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제주북페어 후기 (2)
이번 제주북페어에서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안내문을 마련했다. ‘수줍음이 많아 조용히 있습니다. 천천히 구경하세요. 안 사셔도 괜찮아요~ 엽서는 무료! 한 장씩 가져가세요.’
2016년 서울독립출판축제로 시작해 이따금씩 북페어에 참가하면서, 손님들을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주변 부스들을 곁눈질하며 대충 저렇게 하는 거구나 하고 인사와 설명 등을 흉내내 봤지만 영 어색했다.
내가 손님으로서 북페어를 구경할 때도 작가님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시면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치는 데 정신이 쏠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설명만 듣고 안 사기가 죄송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때로는 셀러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잽싸게 다가가 샘플북을 펼쳐본 적도 있다.
물론 책을 안 사는 건 절대 죄송할 일이 아니고, 안 산다고 뭐라 할 사람은 단 하나도 없으며 그분들은 나를 기억조차 못 할 거라는 건 안다. 성향에 따라 셀러와의 대화를 기대하고 즐기는 손님들도 많다. 하지만 몹시 낯을 가리는 나로서는 200개 부스의 200명 셀러들과 눈 맞추고 대화하며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의 손님 응대 멘트는 ‘안녕하세요~ 이 책은 이런저런 내용이고요~ 어쩌고저쩌고~’에서 ‘안녕하세요~ 편하게 보세요~’ 쪽으로 간소화되어 왔고, 이번에는 더 과감하게 인사와 설명을 생략해본 거였다. 책에 대한 설명은 최대한 잘 보이게 인쇄해서 세워 놓고, 인기척이 느껴져도 올려다보지 않고 내 눈앞의 책을 읽었다. 물론 손님이 질문을 하시면 반갑게 답했다.
사실 속으로는 걱정이 컸다. ‘손님이 왔는데 쳐다도 안 보네?’라고 불쾌해 할 분들도 있을 것 같았다(그렇게 느낀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다). 하지만 적어도 나 같은 성격의 손님이라면, 셀러가 나를 쳐다보지 않는 것이, ‘천천히 보세요. 안 사셔도 괜찮아요~’라고 씌어 있는 것이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게 다가오는 손님이 어떤 성향인지 미리 파악해 맞춤형 응대를 할 수 없다면, 일단은 나에게 편한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지치지 않고 오래 지속하기에도, 나와 비슷한 결의 독자님들을 모으기에도 그 편이 낫지 않을까?
때로는 선 채로 꽤 오래 내 책을 읽어보는 분들이 있었다. 손님은 손님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책에 집중하는 짧은 시간이 왠지 감동적이었다. 책이 주인공인 북페어지만 찬찬히 책을 읽을 여유는 거의 없는데, 딱 그 순간만큼은 내 테이블이 작은 도서관으로 변신한 것 같았다. 축제가 벌어지는 한복판에서 고요한 섬 하나를 지키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고요함조차 이 축제의 한 부분이라는 게 내심 뿌듯했다.
제목이 좋다고, 그림이 귀엽다고, 책 내용이 딱 내 얘기라고 공감해주신 분들,
‘혹시 원하시면 사인해드릴까요...?’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흔쾌히 좋다고 해주신 모든 분들,
사인하다가 날짜를 잘못 썼는데도(하......) 괜찮다며 이게 묘미 아니겠냐고 해주신 분,
‘작가님 수줍음 많다고 하셔서 꼭 말 걸어보고 싶었어요’라며 활짝 웃어주시던 분,
책이 매진되자 샘플북을 사 가신 분,
천천히 받아도 되니 택배로 보내달라고 주문해주신 분을 비롯해
‘빈책상’에 찾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