제 조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에서, 전도유망한 신진작가에 대한 대토론회를 열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최이제 작가의 작품은 제 수업의 한국어 지문독해 자료를 찾던 중에 발견했습니다. 길이도 적당하고 맞춤법도 정확하더군요. 학생들에게 소개했더니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학생들끼리 자발적으로 번역해 최근 영역판을 출간했는데, 오히려 한국에서는 출판이 안 된 모양입니다. 한국문학의 미래를 생각할 때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토론회가 이 작가의 크나큰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그럼 창작집단 파작의 대표이사를 맡고 계신 파직 선생님께서 발제를 해주시겠습니다.  (※ 참조)

파직: (뻣뻣한 자세로 대본을 움켜쥔 채 등장. 앞자리의 파작 멤버들, 야유와 휘파람) 선생님이라니 쑥스럽네요. ……이번 토론회의 주제는 ‘이 작가의 생존법’입니다. 여기서 생존이란, 한 인간으로서의 생물학적 생존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생존도 포함될 것입니다. 요즘도 연재가 계속되는 걸 보면 작가가 아직 살아 있는 건 확실합니다. 그러나 글의 퀄리티는 점점 아사 상태에 빠져가는 양상인데요, 이 작가에게 과연 미래는 있는지, 메말라 가는 문학적 영감과 의지를 되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해보고자 합니다.

사회자: 의견이 있는 분은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네, 거기 뿔테안경 쓰신 분.

뿔테: 문화비평가 지망생 김불태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 글나부랭이들의 퀄리티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론회씩이나 열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일까요? 줄리아 선생님의 제자들은 좋아했다지만, 전체 학생이 겨우 세 명이었다던데요.

줄리아: 겨우 세 명이라니요? 작가에겐 단 한 사람의 독자도 소중한 겁니다.

뿔테: 그러면 다른 얘길 해보죠. 이 작가는 최근 밑천이 떨어진 게 확실합니다. 초반에 올라오던 글들은 황당해서 웃기기라도 했지만, 웃긴 것도 한두 번이죠. ‘형식적으로 쓰는 사람’이랍시고 별별 흉내를 다 냈던데 읽어보면 주제는 다 똑같다니까요. 하나같이 속 터지는 헬조선 얘기죠. 게다가 최근에는 왜 또 그렇게 진지하고 딱딱해졌는지, 같은 사람이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돕니다.

김 기자: 바로 그겁니다! 최이제라는 이름은 창작집단 파작 멤버들을 대표하는 필명에 불과합니다. 파직, 콰작, 파쟈크, 파잔느 네 사람이 글을 나눠 쓰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제가 직접 그 작업실에 가 봤다니까요.

파쟈크: 뭐야, 저 사람이 여길 왜 왔어?

콰작: 인터뷰 기사 그따위로 쓴 게 저 자식이지?

파잔느: 제발 오늘은 싸우지 말고 조용히 가자, 어?

후드티: 흥미롭네요. 저도 좀 이상하긴 했습니다. 연재글과 댓글도 완전 톤이 다르잖아요. 연재글은 허풍의 연속인데 댓글은 극히 소심하죠.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요.

빵모자: 소심할수록 망상이 심해질 수도 있죠.

김 기자: 아니요, 최이제는 여러 명인 게 확실합니다.

빵모자: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김 기자: 중요하냐뇨. 기자로서 사실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후드티: 작가가 여러 인격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킬미힐미>처럼.

뿔테: 드라마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옵니까?

후드티: 죄송합니다. 제가 좀 팬이라.

사회자: 자자, 논의가 주제를 벗어난 것 같습니다. 작가의 가능성에 대해서 더 얘기를 해보면 좋겠는데요. 이 작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뿔테: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 육신이라도 살아남을 겁니다. 작가로서는 아직 태어나지도 못했다고 봅니다. 태어나질 않았는데 생존하고 자시고가 어딨습니까?

후드티: 태어나지도 않았다니, 말이면 답니까? 쓰는 사람은 다 작가예요.

뿔테: 그런 발상부터가 나이브하단 말입니다. 쓰는 사람이면 다 작가라니요?

빵모자: 보자보자 하니까 갈수록 가관이네요. 이래서야 어떻게 생산적인 논의를 하겠습니까? 제 생각에 ‘형식적으로 쓰는 사람’과 ‘지엽적인 독서’의 톤이 다른 이유는 픽션과 에세이의 차이 때문입니다. 에세이에는 쓰는 사람 자신이 드러나기 때문에 자기검열이 심해지는 거죠. 앞으로 계속 글 쓰려면 더 자유로워져야 할 겁니다.

후드티: 자기검열이라. 솔직하지 못하다는 말씀인가요? 

빵모자: 그보다는, 에세이를 논설문처럼 쓰는 게 아닌가 싶네요. 모르긴 몰라도 참 재미없게 사는 사람일 겁니다. 자기 인생에 쓸만한 에피소드가 없으니까 추상적인 생각이나 주장을 가지고 글을 쓰는 거겠죠. 감정을 드러내기도 싫어할 테고.

뿔테: 에세이만 그런 게 아닐 텐데요.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만 봐도 딱 머릿속에서 혼자 치고받는 독백 느낌이잖아요. 이건 뭐, 인물 하나하나에 개성도 없고 이름도 없고. 후드티, 빵모자가 뭐냐고요 대체.

사회자: 이제 좀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 작가의 한계와 극복 방안에 대해서 더 말씀하실 분 안 계십니까?

(좌중 침묵) 

파쟈크: 저기요.

스탭: (속으로) 아 그냥 좀 끝내지, 꼭 이럴 때 말하는 사람 있더라.

사회자: 네, 파쟈크 씨.

파쟈크: 글쓰기가 무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입니까? 극복 방안이라니, 내 참. 한계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한계에 대해서 말하는 게 작가예요. 사람한테 한계가 얼마나 많은데, 그거 다 극복하려다 보면 해탈밖에 더 하겠습니까?

김 기자: 거 보세요. 자기가 작가니까 듣기 싫다고 저러는 거 아닙니까.

파쟈크: 저는 글 안 써요. 디자인과 제작 담당이라고 인터뷰 때 말했을 텐데.

김 기자: 말 한번 잘하셨네요. 그래, 그놈의 디자인과 제작은 얼마나 진행된 겁니까? 예정대로라면 다음 주에 인쇄 들어가야 되잖아요?

파작 멤버 일동: ……(동공지진)

파직: ……그건 다음 기자회견 때 정식으로 브리핑하겠습니다.

김 기자: (폭소를 터뜨리며) 뭐요, 기자회견?

파쟈크: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제작비 모으려면 앞으로 최소 두 달은 걸려요. 두 달 뒤에 나올 잡지를 뭐하러 벌써 디자인합니까?

김 기자: 제작비 안 모인 것도 따지고 보면 제작부 탓 아닙니까?

파쟈크: (벌떡 일어나) 뭐라구요?

파직: (붙들어 앉히며) 그만 좀 해라, 쪽팔리니까.

파잔느: 오늘은 또 쟤가 난리네. 못 산다, 진짜.

콰작: 저 기자 오늘은 맞는 말 했네 뭐.

사회자: 잠시 주목해주십시오. 장내가 너무 소란스러워진 관계로 오늘 토론회는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줄리아 한 선생님께서 폐회를 선언해 주시죠.

스탭: 그분 아까 가셨는데요. 

사회자: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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