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는 않았지만 한 일도 없는

by 이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부끄러워 쓸 말을 못 찾았다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넘기는 게 더 부끄러워 다시 써보려 한다. 봄을 말하면서 세월호를 외면할 수는 없게 되어버렸으니까. 이토록 소심한 용기라도 낼 수 있었던 건, 지난 4월 16일 광화문 광장의 추모 인파 덕분이 아닐까.

지난 2년간 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잊지는 않았지만 딱히 한 일도 없는’ 평범한 1인이었다. 가끔 광화문 분향소를 찾았지만 그 옆의 천막들은 어색하게 지나쳤고, 튀고 싶지 않아 노란 리본은 1년에 하루만 달았다. 유가족과 특조위, 소수의 언론은 악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복잡한 사실관계와 숨겨진 문제점들을 파헤쳤지만 나는 그 과정을 끈기 있게 지켜보지 못했다. 그보다는 정치인이나 막말꾼들의 자극적인 말과 행동에 분개하는 게 훨씬 쉽고 간단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또다시 부끄럽고 미안한 2주기를 맞고 말았다. 양심상 최소한 그날만큼은 광장에 나가야 했다. 비 때문에 많이 못 모였겠다 생각하며 갔는데 세상에,

7시에 도착하자 광장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무대 쪽 접근은 엄두도 못 내고 이순신 동상 한참 뒤에 간신히 설자리를 잡았을 정도였다. 그 후로 두 시간, 폭우는 쏟아졌고, 교보빌딩 근처 가로등 아래에는 세찬 빗발이 하얗게 비쳤고, 팔다리는 흠뻑 젖었고, 대형 화면은 우산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목소리만으로도 어찌나 감동이던지. 생활에 바쁘고 날씨가 궂어도 이날만큼은 기어코 추모하러 나온 평범한 사람들.

그 자리에서 나는 지난 열몇 해를 떠올렸다.

참사에 대한 최초의 충격은 1999년 씨랜드 사건이었다. 손가락만 데어도 아프다고 울 예닐곱 살 꼬마들이 한꺼번에 불에 타 죽은 참혹한 사건에 나는 꽤 울었고, 세상이 아름답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자고 결심했고, 종교를 버렸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슬픔이든 결심이든 모두 나 혼자만의 문제일 뿐이었다. ‘세상은 끔찍한 곳’이라는 인식은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더더욱 못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씨랜드 참사로 쌍둥이를 잃은 아버지가 어린이안전재단을 만들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벌어진 또 다른 참사들을 목도하면서 ‘바꾸지 않으면 이런 일은 또 벌어진다, 많은 사람이 노력하면 조금쯤은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바뀐다는 보장이 없어도 뭐든 해야 한다’는 쪽으로 차츰 생각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동안 실제로 무슨 실천을 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관심 갖고 고쳐야 할 위험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큰일이 터지면 가끔 집회를 나가고 서명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때로는 소심해서, 때로는 게을러서, 때로는 내 생활이 바빠서, 때로는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흐지부지 외면하고 말았다. 이번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을 필사하면서,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뒷부분을 함께 낭독하면서,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재난과 참사, 그리고 비참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하겠다’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생각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빈약한 힘이나마 계속 내봐야겠다고 또다시 다짐한다. 그리고 평범한 이들의 작은 목소리라도 이 사회에서 조금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수의 작은 힘들이 모여 사회를 변화시킬 방법은 정녕 투표뿐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잊지는 않았지만 한 것도 없는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유가족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희생된 이들의 몫을 대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나는 이제야 4.16연대에 가입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16 인권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