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살고 싶어서, 오늘은 아날로그(23)
노트와 필기구는 어릴 때부터 내 외출 필수품이었다. 국민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문구점에서 16절 스프링 연습장을 사서 늘 가지고 다녔다. 준비물도 적어두고, 좋아하는 노래가사도 쓰고, 방학 계획도 짜고, 그림도 그리고, 산수 계산도 하고, 모눈을 그려 오목도 뒀다. 아이패드가 부럽지 않은 다용도 노트였다.
더 자라서는 모닝글로리 스프링 유선노트를 오래도록 애용했는데, 30대 중반쯤 되자 기력이 딸려서인지 B5 노트가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 작고 가벼운 수첩들을 여러 가지로 시도해봤지만 딱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나중에는 내가 직접 A4용지에 선을 인쇄해서 실로 꿰매 쓰기도 했다.
노트의 변천사: 1. 모닝글로리 스프링노트에 만년필로 필사한 『토지』 / 2. A4용지를 반 접어 실로 꿰맨 휴대용 노트 / 3. 파브리아노 드로잉북에 쓴 여행노트 / 4. A5용지를 재사용 스프링으로 묶은 자체제작 노트
지금은 직접 만든 A5 상철 스프링노트에 정착했다. 길드로잉 수업 수강을 계기로 유선노트를 벗어나 무선드로잉북을 쓰기 시작했는데, 많을 때는 하루에도 예닐곱 장씩 마구 쓰다보니 노트값도 많이 들고 스프링 쓰레기도 많이 나오는 게 찜찜해 자체제작을 하기로 했다. A4 미색모조지를 반으로 잘라 A5규격으로 만든 뒤(처음부터 A5용지를 샀다면 편했겠지만 일단은 집에 있는 A4용지를 소진해야 했다), 스프링제본기로 상단에 구멍을 뚫고 스프링을 돌돌 끼워 엮었다. 제본소에서는 보통 스프링 양끝을 꺾어서 고정해주지만 나는 뺐다 끼웠다 하기 쉽도록 그대로 뒀다. 종이를 다 쓰면 스프링을 빼서 새 종이로 갈면 된다.
그 다음 필수품은 책 한 권과 북클립이다. 북클립은 책을 펼친 채 고정하는 용도로, 핫핑크색 진저브레드맨 모양이다. 책을 읽으며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유용하다. 2000년대 초중반쯤 영풍문고 종로점에서 샀는데 그 이후로 다시는 같은 물건을 찾지 못했다(나중에 엄마가 해외 사이트를 뒤져 찾아줬다. 지금 있는 걸 잃어버리면 해외직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북클립, 휴지, 상비약, 손소독제, 체크카드, 신분증, 도서관 대출카드, 거울, 장바구니 등등 자잘한 휴대품이 든 크로스백에 노트와 펜, 책 한 권만 집어넣으면 외출 준비물은 끝이다. 씻고 옷 입고 가방을 둘러메고 신발을 신는다. 스마트폰은 더 이상 외출 필수품이 아니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 내 소원은 ‘평일 낮에 놀기’였다. 동료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근처 공원을 산책할 때면, 운동복 차림으로 강아지를 앞세우고 느긋하게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띄곤 했다. 물론 겉보기에는 느긋해 보여도 속으로는 각자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어쩌면 격무 끝에 오늘 하루 휴가를 냈거나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쉬는 직장인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은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나만의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퇴사를 하자 나도 평일 낮시간이 자유로워졌다. 주로 집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놀았지만 때로는 외출도 했다. 평일에 놀러 가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는 빌딩이 잔뜩 솟은 도심이었다. 카페 2층 창가에 앉아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의 빌딩숲을 구경하곤 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유리창들. 그 안을 빽빽이 채우고 있을 책상과 파티션과 사무실들. 컴퓨터 속에 수많은 업무파일을 쌓아두고 지금 이 순간도 분주하게 일하고 있을 직장인들. 저 많은 사람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하느라 저렇게 바빠야만 하는 걸까? 점심시간이면 명찰을 목에 걸고 식당가를 향해 삼삼오오 걸어가는 그들을 보며 나의 해방을 실감하곤 했다.
