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살고 싶어서, 오늘은 아날로그 (20)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글쓰기를 의식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책상 앞에 앉아 볼펜을 쥐었다. 과연 오늘은 글이 써질까, 한 시간 뒤에 나는 뭘 하고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한 치 앞도 예상이 안 될까, 이 책을 완성하는 날이 오기는 올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미지의 하루가 매일 시작됐다.
그럴 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늘 이런 식이다. ‘방금 일어났는데 왜 또 졸리지? 아, 눕고 싶다. 오늘은 진짜 써야 되는데. 이번 주제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아.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쓸 얘기가 없을 것 같아. 내 맘대로 안 써질 것 같아. 허리도 아픈 것 같고 머리도 아픈 것 같아. 기껏 썼는데 별로면 어떡하지? 실망스러우면 어떡하지? 남들이 보기에 이상하면 어떡하지? 과연 이번 글을 끝낼 수 있을까?’
숙제를 미루던 어린시절과 거의 똑같은 패턴이다. 이런 생각을 30년 넘게 반복했으면 지겨워서라도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됐는데, 앞으로 내가 써내야 하는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생각하면 어느새 똑같은 어둠 속에서 똑같은 방황을 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 이 식상한 장면은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거쳐 가는 관문일 뿐이라는 걸. 맨 처음 등장하는 캐릭터는 ‘숙제 못 한 꼬마’로, 다들 자는 한밤중에 캄캄한 방에서 스탠드를 켜 놓고 숙제를 쌓아둔 채 괴로워한다. 탁상시계의 형광바늘이 밤 12시 23분쯤을 지나고 있다. 지금 시작해도 5시간이나 잘까 말까다. 그 꼬마가 ‘힘들어, 하기 싫어, 못하면 어떡하지? 혼나면 어떡하지?’라는 대사를 무한반복하며 입구를 틀어막고 앉아 있기 때문에, 녀석을 잘 달래서 잠자리로 보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익숙한 재미와 새로운 모험, 흥미와 실망, 고난과 보람이 널려 있는 세계로.
이 나이에 아직도 어릴 적 숙제 트라우마에 얽매여 있냐는 식으로 생각할 것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게임팩의 첫 장면 첫 미션이 이렇게 생겨먹었을 뿐이다. 꼬마는 딱히 빌런도 아니다. 일부러 내 게임을 방해하려고 거기 앉아 있는 게 아니다. 본의 아니게 오프닝 영상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마스코트 느낌이랄까?
꼬마가 아직 내 앞에 버티고 있더라도 글쓰기는 이미 시작됐다. 안 써지는 시간도 쓰는 시간이다. 안 써지는 시간을 견디는 게 글쓰기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그 단계에서 쉽사리 도망치지 않도록 내 방에서 전자기기를 몰아내지 않았던가?
안심해도 된다. 그냥 책상 앞에 앉아만 있으면 된다. 커피나 한잔 마시며 낙서하듯 끄적거리다 보면 뭐라도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막막해도 20분 후에는 실실 웃으며 신나게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안 써지면 푹 자고 내일 쓰면 된다. 이건 숙제가 아니다. 지금은 한밤중이 아니다. 나는 이제 꼬마가 아니다.
내 방을 디지털 미디어의 유혹이 없는 안전구역으로 만든 건 백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단 하나 찜찜한 점이 있었다. 손글씨로 책 한 권을 쓴다는 게 가능할까, 그게 정말 최선일까 하는 문제였다.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적을 때는 손글씨도 괜찮았다. 하지만 한 편의 글을 완성하려면 한 문장을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이 문단을 여기 붙였다 저기 붙였다 해보고, 중간에 새로운 내용을 끼워넣기도 하면서 요리조리 쪼물딱거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손글씨로는 이런 수정·편집에 한계가 있었다. 오래 쓰다 보면 팔도 아팠고, 생각의 속도를 손이 따라잡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렇다고 노트북을 방에 들이면 와이파이를 연결해 딴짓을 할 게 뻔했다. 자제력을 발휘해 글쓰기에만 집중하는 것도 잘하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충동과 자제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 것 자체가 피곤했다. 나를 홀려서 네트워크의 미로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호객꾼들을 말끔히 치워버려야 했다. 이것들이 아니라도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많은 위기를 만날 텐데, 귀찮은 조무래기들을 상대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타자기 구입을 진지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받침 있는 글자를 입력할 때마다 초성 다음에 ‘받침’ 키를 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지름신이 쏙 들어갔다. ‘받침’이라는 단어를 쓰기 위해서 ‘ㅂ, 받침, ㅏ, ㄷ, ㅊ, 받침, ㅣ, ㅁ’을 쳐야 하는 것이다. 줄을 바꿀 때마다 줄바꿈 레버를 눌러야 하는 것도 만만찮은 장벽이었다. 타자기의 세계도 굉장히 흥미롭긴 했지만*, 역시 컴퓨터 키보드가 필요했다. Delete가 필요했고, Ctrl+C와 Ctrl+V가 필요했다. 여러 가지 글자색과 특수기호가 필요했다.
