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살고 싶어서, 오늘은 아날로그(24)
아침에 눈을 뜨니 아차 싶었다. 아빠는 이미 출근했고, 집에는 엄마와 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전에는 주말에만 부모님 댁에 갔기 때문에 다른 식구들이 늘 함께였는데, 퇴사 후에는 평일에도 본가에 머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막상 진짜로 엄마와 단둘이 남자 당혹감이 밀려왔다. 오늘 하루 엄마랑 뭘 해야 되지?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엄마랑 둘이서’ ‘엄마랑 할 일’ 등을 검색해봤다. 카페? 카페까지는 간다고 쳐도, 마주앉아서 무슨 얘기를 하지? 극장? 엄마가 영화에 관심이 있었던가? 여행? 차도 없이 당일치기로 무슨 여행이야. 아무리 검색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엄마와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었다. 내가 워낙 말이 없는 데다, 성격상 다른 누군가와 단둘이 있는 것 자체를 어색해하기 때문이었다. 어색함을 수치로 표현한다면 직장동료·상사 등 일로 엮인 관계는 40~100 정도로 천차만별, 친척은 70~100, 친구는 30~50, 가족은 10~30, 나자신은 3~10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를 제외하면 가족이 제일 편하지만 단둘이 있을 때는 어색지수가 높아진다.
사실 그동안 본가에서 아날로그 휴일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딱 한 번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것도 하루종일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다가 저녁 8시에 잠들어버려서 성공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이상하게도 본가에만 내려가면 모든 고삐가 풀려버렸다. 평소엔 안 먹던 과자도 실컷 먹고, 소파에 드러누워 태블릿만 쳐다봤다.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도 각자의 근황이며 귀여운 조카 얘기, 화제의 뉴스 등을 몇 가지 얘기하다 보면 어느새 폰을 찾는 나를 발견했다.
어떤 면에서는 직장에서 영혼 없는 일 얘기를 나누는 게 오히려 더 쉬웠다. 한 공간에서 매일 함께 일하다보면 자연히 이런저런 얘깃거리가 생기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한둘은 있게 마련이므로 맞장구만 잘 쳐도 중간은 갔다. 반면에 가족들은 떨어져 산 지 20년이 넘다보니 아무래도 공통의 화제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서로 일상이 다르고 연령대도 다르고 관심사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함께 나이먹은 가족들과 진짜로 할 얘기가 없을 리가 없다. 마치 글쓰기를 막 시작할 때는 쓸 얘기가 없는 것 같지만 한참 생각을 굴리다보면 글감이 낚여 올라오는 것처럼, 할 얘기는 많지만 아직 못 찾은 건지도 모른다.
결국 아무 대책 없이 어색하게 거실로 나가자, 엄마 역시 약간 어색하게 물었다.
“오늘 어디 갈래? 너 가고 싶었던 데 있으면 가고.”
“그런 거 없는뎅…… 엄마는 어디 가고 싶은 데 없으세요?”
“나도 없는데……”
이런 어색한 대화가 잠시 오간 뒤 수박을 꺼내 먹고 어찌저찌 밖에 나가 점심거리를 사 왔다. 밥을 다 먹은 뒤에는 식탁에 묵묵히 마주보고 앉아 엄마는 핸드폰을 보고, 나는 심심할 때를 대비해 챙겨 온 재활용 키트를 꺼내 카드지갑을 만들었다. 어느새 내 어설픈 손놀림을 구경하던 엄마는 “아니, 그게” 하고 답답해 하다가는 결국 포기하고 “너 허고 싶은 대로 해…” 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평소에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했다. 엄마가 하는 일 중에 나도 끌리는 게 있으면 그걸 같이 하면 되지 않을까?
“근데 엄마는 집에서 혼자 있을 때 뭐하세요?”
“뭐,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핸드폰도 보고 낮잠도 자고 도서관도 가고.”