어느 날은 서울시청 8층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이 건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 자기만의 고난을 겪고 있을 것이었다. 창밖으로 내려다본 시청광장에서는 이름 모를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광장을 덮은 수많은 천막들이 8월의 햇볕을 하얗게 반사했다. 부스 이름을 보니 전국 곳곳의 공공기관이며 대학교, 병원 등등이 중구난방으로 섞여 있었다. 자발적으로 참가했을까? 차출된 걸까? 분명 누군가는 지시했을 테고, 이 출장을 위해 많은 준비와 업무 조정 따위를 해야 했겠지. 평일이어서인지, 더위 때문인지 관람객은 많지 않았다. 진행요원들도 천막 아래서 볕을 피하고, 버스킹 무대 앞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몇 명이 공연을 보고 있었다.
노트를 끄적이며 생각에 빠져 있다보니 벌써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만원 지하철은 사양하고 싶어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퇴근시간과는 겹치지 않아서 오래지 않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서점에서 산 영화잡지를 읽으며 집에 돌아왔다.
며칠 후, 카페에서 점심을 먹으며 오늘은 또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 길에서 본 현수막이 떠올랐다. 버스 한 번이면 가는 아트센터에서 짐 아비뇽 기획전이 열린다고 했다. 화가 이름도 낯설고 포스터도 내 취향에 맞을지 긴가민가했지만 그냥 한번 모험해보기로 했다. 대전여행 때 우연히 들어가 본 에바 알머슨 전시처럼 뜻밖의 보물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표를 사고 입장해보니 이럴 수가,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전시였다. 스마트폰을, 즉 카메라를 두고 온 게 순간 아까웠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노트를 꺼냈다. 사진을 찍으며 전시를 보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쉽게 소장할 수 있어 좋지만, 작품 감상보다 사진 촬영이 주가 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마음에 들면 찍고, 마음에 들면 찍고를 반복하는 건 어쩐지 ‘좋아요’나 ‘장바구니 담기’를 클릭하며 스크롤을 내리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카메라가 없으니 좀 더 작품을 천천히 보게 됐다. 전시는 의외로 무척 재미있었다. 작가는 베를린장벽에 그린 벽화로 이름을 얻었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어디서든 그린다고 했다. 진짜 신나게 그렸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유쾌하고 기발한 작품들이었다. 테이블 다리 따위는 과감히 생략하고 안 그려버리는, 종이가 좀 우그러지는 것쯤은 신경쓰지 않는 작품들을 보며 내 안의 완벽주의를 좀 더 내려놔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빠르게 그리기는 내 트레이드마크다. 완벽한 그림을 그리기보다 진정성 있는 무언가를 그리는 데 관심이 있다.”
“내 예술은 답이 아닌 질문이다.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뭔가를 생각하게 하고 싶다.”
“모든 사람이 창의적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그 창의성을 어떻게 계속 숨쉬게 하느냐이다.”
전시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은 노트에 메모했다. 사진 찍듯 빠르고 편리하게 모든 정보를 저장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더 찬찬히 메모할 내용을 고르게 됐다. 선 채로 손글씨를 쓰자니 불편하기도 하고 글씨도 엉망이 됐지만 나중에 보니 더 재미있었다. 졸면서 쓴 필기를 나중에 보면 웃긴 것처럼, 얼토당토않은 스케치와 날아가는 글씨를 보며 피식 웃게 되는 것이다.
(원화 이미지 참조)
천천히 두 번쯤 왕복하며 전시를 보고 나오자 불볕더위가 내 앞을 막아섰다. 100미터 떨어진 버스정류장까지도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까운 카페로 피신해 시원한 레몬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내가 늘 꿈꿨던 여유로운 하루였다.
p.s. 검색해보니 지금은 부산 광안리 포디움다이브에서 짐 아비뇽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8월까지라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관람해봐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