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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Jun 12. 2022

내가 집이라면 가장 비우고 싶은 공간은

매일 발행 70일차

며칠 전, 부엌을 없애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말은 부엌이라는 공간 자체보다는 내 엉망진창인 식습관이나 싱크대 속 밀린 설거지, 냉동실에서 화석이 되어가는 식재료, 청소를 미루고 있는 싱크대, 뭐만 했다 하면 태워먹는 요리실력 등등 부엌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뜻일 거다. 마음을 잘 잡고 좋은 습관을 들여서 깔끔하게 관리하며 사용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공간 자체를 아예 들어내 버릴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집이라고 치고,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방과 가구, 가재도구 등이라고 상상해봤다. 그러자 부엌보다도 먼저, 최우선으로 갖다버리고 싶은 공간은 따로 있었다.


커다란 창고다. 온갖 폐지와 잡동사니와 정체 모를 상자들이 가득하다. 이상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비가 새고, 곰팡이가 날로 번지며, 처음 보는 왕벌레들이 줄줄이 출몰하고 살쾡이만 한 쥐가 갑자기 덤벼든다. 스위치가 고장나 24시간 꺼지지 않는 형광등이 이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이 창고의 존재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창고 밖 침실에서도, 작업실에서도, 마당에서도 창고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창고가 바로 직장이다.

이것만 없애면 내 인생이 획기적으로 쾌적하고 여유로워질 것 같은, 거대한 애물단지.

내 부정적 감정의 절반 이상이 여기서 비롯되는 무시무시한 공간.


그럼에도 지금 당장 철거 업체를 불러 창고를 밀어버릴 수 없는 건, 이 쓰레기들 속에 가끔 좋은 것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일부분이라도 청소를 끝내면 성취감 비슷한 것도 느껴지고, 모든 창고가 그렇듯 잘 뒤져보면 쓸만한 물건도 있다. 심지어 현금도 섞여 있다. 돈을 찾아내려면 곰팡이 슨 상자들을 풀어헤치고, 달려드는 괴생명체들을 피하고, 흙탕물 고인 장판을 들어 끈적거리는 지폐를 집어내야 하지만, 어쨌든 이 집에서 돈이 나오는 곳은 이 창고뿐인 것이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직장생활을 어떻게 버텨내는 것일까? 직장이라는 창고의 산더미처럼 쌓인 박스들, 괴이하고 시끄러운 소리들, 내가 엎지른 물 때문에 번지는 곰팡이,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을 어떻게 이겨낼까? 유능한 사람은 그 창고를 코스트코나 이마트트레이더스처럼 완벽하게 정리해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고 살까?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이 되는 걸까?


그냥, 출근하기 싫단 소리다.

평생 주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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