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살고 싶어서, 오늘은 아날로그 (9)
고난과 역경의 한 해가 갔다. 해방의 그날이 반 년 앞으로 다가온 2024년 1월,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 첫 곡은 김동률의 ‘시작’, 새해 첫 읽을거리는 1월 1일자 종이신문, 새해 첫 음식은 따끈한 현미밥에 스팸과 사과였다. 그리고 새해 첫 아날로그 휴일로 정한 새해 첫 토요일,
나는 설거지를 미루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새해 첫 미친짓으로 식기류를 25만원어치나 질러버린 것이다. 뽁뽁이로 일일이 싸맨 새 그릇들이 쇼핑백에 방치돼 있었다. 그것들을 다 꺼내서 포장을 풀고, 개수대로 옮겨 설거지하고, 찬장을 정리해 수납공간을 확보하고, 씻은 그릇들을 차곡차곡 쌓아야 했다. 상상만 해도 귀찮았다.
평소에는 이런 식으로 큰돈을 쓰지 않는다. 내 지름신의 주요 분야는 ‘도구와 재료’다. 책, 문구(만년필, 노트, 펜 등), 화구(마카, 물감, 색연필 등), 전자기기(태블릿, 신티크, VR기기 등)처럼 내 삶을 더 재밌거나 생산적으로 만들어줄 것 같은 물건들에 쉽게 꽂힌다. 그중 40% 정도는 실제로 잘 가지고 노는 것 같다. 나머지 60%는? 자리만 차지하는 장난감 신세가 된다.
이번 충동구매의 테마는 ‘미니그릇’이었다. 간장종지만한 그릇, 컵받침만한 접시, 손바닥만한 무쇠냄비, 소주잔만한 머그컵, 디저트용 포크와 나이프 등등. 정말 귀엽긴 했다. 휘황찬란한 수입식기 매장을 몇 바퀴나 돌며 하나씩 고를 땐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이게 바로 어른의 소꿉놀이다! 돈 벌자고 그 고생을 했으면 이 정도는 플렉스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어째서 나이 40에 그 돈을 주고 소꿉놀이 세트를 산 것일까? 이유는 첫째, 요리가 싫어서. 둘째, 다이어트를 위해(과연 새해답다).
자극적인 콘텐츠로 시간을 빼앗는 디지털 미디어를 경계해 아날로그 휴가를 시작했으면서, 자극적인 맛으로 건강을 해치는 배달음식과 인스턴트 식품에는 속절없이 끌려 다녔다. 세상에는 매콤하고 달달하고 짭짤하고 고소하고 바삭하고 쫄깃하고 폭신하고 살살 녹는 음식이 왜 이리 많단 말인가? 야식이 땡기는 스트레스 상황은 왜 자꾸 닥쳐온단 말인가? 신선한 식재료로 간단한 요리를 해 먹는 쪽이 더 나은 선택인 건 알았지만 나는 자취 20년 경력에도 여전히 집안일에 서툴렀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요리가 재밌게 느껴지도록 귀여운 미니어처 음식을 만들어보자!
SNS에서 미니 양송이버거를 보고 따라해본 적이 있다. 구운 양송이버섯을 햄버거빵으로 삼고 동그랑땡보다 작은 고기패티, 얇게 썬 방울토마토, 잘게 찢은 상추, 치즈와 양파 쪼가리 등을 끼워 먹는 한입거리 음식인데 재밌고 귀엽고 맛도 있었다. 놀이도 하고 소식도 하고, 이거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았다. 메추리알 프라이를 올린 미니 함박스테이크는 어떨까? 동그란 애호박전을 세 겹으로 쌓아 케이크처럼 썰어 먹으면? 두부전이나 계란말이를 작게 부쳐도 귀엽지 않을까? 대패목살을 작게 잘라 크래커만한 일식돈까스를 만든다면? 티스푼 크기의 초밥은? 손톱만 한 깍두기는?
이토록 다채로운 꿈과 희망에도 불구하고 나는 설거지가 귀찮아서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요리를 놀이로 만들려고 오바쌈바를 떨어도 설거지까지 놀이로 만들 도리는 없었다. 재미없는 일을 하려면 재밌는 영상이라도 틀어놔야만 했다. 이제 스마트폰 없이 길을 걷거나 밥을 먹는 건 가능해졌지만 스마트폰 없이 가사노동을 하는 건 아직 무리였다.
