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좀 헤매면 된다

적당히 살고 싶어서, 오늘은 아날로그 (10)

by 이제

화면을 끄자 하루가 길어졌다. 잠을 아무리 많이 자도 12시간 이상은 깨어 있기 마련이다. 이 소중한 나만의 12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하는 고민은 곧 내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고민과도 같다. 인생은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모든 사람에게는 놀이욕구, 즉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 욕구를 건전하게 해소하는 일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 청소년의 집단따돌림이 놀이문화의 일종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건강한 놀이를 억압받으면 괴롭힘을 놀이 삼게 된다는 것이다(『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편해문, 소나무). 그러고 보면 악플을 달거나 딥페이크 불법 영상을 유포하는 것도 놀이다. 도박, 마약도 놀이다. 범죄에 이르도록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라도 지나친 게임·음주 등으로 건강을 해치는 일은 흔하다. 나 또한 스마트폰과 자극적인 음식에 빠져 시간과 건강을 빼앗기고 있지 않았나?


나는 모처럼 주어진 온전한 하루를 되도록 건강하게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일기를 쓰고 산책을 하고 서점과 마트를 구경하는 것도 좋았지만 하루종일 할 일은 아니었다. 피아노는 내가 아는 곡을 다 치는 데 20분도 안 걸렸다. 작은 그림 한 장을 그리는 데는 1시간이면 충분했다. 책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몇 권이나 연달아 책만 읽으니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듯했다.


떠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여행·체험 등 새로운 장소와 경험을 찾아 다니는 것. 둘째, 오래 몰입할 수 있는 ‘나만의 프로젝트’를 찾는 것. 나는 후자에 끌렸다. 데이트 코스 짜듯 매번 새로운 맛집, 새로운 명소, 새로운 원데이클래스를 찾는 것도 골치아픈 일 아닌가? 나만의 작업을 찾아 정착하고 싶었다. 나답고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그러면서도 오래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에.




우리 동네에 있다는 작은 문화공간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을 전날 메모해뒀는데도 막상 가보니 길이 헷갈렸다. 이쪽인가 저쪽인가? 이 골목인가 저 골목인가? 안 그래도 길치인데 골목도 복잡했다. 갈팡질팡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좀 헤매면 되겠구나?’


시간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시가 급한 응급상황도 아니다. 이 길로 가서 아니면 저 길로 가보고, 그래도 아니면 또 다른 길로 가보면 된다. 대충 반경 200미터 안에는 있을 것 아닌가? 좀 더 걷는다고 나쁠 것도 없다. 걷기 운동이 되니 오히려 좋다. 꼭 단번에 정답을 찾아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사람이 항상 그렇게 효율적일 필요는 없다. 보물찾기라고 생각해보자. 모험이나 방탈출, 추리게임도 좋다. 여기서 ‘헤매는 과정’을 빼고 해답을 바로 찾아낸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내게 더 필요한 것은 헤매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헤매는 시간을 즐기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이 골목 저 골목 쏘다니다 보니 한순간 눈앞에 목적지가 나타났다. 북카페 느낌의 커뮤니티실과 작은 전시실을 갖춘 청년 아티스트 센터였다. 조용히 앉아 그림책을 잔뜩 보고, 스무 점 남짓한 소규모 전시도 봤다. 드로잉, 만들기 등의 주민참여 프로그램도 매달 운영한다고 했다. 진짜 보물을 찾은 것 같았다.




아날로그 휴일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첫날부터 했다. 그러나 그간의 숱한 작심삼일을 돌아보며 섣부른 설레발을 자제해 왔는데, 5일차쯤 되니 느낌이 왔다. 이건 계속할 수 있겠다, 계속하고 싶다, 할 얘기가 있겠다는 확신. 그래 결심했어, 책을 쓰는 거야!


그리고 당연하게도 미루기 단계에 들어섰다. 막상 써보니 쓸 말이 없을까봐, 써도 재미가 없을까봐 겁이 났다. 글감을 채집한답시고 두서없이 휘갈겨둔 일기장을 펼쳐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이게 과연 책이 될까? 이 책의 내용은 결국 ‘나라는 사람이 휴일에 핸드폰을 끄고 뭘 했는지’가 될 텐데, 남들이 과연 이런 얘기에 관심을 가질까? 이 모든 건 나에게나 의미 있는 경험일 뿐 독자에게는 관심 밖의 주제가 아닐까?


부담감을 덜기 위해 마인드컨트롤도 해봤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잘 쓰지 않아도 된다, 쓰다보면 실마리가 풀릴 거다, 최소한의 분량만 채우면 책 모양은 만들 수 있다 등등.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역시 ‘재밌게 쓰고 싶다, 잘 읽히는 책으로 만들고 싶다, 많이 읽히고 싶다’는 욕심이 고집스레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앉아 있었다.


여행기나 체험기처럼 특정한 경험에 대한 글을 책 한 권 분량으로 재미있게 써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보기 드문 경험을 했든지, 인물·사건이 공감되거나 흥미롭든지, 문체가 매력적이든지, 감성이나 관점이 신선하든지, 유익한 정보나 깨달음을 주든지, 작가가 셀럽이든지, 뭐라도 있어야 남들이 읽을 텐데 말이다.


재밌는 책이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책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이제 어떻게 할까? 그곳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이 사건은 과연 어떻게 끝날까? 그 문제가 과연 해결될까? 다음에는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등등의 궁금증이 꼬리를 물면 책이 술술 읽히게 된다. ‘어떻게 될까?’에서 더 나아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주인공이 잘됐으면 좋겠다, 악당이 벌을 받으면 좋겠다, 저 둘이 사귀면 좋겠다 등등)까지 갖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지금 이 순간, 과연 이 글이 저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글일지 궁금하다. 이 문장, 이 문단이 잘 읽힐까?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일까? 나라는 주인공은 더 알고 싶은 구석이 있는 인물일까? ‘나는 이러고 싶다’는 말이 ‘당신도 이래야 한다’라고 읽히지는 않을까? 이렇게 너무 생각이 많으면 오히려 더 평범한 글이 되지는 않을까? 이런 의문의 답은 역시 글을 발행하고 책을 내봐야 알 수 있겠지. 많은 독자는 아니라도 나와 비슷한 어떤 이들에게는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기를 바랄 따름이다.


어쩌면 뭔가를 창작·생산하고 싶다는 욕망도 현대인 특유의 생산성 강박인지 모른다. 창작이 의무는 아니고, 모든 창작이 가치 있는 것도 아니며(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유해 콘텐츠들을 보라), 더 많이 더 빨리 창작할 필요도 없다. 그저 이렇게 헤매는 시간을, 이런저런 생각을 요리조리 굴리며 고민하기를 즐기면 된다. 이 과정 자체가 내 놀이이고, 놀이의 결과는 생각보다 중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새해 첫 미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