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살고 싶어서, 오늘은 아날로그 (15)
아침에 일어나 일기를 쓰다가 문득 콩나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콩나물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 큰 조직의 일원으로 살다보니 콩나물국밥 속의 콩나물 한 가닥이 된 듯했다. 뚝배기에 왕창 모여 팔팔 끓다보니 자꾸 부딪치고 아우성치게 된다. 그 와중에 위에서는 자꾸 고춧가루가 쏟아지고 숟가락이 날아든다. 과로와 갈등과 공격이 끊이지 않는, 이곳이 바로 지옥탕일까?
어쩌면 문제는 밀도인지도 모른다. 조직에서는 빌런인 사람도 조직 밖에서는 따뜻한 가족, 재밌는 친구, 선량한 시민일 수 있다. 가끔 스쳐가는 사이였다면 평범한 이웃쯤으로 알았을 그들이, 조직에서 일로 얽혀 매일 함께 지내다 보니 때로는 꼴 보기 싫은 원수가 되는 것이다. 거리두기가 절실한 건 코로나 때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 내 일과 네 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혼자 있고 싶었다. 주변의 온갖 소란을 뚝 꺼버리고 싶었다. 시끄럽고 복작대는 곳을 떠나 조용히 있고 싶었다. 그럴 때는 스마트폰조차 작고 네모난 뚝배기 같았다. 화면 가득 빽빽한 썸네일 사진들, 시시각각 쏟아지는 뉴스, 분란이 일어난 인터넷 댓글창을 보면 세상이 온통 바글바글 끓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낙서하기를 좋아했다. 공주도 그리고 만화 캐릭터도 그렸다. 공책을 여러 칸으로 나눠 만화 비슷한 걸 그리기도 했다. 줄거리는 항상 비슷했다. 나 같은 어린애가 산속 동굴에서 식량을 아껴 먹으며 혼자 살다가, 고난의 대가로 떼돈을 벌어 갑부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왜 그런 얘기를 반복해서 그렸을까? 동굴에서 혼자 살고 싶어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걸 믿고 싶어서? 그냥 단순히 갑부가 되고 싶어서?
그러나 콧노래 흥얼거리며 태평하게 끄적이던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림이 점점 어려워져서다. 내가 그린 꿈돌이나 불꽃머리 통키는 진짜 꿈돌이 진짜 통키와 확연히 달랐다. 미술시간에 다른 애들은 포스터컬러를 색종이처럼 말끔히 칠하는데, 나는 아무리 조심해도 얼룩덜룩해지고 말았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원수연의 <풀하우스>, 클램프의 <X> 그림을 똑같이 그려내는 아이들이 등장했다. 잘 그리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후로도 나는 심심풀이 낙서나 끄적이는 1인이었다. ‘007에 007에 빵을 먹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담배나 피웠대요 뽀글뽀글뽀글’류의 장난은 물론이고, 졸라맨이나 엽기토끼 같은 당대의 유행 캐릭터를 따라 그리기도 했다. 웹툰의 시대가 오고, 수많은 웹툰작가들이 화려한 그림을 일주일에 80컷씩 그려내는 걸 보면서 그림의 세계란 점점 더 범접할 수 없는 곳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가끔은 뜬금없이 색연필이나 아크릴물감 따위를 충동구매해 몇 장 그리다 시들해지곤 했다. 회의가 길어지면 업무수첩 구석에 조그맣게 낙서를 했다.
그렇게 그림과 미적지근한 관계를 유지하던 어느 날, 이다 작가의 길드로잉 워크숍을 신청했다. 이다 작가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지만 20년 넘게 홈페이지에 그림일기와 작품 사진을 올리며 일러스트레이터로 자리 잡아왔다. 플러스펜부터 사인펜, 수채, 아크릴, 과슈, 유화물감 등등 온갖 재료를 활용하고, 헝겊인형, 콜라주, 수예, 삽화작업, 여행일기, 워크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며 자기 세계를 넓히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워크숍을 들어볼까 말까 몇 년이나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실천에 옮긴 것이다.
개강 날 두근대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섰다. 길게 이어붙인 테이블에 수많은 그림도구들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낯선 도구들이 죄다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그림 그리기는 인간의 본능이므로 모든 사람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 손을 따라 마음대로 그리면 된다. 실패해도 경험치가 쌓이니 무조건 많이 그려봐라. 완벽한 1장보다 어설픈 10장이 낫다. 대상의 본모습을 과감하게 파괴한 마티스의 그림도 예술작품이듯 꼭 ‘잘 그려야’ 좋은 그림은 아니다. 나 자신부터 내 그림을 좋아해주자. 나는 여러분의 그림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장점을 발견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워크숍에서는 자학과 필요 이상의 겸손을 금지하겠다.’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와닿았지만 특히 가슴에 꽂힌 부분은 ‘자학과 필요 이상의 겸손 금지’라는 규칙이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자학을 했던가? 칭찬을 받고도 굳이 나를 깎아내리며 칭찬한 사람의 안목까지 본의아니게 폄하했던가? 그동안 내가 본 그림일기에 따르면 작가도 자학깨나 해본 사람이었다. 그 오랜 경험을 통해 자기만의 규칙을 만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워크숍 진행이란 작은 규모의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내 워크숍에서는 나만의 규칙을 만들 수 있다. 세간의 흔한 목적이 아닌 나만의 목적을 세울 수 있다. 내 인생 커리큘럼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커리큘럼으로 구현해 남과 공유할 수 있다. 이 또한 흥미로웠다.