“도서관이요? 우와!”
드디어 ‘엄마랑 뭐 할지’라는 난제에 서광이 비쳤다. 엄마랑 도서관에 가면 되겠구나!
돌아보면 어린시절에도 방학 때마다 엄마, 동생과 도서관에 가곤 했다. 실컷 책을 읽다가 엄마가 싸온 소풍도시락(돈까스 샌드위치나 닭튀김 등등)으로 점심을 먹는 게 방학의 낙이었다. 이때 읽은 책 중에 『웃음도 발명한 과학자』(최달수)와 『누리야 누리야 뭐하니』(양귀자) 두 권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전자는 엄청 웃긴 과학만화고, 후자는 엄청 슬픈 동화였다.
어쩌면 엄마도 ‘방학 동안 얘네랑 뭘 하지?’ 고민하다가 도서관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남매들은 매일 친구 찾아 싸돌아다닐 인싸들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학원 뺑뺑이를 돌릴 형편도 아니었을 테니까. 도서관에 가서 어린이열람실에 풀어놓으면 각자 알아서 책 보고 노니까 엄마 입장에서도 편했으려나?
약 20여 년 전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엄마는 정체 모를 책을 쓰고 있었다. 내용은 비밀이라며 안 보여줬지만 대충 자녀교육에 대한 책이라고 했다. 우리 집 삼남매는 어쩐지 모두 범생이로 자랐고, 엄마는 냉장고에 ‘대부분의 사람은 성공하기 직전에 포기한다’ 같은 문구를 붙여 놓곤 했으므로 나는 그 책이 으레 ‘자녀 공부 잘하게 하고 성공시키는 법’ 같은 내용일 줄 알았다.
엄마는 꽤 엄하게 공부를 시키는 타입이었다. <스카이 캐슬>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국민학교 저학년 때도 시험기간이면 “12시까지만 공부하고 자라”며 내 등뒤를 지켰고(사실은 10시나 11시였을지도 모르지만 창밖에 보이는 불 꺼진 집들이 너무 부러웠던 것만은 확실하다), ‘눈높이수학’을 시작했을 때도 빨리 진도를 따라잡아야 한다며 일주일에 50장씩 풀라고 했고(답안지를 베꼈다), 어쩌다 내가 수학시험 40점을 맞았을 때는 너무 걱정이 돼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단다(정작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따금 학교 친구들이 엄마랑 싸웠다는 얘기를 하면 의아스러웠다. 엄마한테는 혼나는 거지, 어떻게 엄마랑 ‘싸울’ 수가 있지? 한번은 선생님이 ‘부모님께 존댓말 하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는데 반에서 오직 나만 손을 들었다. 진정 문화충격이었다. 다른 애들은 다 엄마아빠랑 친구처럼 말 놓고 사는 거였어?
이처럼 비교적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며 컸지만 평생 K-효녀로만 살 수는 없었다. 성인이 되어 집을 나온 뒤로는 점차 범생이의 삶에서 벗어나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는데, 한동안은 부모님을 실망시키기가 엄청나게 부끄럽고 죄송하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10년 20년 계속 엇나가다 보니 이제는 서로에게 적응이 좀 된 것 같다. 공무원도 그만뒀는데 뭔 짓을 못 할까? 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가며 적당한 거리에서 나이를 먹다 보니 오히려 관계가 나아진 듯하다. 부모님의 몰랐던 장점이라든지 뜻밖의 귀여움, 인간적인 면도 발견하게 됐다.
장항준 감독이 한 말에 공감이 간다. 평생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는 건 너무 힘들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때는 말 잘 듣는 애였더라도, 한 번뿐인 인생을 자유롭게 살려면 언젠가는 부모의 기대를 배반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나 자신의 기대도 적당히 배반해야겠다고, 40여 평생에 걸쳐 천천히 깨달아 왔다. 물론 지금도 기대라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니지만.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