* 한글 세벌식 타자기를 개발한 공병우 박사 얘기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한글날 특집으로 한번쯤 다뤄줬으면 싶을 정도였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아이폰과 맥북을 친구에게 맡겨놓고 한적한 바닷가 마을로 떠나 3개월간 극단적인 디지털 디톡스를 실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고장나서 인터넷이 안 되는 낡은 노트북을 가져가 소설을 썼단다. 오전 세 시간쯤 집중해서 글을 쓴 뒤 남은 하루는 해변을 산책하거나 책을 읽거나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보냈다.
여기서 ‘인터넷이 안 되는 노트북’이라는 대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도 딱 그런 게 필요했다. 네이버 검색도 인터넷 쇼핑도 OTT 시청도 못 하고 오직 글만 쓸 수 있는, ‘와이파이가 안 잡히는 글쓰기 전용 노트북’ 말이다. 그런 물건을 대체 어디서 구해야 할까?
당근마켓을 아무리 뒤져도 알맞은 게 없었다. 인터넷이 안 될 정도의 구형 노트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쩌다 혹시 발견한다 해도 너무 크고 무겁거나, 발열이 난로 수준이거나, 배터리가 한 시간도 안 가거나, 키캡 몇 개가 빠져 있거나, 화면에 줄이 좍좍 가 있는 등의 또 다른 치명적인 문제를 동반하고 있을 것이었다.
가지고 있던 노트북에서 웹브라우저 아이콘들을 삭제해 인터넷 접속이 좀 더 귀찮아지도록 바꿔봤지만 큰 도움은 안 됐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30초 안에 드라마를 틀 수 있었다. ‘인터넷 안 되는 노트북’, ‘와이파이 연결 안 되게’ 따위를 하염없이 검색했지만 죄다 인터넷 안 되는 노트북을 고치는 방법뿐, 인터넷이 안 되도록 고장내는 방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않았지만……!
바로 그 ‘노트북 고치는 법’에 힌트가 숨어 있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노트북을 분해해 랜카드를 뽑아버리거나, 네트워크 드라이버를 삭제하면 되는 것이었다! 과감하게 드라이버 삭제 버튼을 누른 뒤, 편안한 마음으로 아날로그 구역에 노트북과 노트북 충전선을 합류시켰다. 키보드를 두드리니 속이 시원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드라이버를 설치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이 노트북 기종에 어떤 드라이버가 맞는지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상당히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 귀찮음을 감수하느니 그냥 노트북 하나쯤은 인터넷을 포기한 채로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절대 넘지 못하는 200미터 철옹성까지 쌓을 필요는 없다. 내가 넘기 어려울 만큼 적당히 높은 담장이면 된다. 적당한 높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정도면 될 듯했다.
글쓰기 프로그램은 한컴오피스 아래아한글이다. 에버노트, 스크리브너, 구글문서 등 여러 프로그램을 찍어먹어봤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에 정착했다. 돌아보면 컴퓨터를 처음 접한 90년대부터 ‘한컴 타자연습’으로 자판을 익히지 않았던가? 리포트 쓰던 대학시절부터 오랜 습작 기간, 공무원 생활까지 모두 한컴과 함께하지 않았던가? Ctrl+F10을 치면 문자표가 나오고, Ctrl+K+D를 치면 현재일시가 입력되며, 글꼴 스타일을 만들어 단축키로 한번에 적용할 수 있는 디테일에 나는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오프라인 노트북으로 글을 쓰려면 불편한 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수시로 컨트롤S를 눌러 저장해야 하고, 만일에 대비해 별도 저장장치에 백업해둬야 하며, 문서 파일을 다른 기기로 옮길 때는 USB를 써야 한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넘나들며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쓸 수 있는 동기화 및 자동 저장 기능을 포기한다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인터넷의 유혹과 싸울 필요가 없어졌다는 게 훨씬 중요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책상 앞에 앉는다. 널찍한 책상에 무선노트 한 권, 3색볼펜 한 자루, 독서대 하나가 놓여 있다. 책상 좌우에는 책장과 전기포트, 머그컵, 화분, 그림, 탁상달력, 문구류와 각종 도구들이 갖춰져 있다. 텅 빈 운동장을 낮은 건물과 나무 등이 둘러싼 모양새다.
노트에 날짜와 시각을 적고, 아무 말이나 이어서 쓴다. 글쓰기의 첫 관문에서 숙제 못 한 꼬마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디카페인 커피를 큰 머그컵에 한가득 타서 천천히 마시며 ‘안 써지는 시간’을 보낸다. 의식의 흐름 어딘가에서 쓸 만한 얘기를 찾으면 책장에 꽂혀 있던 노트북을 꺼내 펼친다. 늘 열려 있는 한글 창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꼬마는 자러 가고, 시끄러운 호객꾼 따위도 없다.
마침내 들어선 글쓰기의 세계에서 나는 휘적휘적 길을 걷는다. 흥미로운 발견을 하고 새로운 난관에 부딪친다. 단어들을 요리조리 조합하며 퍼즐을 맞춘다. 잠에서 깬 꼬마를 다시 만나면 벤치에 앉아 얼마간 같이 시간을 보낸다. 마치 여행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