그로부터 6주간, 토요일마다 모여서 강의를 들은 뒤 거리에 흩어져 각자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다. 같은 장소에서도 다 다른 그림을 그렸고, 모두의 그림에 개성과 매력이 있었다. 수강생들이 각자 자기만의 책을 만든다고 상상해보면 충분히 삽화로 넣을 만한 그림들이었다. 내 그림도 그럴 것이었다. 글뿐만 아니라 그림도 내 표현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었다.
『파워 오브 펀』(캐서린 프라이스, 한국경제신문)에서는 진정한 재미의 3대 요소로 ‘장난기, 유대감, 몰입’을 꼽는다. ‘의무감 없이 가볍게 즐기는 마음, 타인 또는 다른 무언가와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는 느낌, 시간의 흐름을 잊을 정도로 빠져드는 몰입감’을 갖춘 자발적 활동을 통해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길드로잉 워크숍은 이 모든 걸 갖춘 시간이었다.
종강 이후에도 야심차게 인스타 그림계정까지 만들고 반 년쯤 신나게 그렸지만, 그림을 완성하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어쩌면 글이 막힐 때와 똑같은 문제에 부딪힌 셈이다. 생각과 욕심이 많아질수록 그림이 다시 어려워졌다. 뭘 그릴지, 뭘로 그릴지, 캐릭터는 어떻게 잡을지, 디지털드로잉을 병행할지 말지 등등을 결정하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다. 포기한 건 아니었다. 늘 가방에 A5 드로잉북과 붓펜, 연필 따위를 넣고 다녔다. 언젠가는 다시 그리게 될 거고, 그때를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날로그 휴가 열 번째 날, 문득 멀리 나가보고 싶어졌다. 아직 핸드폰 없이 집에서 4km 이상 벗어난 적은 없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제일 먼저 오는 광역버스를 타고 아무데나 마음 내킬 때 내리기로 했다.
곧 도착한 버스에 올라 뒤쪽 창가 자리에 앉았다. 늦겨울의 햇살을 받으며 점점 낯설어지는 거리를 구경하다 보니 꾸벅꾸벅 졸음이 왔다. 졸다 깨다 하며 한참을 가서 종점 직전에 내렸다. 다소 황량해 보이는 교외였지만 은파랑색으로 차갑게 빛나는 겨울호수가 멋졌다.
인적 없는 길을 걷다 거대한 베이커리 카페를 보고 문을 여니,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이 동네 사람들이 다 여기 모여서 거리에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먼산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와 함께 소금빵과 딸기케이크를 먹으며 책을 읽었다. 노석미 작가의 산문집 『매우 초록』(난다)이었다.
“중요한 걸 버려야 해요!”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너무 아깝지만 그래야 된다고 한다. 묘사를 버려야 단순하고 힘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나 그 경지에 갈 수는 없다. 버려야 될 그 중요한 것, 즉 자신의 ‘욕망’이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215쪽)
중요한 걸 버려야 한다는 문장에 한참을 머물렀다. 버려야 한다는 건 버려도 된다는 뜻이다. 생각도, 고민도, 그리고 싶은 장면의 디테일도, 과감하게 버려도 된다. 뭘 그리고 뭘 버릴지 선택하는 것부터가 내 권리이고 작업의 시작이다. 우연하거나 서투른 선택조차 개성의 일부이다. AI는 절대 이런 식으로 하지 못한다. 인간이 한 것과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 수는 있어도,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따라할 수는 없다.
한동안 책을 읽다 북적이는 카페를 나섰다.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호수를 등진 가시나무를 보고 오랜만에 드로잉북을 꺼냈다. 배경은 거칠게 쓱쓱 칠하고, 가시나무는 가시 하나하나를 점 찍듯이 그려 넣었다. 생각보다 가시가 많아 점점 인내심이 바닥났지만 은근히 재밌기도 했다. 나는 단순노동을 좋아하니까. 버스가 올 시간도 아직 멀었고.
다음 날도 크로스백에 드로잉북을 챙겨 공원에 갔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낙엽이 참새떼처럼 우르르 날아올랐다. 바삭한 대숲을 바람이 쓸고 가는 소리가 났다. 뭘 그릴까 고민하며 문득 고개를 숙이니, 벤치 밑에 드리워진 내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의 머리카락도 바람에 휘날렸다. 그 모습을 그렸다.
이틀간의 그림을 보니 전에 없이 스산했다. 계절 탓일까? 하지만 이 그림들을 그리는 동안 내 세상은 차츰 고요해졌다. 어느덧 3월이었다. 아직은 춥지만, 곧 봄이 온다.
p.s. 이다 작가의 길드로잉 강의는 책 『끄적끄적 길드로잉』(웅진지식하우스) 또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 VOD 강의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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