하지만 애초에,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활동들을 일일이 다 재밌게 만들려고 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방향일까? 재미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게 정상일까? 재미가 없더라도 할 일은 하는 인내심을 기르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그 인내심을 어떻게 길러야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계속 설거지를 미뤘다.
돌아보면 인생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미루며 보냈던가? 아침 기상을 미루고, 등교를 미루고, 숙제를 미루고, 학습지를 미루고, 시험 공부를 미루고, 리포트 작성을 미루고, 면접용 정장 구입을 미루고(옷 쇼핑을 끔찍이 싫어한다), 등받이 부러진 의자를 몇 년이나 쓰면서도 새 의자 사기를 미루는 등 온갖 것을 미뤘다.
몇 년 전,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겠다며 ‘100일 연속 브런치 매일 발행’에 도전한 적이 있다. 혼자서만 글을 쓰는 골방 글쓰기를 벗어나 짧은 글이라도 매일 완성해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훈련을 하기로 결심한 거다. 아무리 유치찬란 엉망진창인 글이라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공개하기로 했다(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적이 없으므로 사실 굳이 철판을 깔 필요도 없다).
작심삼일의 아이콘인 내가 웬일로 그런 의지가 생겼는지, 진짜로 100일간 매일 글을 올렸다. 야근한 날에도, 여행을 가서도, 자정을 넘겨 새벽 서너 시가 돼서라도, 어떻게든 발행을 했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몇몇 글들은 졸면서 쓴 느낌이 역력하다. 이걸 쓰느라 너댓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왜 그랬겠는가? 다섯 시간 중 네 시간 반쯤을 졸음과 싸우며 미루다가 막판 30분 동안 어거지로 썼기 때문이겠지…….
석 달 열흘의 사투를 벌이는 동안, 미루기의 괴로움을 매일매일 시시각각 뼈저리게 절감했다. 출근 전에 쓰기, 퇴근 후에 쓰기, 타이머 맞춰 20분만 쓰기, 종이 한 장 들고 다니며 수시로 메모하기 등등 별별 방법을 시도해봤다. 글은 안 쓰고 미루기 극복 관련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한 적도 부지기수였다. 내면에 집중해라. 목표를 잘게 쪼개 부담감을 덜어라. 작은 습관을 만들어 수시로 반복해라. 하루에 10분만 해라, 아니 5분만, 아니 3분만, 아니 딱 한 동작만 해라. 계획을 지킬 때마다 자신을 칭찬해라. 습관일지를 만들어라. 완벽주의를 버려라. 등등. 대부분 유익한 정보였지만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쓴 것도 없이 새벽 두 시가 되어 있었다.
여러 번 재수 끝에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열심히 하는 애들은 안 힘들어. 안 하는 애들이 힘들지.’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명언이다. 확신과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보다, 공부를 미루며 자책하는 사람의 마음이 더 괴롭다는 뜻 아니겠는가?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쓸 때는 힘들지 않다. 안 쓰고 있을 때가 더 힘들다. 글쓰기의 여러 단계 중 제일 어려운 고비는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 무엇을 쓸지 결정하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 『미루기의 천재들』(앤드루 산텔라, 어크로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꾸물거리기와 미루기, 주저하기는 전부 창의적인 과정의 한 단계다. ……한 가지 일을 미루면 종종 다른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던 그 두 번째 일이 결국은 꼭 해야 했던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일 경우가 많다.(167p)
그렇다. ‘할 일 A’에 비해 ‘딴 짓 B’가 반드시 덜 중요하다는 법은 없다. 아날로그 휴일도 미루기의 일종인지 모른다. 회사 일, 집안일, 몇 달째 방치한 브런치와 인스타, 재밌는 콘텐츠와 좋은 음악, 인터넷 세상의 다양한 정보, 시끄러운 뉴스와 논란 등등을 죄다 미뤄둔 채 조용한 하루를 보낸다. 미뤄둔 그 모든 일보다 24시간 동안의 고요가 지금의 나에게는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오늘 이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다. 실컷 쉬면서 내키는 일만 하면 된다.
여전히 나는 설거지를 미루고 있었다. 그렇지만 설거지를 미루는 게 죄는 아니잖나? 하기 싫으면 말지 뭐. 내일의 내가 하겠지. 아니면 모레의 내가. 나는 설거지를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 대신 산책을 하고, 과일카페에서 커다란 딸기를 먹고, 그림을 그렸다. 그날 하루는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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